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거 하나 없는 날이었다. 여느 날과 다르게 약속 시간보다 훨씬 여유 있게 출발도 했다. 모임에 가던 길이었다. 150미터쯤 앞에서 우회전하기 위해 2차선에서 우측 깜빡이를 넣고 오른쪽으로 한 차선 옮기려던 중, 끼익,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옆 차선에서 직진해 들어오는 BMW를 미처 보지 못한 거다. 분명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까지 확인한 기억은 나는데, 잠시 딴생각을 했나. 목을 옆으로 돌려 사각지대를 확인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차에서 내려 상대방 차량의 충돌 부위를 확인한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파손 부위가 꽤 컸다. 좌측 휀다부터 범퍼까지 우그러지고 언뜻 눈에 띈 흠집만 해도 수십 개가 넘었다. 일단 황급히 사과부터 했다. 부주의로 끼어든 건 확실하니, 내 과오가 분명했다. 근데 앞좌석에서 문을 열고 천천히 내리는 차주 얼굴이 좀 이상했다. 지나치게 담담했다. 가던 길을 지체시켰으니 짜증이라도 날 법 한데, 내 사과를 조용히 받던 그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냥 보험처리부터 하시죠!
그렇지. 보험사에 전화부터 걸어야지. 가해자인 내가 무슨 면목이 있다고! 나는 그저 네~ 하며 상대방을 따라 애니카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신호음을 들으며 상담사와의 연결을 기다리는데, 주변을 지나가던 차들이 서행하며 나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쯧쯧, 대낮부터 어떤 정신머리 없는 여자가 차를 끌고 나와 많은 사람 이 고생이냐, 하는 표정. 부끄러웠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둘러 접수를 하고 그제야 내 차를 살펴보았다.
뭔가 좀 이상했다. BMW의 파손 부위로 미루어 본다면 내 차 모닝은 반파되어야 마땅했거늘, 오른쪽 옆구리에 달랑 흠집 두 줄 밖에 없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그제야 정신이 좀 든 나는 다시 상대방의 파손 부위를 자세히 살폈다. 찌그러진 왼쪽 운전석 휀다는 이미 수십 가지 흠집으로 가득하고 왼쪽 눈알 또한 커다란 물체에 가격 당한 듯한 충격으로 여러 갈래의 금이 쫙쫙 갈라져 있었다. 앞쪽 범퍼는 기스 뿐 아니라 칠이 벗겨져 허연 바디가 두 군데나 드러나 있었다. 방금 난 상처가 아니었다. 오래전 것이 분명했다. 이쯤 되자 내 차가 입은 두 줄기 흠집은 되려 저쪽 차량의 오래된 흠집 때문에 새겨진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보험사 직원들이 도착했다. 나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내가 낸 파손 부위가 정확히 어디인지 물었다. 그리고 보험사 직원에게 상대방 차량이 기존 파손이 있었음을 조심스럽게 명시했다. 보험사 직원은 "블랙박스 있으시죠?" 하더니, 그것만 보면 다 안다는 식으로 걱정 말라고 했다.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남편에게 사고 경위를 대략 보고 하고, 보험사 직원에게는 파손 부위를 명확히 해줄 것을 한번 더 당부했다. 어찌 되었건 내가 저지른 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시간을 지체하고 불편을 겪게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주눅이 들어 있었다.
며칠 뒤, 보험사로부터 상대방 파손 부위와 수리 금액에 대한 대략의 설명을 전해 들었다. 좌측 휀다, 전조등, 범퍼, 앰블럼 등 10여 개가 넘는 부품이 수리 교체에 들어갔으며, 총 490만 원 정도의 견적이 나왔다. 나는 기존 파손과 내가 낸 파손에 대해 좀 더 명확히 구분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보험사 직원은 파손 부위의 강도가 크건 작건 교체했어야 할 것이었으며, 할증이 붙지 않는 선에서 수리하는 것이니 상관없다고 했다. 내가 계속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아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객님, 상대방이 혹 다른 보험사라면 모를까. 같은 보험사인데 제가 어느 한쪽 부당하게 처리하겠습니까?" 그는 저쪽에서 대인 배상을 요구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자동차에 대해 잘 아는 남편이 좀 나서 시시비비를 따져줬으면 했지만, 당시 남편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차에 대해 잘 아는 남자들 사이에서 뭔가 합리적인 합의가 있었던 듯 싶어서 나도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게다가 가해 당사자인 내가 나서봐야, 더 잘 처리할 거란 자신감도 없었다. 주변에서도 금액을 들어보더니 외제차라 운이 안 좋았다면서, 몸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교통사고라는 게 기본적으로 목숨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로 끝난 것만 해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호의적으로 굴던 상대방이 뜬금없이 병원에 입원해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지 않나. 몸도 다치지 않았고, 보험수가도 오르지 않았고, 이 정도면 적당한 선에서 합의도 잘 됐다. 사실만 놓고 보면 그냥 감사하며 지나갈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란 게 그렇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계속 그 사건을 복기하며 나의 과오를 따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이미 낸 사고와 내가 덧낸 사고의 과오를 저울질했다. 그래, 휀다까지는 내가 냈다고 쳐. 하지만 범퍼도 내가 냈다고 볼 수 있나? 아니, 범퍼에 슬쩍 흠집이 났다고 해도 내가 고쳐주는 게 맞지. 근데 기껏 국산 소형차에 흠집 두 줄 날 정도의 충격으로 그 튼튼한 외제차 헤드라이트에 금을 낼 정도가 되냐 말이다. 유유히 운전자석에서 내리던 상대방의 표정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건 뜬금없이 당한 사고에 대처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차라리 잘됐다는 눈빛에 가까운, 아니, 자기 의도대로 되었음을 자축하는 눈빛에 가까웠다... 이런 식으로 의심을 시작하자, 이제는 되려 내가 피해자 같았다. 자기 돈으로 수리하기 싫으니까 저 인간이 일부러 내가 어리바리한 틈을 타서 우회전하려는 내 차 앞에 빠른 속도로 끼어든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그 차를 보지 않을 수가 있지?
2018년 사고였다. 이미 다 마무리되고 다른 기억 사이에서 묻힌 그날 사고가 며칠 전 다시 떠올랐다. 그때 서둘러 마무리한 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 이제라도 명확히 알고 싶었다. 보험사에 전화해 다시 견적과 보험료 수가를 따져보았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않으면 나는 영원히 이 사건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내가 낸 사고가 명확한 데에도 불구하고, 과실의 원인과 진실에 대해 아직도 시시비비 따져 묻고 있는 나를 보며 알았다. 아니 이해했다. 어느 날 아침 수학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나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무려 304명의 사망자와 탑승자 172명의 가족들이 과실의 원인과 진상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대로 마무리 하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우리는 여전히 충분히 그들을 애도하지 못했다. 무얼 어찌해도 충분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