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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Aug 27. 2022

무능인지 도무지 요령부득인지

누가 그의 최선에 대해 의심할 수 있을까



주말 어느 아침 풍경. 아침상을 물리고 칭얼거리는 둘째를 업은 여자 하나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서너 살쯤 돼보이는 아이 하나는 여자의 한쪽 다리를 붙들고 늘어지고 있고, 시선을 마루로 돌려보니 남자는 TV 앞에 앉아 박장대소를 하고 있다. 그릇을 닦던 여자의 손놀림이 사나워진다. 접시는 덜그덕 거리며 개수대 사면에 여기저기 처박히고, 여자는 놀아달라고 징징거리는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낸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엄마 지금 설겆이 하고 동생 업어 재우는 거 안보여? 다다다다~ 남자에게 날아갈 언성을 아이에게 마구 쏟아붓는데, 이런 소란에도 남자는 여전히 TV 화면에 빠져 아무런 동요가 없다. 여자가 묻는다.


여자 : 아침에 어린이집 갈 때도 내가, 퇴근할 때도 내가 아이를 맡잖아. 당신이 어느 한쪽이라도 맡아주면 안 돼?

남자 : 내가 회사가 머니까 어쩔 수 없잖아.

여자 : 그럼 당신 회사 근처로 이사 갈 수도 있지.

남자 : 내가 며칠 출장 갈 때는 그럼 어쩔 건데?


일 년 내내 출장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아내의 의도일랑 일도 고려되지 않은 이런 대답에 여자는 이미 빈정 상한 지 오래다. 반복되지만 늘 여자에게 디폴트 되어 돌아오던 대화들. 그런 남자가 어느 날 교회 부부 모임에서 “나는 최선을 다한다는 사람인가?”란 그날의 주제에 이렇게 대답을 했던 거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


여느 집 맞벌이 남편처럼 가사 일을 적극적으로 분담하지도, 여느 집 아빠들처럼 아이랑 온몸으로 놀아줄 줄도 모르는 그 남자는... 대체 어느 별에서 홀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는 걸까. 여자는 매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 숨이 꼴딱 넘어가는 판에! 그리고 이 질문 저 질문 끝에 이해의 실마리 하나를 물었는데 그건 바로, 남자와 여자의 최선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연애할 때 여자는 자신만만한 남자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남자는 늘 지구 중심에 '자기'가 있었다. 남녀노소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도 그 남자는 주눅 들지 않았다. 남자는 결코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시대 땐 남자가 유모차 밀고 다니면 뒤에서 수근거렸대이” 라거나 “남자가 부엌에 들락거리면 큰일 못한대이” 라는 말을 신념처럼 떠받들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밀지 못한 유모차를 밀고, 기저귀를 갈 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었는데, 여자 입장에서 요즘 세상에 그건 맞벌이 부부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최소한의 자질이었던 거다.


그 논리에 의하면 그녀는 맨날 줏대 없이 옆집 남자랑 비교하는 형편없는 여자고, 남자는 "나의 경쟁상대는 늘 나 자신뿐이죠!”라고 말하는 멋진 남자였던 것인데... 그러니, 남자는 늘 자신의 기준에 의하면 최선을 다하는 남자이고, 여자는 늘 남의 기준에 비해 미달하는 못난 여자가 되었다.  


20년이 지난 요즘. 나는 주변에서 다시 '최선을 다했다'는 남자들 소식을 듣고 있다. 최선을 다했는데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으니 이제 네가 좀 나가 벌어오라고. 그땐 육아가 더 중요하다며 은근히 사표를 종용하던 남편이 다음 달부터는 더 이상 생활비를 줄 수 없겠노라고, 경력 단절된 지 10년이 넘어 이제 어디 가서 설거지밖에 할 수 없는데, 이제 와서 어쩌라고~ 어느 저녁, 폭탄선언을 했단다. 부귀영화 따위는 예전에 접었다. 그가 그저 벤처기업이라는 허황된 꿈 따위 접고 매일 아침 새벽 배달이라도 나갔다면 그녀는 그럭저럭 만족했을 것이다. 인생이 어찌 신혼의 단꿈처럼 달콤하기만 할까. 천성이 알뜰한 그녀는 남편이 쥐꼬리마한 월급이라도 꼬박꼬박 정기적으로 벌어왔다면, 그 소중한 생활비를 쪼게 식탁을 차리고 미래를 위한 적금을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매달 카드 결제일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조이고 장바구니에 콩나물을 담으며 근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확천금이 아니라도, 규칙적인 수입에 만족했을 것이다.  


주변에서도 기한을 정하지 않는 도전은 무모한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조언한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남자는 지금까지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까워라도 이제 와서 그의 꿈을 저버릴 수 없다. 막말로 주변엔 7전 8기의 남자들 투성이지 않나. 그들은 집을 팔고 대출을 받고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 성공을 성취해 내지 않았던가. 지금이 바로 그 눈부신 성공을 코앞에 둔 시점이면 어쩔 것인가. 남자의 어머니도 그의 성공을 계속 지지하고 있지 않나. 아들의 성공에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는. 너무 늦어 성공하는 수밖에 다른 방편은 생각할 수 없는.


늘 최선을 다하는 남자들은 그래서 오늘도 꿋꿋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돌이키지 않고, 무능인지 도무지 요령부득인지 모르겠는 최선을. 그러니, 어느 누가 그의 최선에 대해 의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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