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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Aug 26. 2022

너는 우울할 시간 있어 좋겠다

인생이란 겨우 이런 걸까


Is it all it is?

영화 <재키> 속 주인공 재클린 케네디의 이 대사가 내내 귀에 맴돌던 어느 주. 남편에게 물었던가, 친구에게 물었던가.


왜 그런 생각 안 해 봤어? 인생이란 겨우 이런 걸까, 무언가 더 있진 않을까,라고?


 누군가 대답했다.


사방이 모두 꽉 막히고, 이제 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가슴을 치며 말했어. 나 정말 미치겠어, 더는 못 견디겠어. 우울해서 죽을 것 같아... 그렇게 울부짖는데, 그 말을 듣던 남편이 딱 한마디를 하더라고.

너는 우울할 시간 있어 좋겠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황제 빌헬름 2세와 나치의 히틀러에 부역했던 비운의 과학자 중에 하버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하여 암모니아를 합성해냄으로써 화학비료 대량 생산에 기여한 인물이다. 화학비료라니~ 아마 몇 년 전 나라도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했을 이 발견은 불과 100여년 전 10억 대에 불과했던 인구가 지금의 70억 대으로 늘어날 때까지 인류의 개체수를 부양했던 농업혁명 최대 히트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생산해 낸 질산은 폭탄과 화약 제조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재료였고, 결국 그는 후대에 '독가스와 화학무기의 아버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다.


그에게는 그와 마찬가지로 성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총명하고 화학에 열정이 넘쳤던 '클라라'라는 예쁜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당시 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몇 안 되는 여성이자, 재능 넘치는 화학자와 결혼한 행운아였다. 하지만 결혼한 후 사회와 남편은 그녀에게 다른 여성들처럼 남편과 아이에게 충실하길 바랐다. 그리고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했고, 지나칠 정도로 아들에게 집착했다고 한다. 당시 클라라를 알았던 사람들의 회상에 의하면 그녀는 '겉으로는 집안 살림에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지만 점점 "눈에 띄지 않고 얌전한 회색 쥐"처럼 변해갔다. 그녀는 한때 자신과 함께 화학이 기여할 세상을 꿈꾸던 남편이 전쟁에 쓰일 독가스 개발에 미친듯이 몰두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전쟁 출전 전 열린 파티 직후 그녀는 정원에 나가 자신의 심장을 향해 두 발의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그 비극적 사건도 남편 하버를 전장에 보내는 일을 막지 못했다. 그녀가 남긴 여러 장의 유서는 모두 사라졌고, 남편 하버는 전장에서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한 달 동안이나 고민했다. 하지만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보며, 그리고 쉴 새 없이 내 능력을 발휘하며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그는 쉴새없이 능력을 발휘하며 아내의 죽음을 극복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죽음으로도 자기가 가던 길을 돌이키지 못한다. 돌아본다는 것, 이제까지 견지해온 인생의 목표와 방식을 돌이켜 다른 변화를 시도한다는 건, 때로 죽음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 대부분은 자살을 선택하지 않지만, 그렇게 스스로 서서히 자멸한다.




당신은 왜 그런 생각 안 해 봤어? 인생이란 겨우 이런 걸까, 무언가 더 있진 않을까,라고?

그때 그가 뭐라 답했더라? 특별히 어떤 답을 기대한 것도, 쉬이 답할 물음도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물었고, 아마 그는 그때도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그래, 나는 남편이 어떤 답을 할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그저 나는 당신에게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물음 없이는 살아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당신은 어떻게 이런 물음 없이 하루하루가 살아지느냐고.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끌어모아 벽장 속에 가두고, 전문성의 가면 뒤에 숨은 채 그렇게 워커홀릭이 되어 버린 당신에게 지금 묻고 있는 것이다.



<공기의 연금술> 토마스 헤이거, 13장. 작전명 '살균' 중. 191~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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