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탁의 변화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선택되는 감각

by 보석바

요즘 우리의 식탁은 잘 설계되어 있다.

취향은 이미 분석되어 있고, 메뉴는 정렬되어 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대신 ‘실패하지 않을 선택’이 빠르게 도착한다.


이렇게 매끄럽게 작동하는 식탁 앞에서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음식은 왜 이 방식으로 경험되어야 하는가.

맛 말고, 무엇이 기억에 남을 것인가.


음식이 더 이상 요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의 영역으로 들어온 순간이다.

맛은 기본값이 되었고,

사람들은 맥락·이야기·태도를 소비한다.

식탁은 점점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그 지점에서 전통은 새롭게 리프레이밍된다.

전통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설계될 수 있는 자원이다.

사찰음식이 미식으로 읽히고,

집밥의 언어가 콘텐츠가 되는 이유다.


정관스님의 음식 이야기에 등장하는

탱자나무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이유도 이 맥락 위에 있다.

절 마당 한켠에 자리한 탱자나무는

유용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나무는 베어지지 않는다.

쓸모보다 자리를 존중하는 선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음식으로 이어진다.

재료를 과시하지 않고,

기술로 감싸지 않으며,

지금의 몸과 계절에 맞는 것만을 남긴다.

그 음식은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 장면이 오늘의 식탁과 만날 때,

전통은 갑자기 낭만이 아니라 전략이 된다.

모든 것이 최적화된 시대에

최적화되지 않은 감각은 오히려 강한 차별점이 된다.


그래서 지금의 식문화 인사이트는 여기에 있다.

AI가 메뉴를 큐레이션해줄수록,

사람은 큐레이션되지 않은 감각을 원한다.

자동화된 선택 속에서,

어디까지를 기계에 맡기고

어디부터를 인간의 판단으로 남겨둘 것인가.


한국의 식탁은 지금

전통과 현대를 섞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스위치를 조절하는 중이다.

속도와 효율은 기술에게 넘기고,

의미와 태도는 식탁 위에 남겨두면서.


어쩌면 이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남겨둘 감각을 설계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1화2026 푸드 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