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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Sep 11. 2022

결혼도 무를 수 있지 뭐

20만 쌍이 결혼하고 10만 쌍이 이혼하는 시대



결혼하고 몇 해쯤 지난 어느 추석.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와 전을 부치며 이런저런 회포를 나누던 중이었다. 한 해가 다르게 늘어나는 며느리의 아들 푸념을 눈치채셨던 걸까. 어머니께서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성경에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지 않니.
그 원수가 바로 남편인 거 같지?

누군가 내게 현모양처 딱 한 사람을 뽑으라면 우리 어머니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식적인 권사 하나를 대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우리 어머니를 추천할 수 있다. 그런 어머니 입에서 아버님으로부터 아들을 관통하는 '디스'가 흘러나오자, 나는 그만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이제 한해 20만 쌍이 결혼하고, 10만 쌍이 이혼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혼엔 적령이라는 것이 따로 없으니 이혼율의 폭넓은 연령대를 감안하더라도 적지 않은 숫자다. 얼마 전 <욕망의 진화>라는 책에 보니 대한민국의 현 혼인율과 이혼율은 딱 30년 전 미국인들의 지표와 일치했다. 한동안 연하남에 연상녀 일색이던 우리나라 드라마에 스텝맘과 재혼가정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날도 머지 않았다는 말이다. 몇 년 사이에 우리 나라도 결혼이 인생에서 꼭 통과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취향과 옵션이 있는 선택지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제도의 가벼움이 반갑다. 적어도 이제 남 탓하는 말은 듣지 않을 수 있을 테니. 아버지 때문에 속상할 때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붙들고 하소연하던 말. "내가 너 때문에 살았다"라는 말. 그 지긋지긋하게 듣던 말을 이제 더이상 듣지 않아도 될 테니. 우리 어렸을 때는 그래, '자식' 때문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이제 자식들 모두 독립하고 결혼한 마당에 여전히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뭔데? 어느 날 자비 없이 꼬치꼬치 밀어붙인 딸의 물음에 친정 엄마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이웃'이었다. 늙고 별 볼일 없어진 남편 버리면 이웃에서 다 욕한다고.


여자를 때리고, 노름으로 돈을 날리고, 아들 못 낳는다고 계집질하는 남편들이 한집 건너 있던 시절. 그런 것도 남편이랍시고 아침마다 따듯한 밥 해 올리고 행상 지고 발품 팔아 자식들 키워낸 것이  우리 어머니 세대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한 집안 그럭저럭 건사해 온 남편이 늙어 천덕꾸러기 신세 좀 됐다고 버린다는 건 도리가 아니지. 여전히 막말 좀 하고, 사사건건 맘에 안드는 일 투성이지만, 암~ 그렇다고 하늘에서 정해준 부부의 연을 사람이 함부로 나눌 수 있나, 천벌 받지.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고 품으며 한 집안에서 살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넋두리 너머로 이제 다른 말이 들린다. 엄마에게 돈이 있었다면,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면, 엄마 만의 일이 있었다면, 여태 아버지와 같이 사셨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재정적으로 남편에게서 독립할 수 있었다면?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잘 양육하는 현모양처가 아니라 GDP에 기여하는 여성 상공인이나 사업가가 되었다면? 집안일 말고 다른 옵션이 있었다면? 여자들의 세계가 가정과 자식과 남편 너머, 다른 세상을 보다 폭넓게 경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하는 데에도 좀 더 자유하지 않았을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고 하는 결혼이나 출산  또한 얼마나 어이없이 선택되었는가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심사숙고하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던가? 이상형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도 당시 그저 내 앞에 주어진 조건 속에서의 최선일뿐이다. 남들이 다 하니 적당한 때 만난 남자와 결혼하고 적당한 때 아이를 낳아 키웠다. 젊고 철없던 시절 그와 그녀가 내린 선택에 우리가 평생을 고정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뭔가?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거대 담론이 사라진 사회는 그만큼 안정되어 있다는 의미다. 젊은 사업가들에게 실수해도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선진국 아닌가. 런 의미에서 실수가 재고될 수 있는 사회, 결혼과 이혼에 더 많은 선택과 옵션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 반갑다.


결혼과 이혼. 선택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고, 돌이킬 수 있다. 그 결정이 이루어진 시기의 미성숙함과 그 의미의 중차대함 때문이라도. 다른 선택이 가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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