면사무소 축산 담당의 행복한 비명

한우, 젖소, 돼지, 닭, 오리, 염소는 나의 친구들

by 보석바

면사무소로 이직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엔 전화만 울려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옆자리 주사님 눈치를 보며 도움을 요청하던 날이 많았다. 그때 주사님이 한 달만 있으면 돌아가는 게 보일 거라고 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지금은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이 잡힌다. 심지어 단순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업무에는 여전히 당황하지만 말이다.


내 옆자리에 있는 주사님은 순박한 농촌 총각 같은 사람이다. 물론 50대 미혼이지만 마음만큼은 참 따뜻하다. 금연 약속 스티커를 창구 옆에 붙여뒀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골초이고, 9월에 베트남 여행을 간다고 해서 속으로 ‘혹시 아내 구하러 가는 건 아닐까’ 하고 의심 아닌 의심을 해본다.


우리 면에는 축사가 몇 군데 있어서 악취저감 사업이나 돈사 바닥 청소 지원사업 등 냄새와 관련된 사업들이 많다. 그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럼피스킨 백신’인데, 이름만 들으면 게임 속 장비 같지만 소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이다. 업무 중에는 백신 접종 결과를 확인해서 농가에 안내하고, 군에도 보고하고, 살충제를 나눠주고, 사료 지원사업도 접수한다. 이런 걸 하다 보면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주민에게 직접 무언가를 주는 자리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전엔 큰 실수를 했다. 결재대기함에 있던 사료구매자금 신청 업무를 내가 그만 마감일을 놓친 것이다. 꿈이면 좋겠는데, 진짜였다. 수요조사에서 이미 5 농가가 신청 의사를 밝혔는데, 내가 오후 3시 30분에 문자를 보내놓고 6시까지 서류를 내라고 했다. 그것도 은행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서류까지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다행히 팀장님이 군청에 전화해 다음 날 오전까지 시간을 연장해 주셨지만, 부랴부랴 서류를 챙겨 나온 농가분들을 보니 죄송한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농사일을 하다 오신 분은 씻지도 못했다며 냄새난다고 미안해하셨는데, 그 말에 내가 더 미안하고 속이 쓰렸다.


그 일을 겪고 난 뒤 마감일만큼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도 결재대기함에는 축사 화재경보 시설 지원사업, 산란계 칼슘 지원사업, 말 관련 교육 지원사업 등 여러 가지 서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면에서 이런 사업 문자가 안 가면 어떡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그래서 오늘도 한우, 젖소, 돼지, 닭, 오리, 염소와 함께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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