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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Sep 08. 2022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

 너와 나의 '함께'가 다를 때



내 주변에 남편이 앉아서 오줌 누는 집이 있다. 정말? 못 믿으시겠지만, 꽤 여럿이 있다. 왜?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집안에 아들만 있을 확률이 높다. 당연히 집안 여자들을 위해서다! 제아무리 조준에 단련된 남자라도 잠결에 변기 뚜껑을 미처 열지 못한 채 급하게 발사할 수 있는 법. 인간인지라 언제라도 뒷수습을 깜빡할 수도 있고, 혹은 뒤늦게 화장실에 들어온 여자들의 비명 아닌 잔소리를 미연에 방지하고 싶은 현명한 남자, 아니 아내와 딸을 지극히 사랑해서 배려하는 남자... 운운하며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어?라고 내가 물었을 때, 옆집 여자가 말했다.

남편이 화장실 청소 담당이거든.

결국 자기가 청소해야 한다는 걸 아니까. 자기 일이니까, 아예 청소할 거리를 안 만들기 위해서라는 거다.


놀라운 걸로 치자면, 내 주변에 시댁 가는 걸 좋아하는 여자도 있다. 명절에 시댁 가는 걸 좋아한다. 시골 본가에 열댓 집도 넘는 친척들이 아들 며느리에 손자 손주까지 모두 모여 문중 제사를 지내는데,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단다. 어떻게? 내가 다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묻자, 옆집 여자가 대답했다.

우리는 제사 음식을 남자들이 같이 차리거든.


여자들이 모여 전을 부치면 남자들은 옆에서 생선을 굽고, 어머니가 국을 끓이면 아버님은 제기를 닦고 과일을 씻어 올리신다고 했다. 함께 하니까, 싫을 이유가 없더라고. 그러게. 함께 하면 누가 그 시간을 싫어할까. 내가 제일 신기한 것은 이 남자들은 다른 집 남자들과 달리 어떻게 집안일에 진입했을까, 하는 점이다.


명절 때마다 내려가면 어머니가 아무리 많은 음식을 미리 준비해놓으셔도, 여자들은 남자들이 먹고 마시는 동안 부지런히 차려내기 바빴다. 씻고 다듬고 무치고 조리고 굽고 볶고 지지고 끓여 상을 차려내면, 다시 남자들이 물린 상을 닦고 씻고 엎고 그릇을 분류했다. 어쩌다 커피 한잔이라도 하려고 앉을라 치면 다음 '남자 손님'을 받아야 했다.  시댁에 가는 것은 우리 여자들에게는 음식을 차리고 대접하는 일과 동의어였다. 


여자일 남자일이 나눠져 이분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어찌 그리 몰랐을까 싶다. 함께 하면 되는 그 간단한 걸 왜 몰라, 여자들끼리 부엌에 모여 부글부글 하다 돌아왔을까. 함께 하자는 말 한 마디를 왜 하지 못했을까.  


맞벌이하던 시절, 남편에게 말했다. 집안일을 좀 나눠 하자고. 나는 말 안 해도 알아주길 바라던 여자였으니까, 네댓 번은 아니더라도, 두세 번은 남편에게 정색을 했을 거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우리 사이에 내 일 네 일이 어딨냐? 함께 하는 거지.


나에게는 집안일을 분담하는 게 '함께' 하는 것이었는데, 남편에게는 먼저 보는 사람이 하면 되는 것이 '함께' 하는 거였다. 그러게. 사랑하는 사람끼리 정없게 굳이 내 일 네 일이 어딨나. 사랑하면 서로에게 저절로 헌신하게 되어 있는 것 아닌가? 먼저 보는 사람이 하면 되지... 남편의 말은 늘 묘하게 맞는 말이어서,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집안일의 수준이 떨어진 게. 결혼 후에는 저절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매일 퇴근하자마자 첫 아이를 받아와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고, 그 와중에 둘째 젖까지 물리는 일만으로도 너무 벅차 더 이상 물건을 제자리에 정돈하고 집안을 말끔하게 청소할 수 없었다. 아이든, 빨래든, 설거지든, 청소는 왜 늘 여자 눈에만 먼저 보이는지. 결정적으로 남편은 늘 10시가 넘어야 퇴근했기 때문에,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나 또한 그 일은 여자일이라고 배우며 자랐기에 영악하게 따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회사일도 집안일도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무능한 여자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죄책감이 짓눌리는 날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 내가 남편을 쥐고 흔들면서 너의 '함께'와 나의 '함께'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했다면, 그는 바뀌었을까? 왜 여자는 남자일로 진입했는데, 너희 남자들은 여자일로 진입하지 않는 것이냐고, 계속 흔들었다면 그는 변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잘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우리 집안은 이제 더 이상 명절에 '함께' 모여 상을 차리지 않는다. 쥐고 흔들어 변하면 좋으련만. 변하느니 부러져버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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