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사무소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 속에서 이상해지는 나에 대하여

by 보석바

예전에는 참 쉽게 입 밖으로 이런 말을 꺼냈다.

“참,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뭔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해가 안 되면 자동반사처럼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반문이 올라온다.

‘이런, 설마 내가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이상한 나라의 여왕님처럼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사형을 외치던 그 시절.
그동안 내가,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너무 쉽게 재단해 온 건 아닐까 싶어지는 요즘이다.


그리고 오늘도, 속으로 사형을 외치고 싶은 민원인들이 어김없이 내 하루에 등장했다.


# 등장 1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타러 온 50대 아저씨

들어오는 순간부터 얼굴에 온통 불만이 쓰여 있다.

“아니, 왜 이런 걸 주면서 귀찮게 해. 거지도 아니고 말이야.”

‘그럼 굳이 왜 오셨죠...? 집에서 쉬시지...’


# 등장 2

에너지 바우처 문의하신 40대 아저씨

행복이음 사이트를 조회해 보니 대상자가 아니다.
마음을 다잡고 예쁘게 안내해 드려야지 생각하는 찰나, 날아온 한마디.

“뭐라고요? 장애인을 뭐 하나 도와주는 게 없어요?”

...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 저도 반갑습니다.


# 등장 3

사업 신청기간이 진작 끝난 줄도 모르고 오신 양봉 농민

“사업 신청하러 왔는데요.”
“문자 보셨죠? 지난달에 마감됐습니다.”
“그래도 받아줘야지. 이번엔 꼭 설탕 받아야 한다고!”

할 수 없이 군에 한번 문의해 보겠다고 하니, 연락처를 받아가신 후 잠시 뒤 군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분 누구세요? 욕을 하시고 아주 난리가 아니세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이런 일들이 나에게 전혀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흔 중반이 넘고 보니, 속에서 불쑥불쑥 측은지심이 먼저 올라온다.

‘이 더위에 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럴까.‘

‘몸도 불편한데 도움은커녕 방해만 느껴진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

‘사업 신청기간을 깜빡했다면 그 속상함이 얼마나 컸을까. ’


예전 같았으면 짜증으로 넘겼을 상황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들의 사정과 감정을 먼저 헤아리게 된다.

이게 아마, 나이를 헛으로 먹지 않았다는 증거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내가, 정작 함께 일하는 Z세대 직원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점이다.

어느 날, 이장님들께 전화드릴 일이 있어 옆자리 Z세대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전화 몇 군데만 대신해줄 수 있어?”

“저... 전화 공포증 있어서요.”

... 뭔 공포증...?


게다가 무슨 말을 묻고 대답하려 하면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말을 툭 끊는다. 상대의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 말만 던지고 사라진다.

예를 들면 오늘도

“이번 연휴에 어디 가세요? “ 묻길래

“아 가족여,,,”

“어머 머리 자르셨네요”

하며 다른 주무관한테 말을 걸며 가버린다.


그리고 더 혼란스러운 건,
옆자리 50대 주무관이 민원인과 일을 보고 있으면 그 상황에 꼭 끼어들어 이런저런 말을 하며 왈가왈부한다는 것이다.

민원 대응은 베테랑인 선배가 하고 있는데도, 굳이 옆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고 방향을 바꾸려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본인이 업무적인 도움을 요청받으면 표정이 확 굳는다.

“민원인한테 지면 안 돼요.”

그러곤 할머니뻘도 넘는 민원인에게도 모질게 굴기 일쑤다. 어쩌면, 이들이 나를 보고 ‘꼰대’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는 요즘 그 꼰대력과 싸우는 중이다.

타인에게는 이해가 깊어지고, 내 기준에서 “이상하다” 생각했던 사람들을 향한 시선도 부드러워졌는데, 정작바로 옆에 있는 ‘다른 세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이상해진 걸까?
아니면 ‘이상함’이라는 기준이, 원래 이렇게 자주 흔들리는 것이었을까?


이상하다는 건 결국,
내가 가진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을 만났을 때 생기는 감정일 뿐이다.

그 기준은 내가 살아온 환경, 시대,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고, 그래서 누군가에겐 ‘이상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겐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 된다.

나이 들어 생긴 여유와 측은지심으로 다른 세대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올까?


...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겐 참 이상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만큼은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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