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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19. 2022

이토록 깊은 걱정이야말로

아들과 개의 공통점(11) - 친아버지라는 증표가 아니겠니?



부모의 잘못된 양육 행태가 아이의 부족분을 채워주려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슬픈 일이다.


#1.
늘 아들 뒤꽁무니 좇아다니며 제 손으로 만든 밥을 먹여야 하는 여자가 있다. 좀 대충 먹여도 돼, 배고프면 알아서 먹어, 네가 그러니 애가 입이 짧아진 거야. 주변에서 아무리 훈수를 둬도 여자는 완강하다. 왜? 그녀에게는 난산으로 고생하며 태어나 늘 젖이 부족해 보채던 아이, 소화를 잘못시켜 걸핏하면 먹은 걸 개우던 아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와 장염을 달고 사는 아이와 함께 울고 웃던 밤과 낮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래와 놀 때도 제일 먼저 술래에게 잡히고, 100미터 달리기에서도 매번 꼴찌를 하는 그 아이의 뒤처짐이 다 내 탓인 것 같아 죄책감으로 지새우던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2.
아이의 요청을 절대 거절하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엄마는 늘 최선을 다해 아이 요청에 응답했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는 늘 징징거렸다. 여자에게는 이 아이 외에도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가 둘이나 더 있었는데, 퇴근하고 들어오면 모두 이 여자에게 달라붙어 밥 달라, 씻겨달라, 놀아달라 손을 뻗쳤던 것이다. 여자는 하루 종일 바깥일로도 이미 녹초가 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늘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나쁜 엄마이므로, 여자는 아이들에게 늘 "기다려"라고 말했다.


막내가 말한다. 엄마, 나랑 종이접기 해주세요~ 응, 잠깐만. 엄마 식탁만 빨리 치우고~. 그러는 사이 첫째가 학교 숙제를 좀 봐달라고 한다. 여자는 첫째 숙제를 봐주며 둘째 유치원 가방에서 안내장을 펼쳐 내일 준비물을 훑는다. 아, 내일 미술시간에 쓸 단풍잎을 주워 오라네. 언제 나가지? 그 사이 막내가 다시 다가와 묻는다. 엄마, 이제 종이접기 할 수 있어? 아, 맞다. 잠깐만. 엄마 빨래만 잠깐 돌리고~  좀 전에 애들 씻기고 화장실 바닥에 젖은 채 굴러다니던 옷이 생각난 것이다. 여자는 화장실 빨래를 모아 세탁기로 가져간다. 다용도실엔 급해서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재활용 쓰레기가 바닥을 굴러다닌다. 눈에 보이는 대로 우유병 뚜껑을 열어 안을 헹구고 비닐 라벨을 벗기고, 머릿속으로 언제 단풍잎을 주으러 나가나, 하고 고심하는 사이. 혼자 마루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막내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이렇게 외친다. 엄마, 엄마~~~~!!! 나랑 언제 종이접기 해줄거냐니깐?


우리는 안다. 그 여자는 아이에게 "No"라고 말했어야 했다는 걸. 엄마는 아이가 셋이고, 낮엔 회사에서 일도 하고, 그래서 저녁에 돌아오면 엄마도 너무 피곤하거든. 근데 너네 저녁밥도 먹여야 하고, 먹으면 치워야 하고, 내일 입을 빨래도 돌려야 하고, 준비물도 챙겨야 해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데... 아빠는 늘 회사에서 늦게 들어와서 도울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엄마가 오늘 너무 지쳐서 너와 종이접기 해줄 수 없을 것 같아... 너와 놀아줄 수 없어... 나는 그것마저 해줄 수 없는 엄마야. 하지만 나쁜 엄마라도 어쩔 수 없어. 네가 좀 이해해 주렴.  


그러니 뒤늦게 내 아이가 징징거리는 아이가 된 게 나의 양육 태도 때문이란 걸 알게 된 들.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 싶었던 이 마음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비단 엄마뿐이 아니다.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로마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오비디우스. 2000년 전 그가 쓴 <변신 이야기>에 보면 '나쁜 엄마라서 미안해'의 아빠 버전이 나온다. 바로 출생의 증거를 찾기 위해 아버지 포이부스를 찾아 나선 파이톤 이야기다. 포이부스는 우리가 흔히 아폴론으로 알고 있는 태양의 신. 음악과 시에도 능통하고, 활도 잘 쏘고, 게다가 미남자였던 탓에 - 그 아버지 유피테르(제우스)처럼 - 예쁜 여자, 아니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청출어람이로고!) 애정행각을 벌여 이곳저곳 뿌려놓은 아들이 많았다.   


파이톤도 그중 하나인데, 친구들이 자꾸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리자 출생의 증거를 찾기 위해 아버지 포이부스를 찾아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요청한다. 정말 자신이 친아들이 맞다면, 그 증표로 아버지의 태양 수레를 끌 수 있게 해 달라고. 이에 포이부스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노라"며 성급하게 약속했던 자신의 말을 후회하며 어린 아들을 설득하지만...


사정이 이러하니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죽음의 선물을 내려주었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다시 생각해 보려무나. 지금 이 순간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네 청을 바꾸도록 해라. 너는 내 피를 물려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바라겠지. 나의 이 두려움을 확실한 증표로 네게 주마. 이토록 깊은 걱정이야말로 내가 너의 아버지임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겠니? 자, 내 얼굴을 자세히 봐라. 내 가슴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아버지의 깊은 관심을 발견할 거야.


하지만 아들들이 언제 아비 말을 듣는 종속들인가 말이다. 이미 눈부신 천마와 수레에 눈이 멀어버린 아들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동서고금 우리 아들들의 근자감은 너 파이톤에서부터 시작되었구나)  흥분과 기대감으로 태양 수레에 올라 눈부신 창공을 향해 날아오른다. 그 다음은 우리 모두가 아는 그렇고 그런 스토리. 그는 경이감과 공포를 동시에 만끽한다, 미숙함과 경험 부족은 곧 천마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고삐를 놓친다, 땅으로 추락한다. 궤도를 이탈한 천마들은 제멋대로 날뛰며 산천을 불바다로 만들고... 일설에 의하면 아이티오피아 사람들의 피부가 검은 것도, 리비아 사막이 만들어진 것도 모두 이 녀석 파이톤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아들들이여. 부모 말 좀 잘 듣자! 부모의 이토록 깊은 걱정이야말로 우리가 네 친부모라는 증표란 말이다.


P.S. 체크해보세요. 당신의 댕댕이에게 이토록 깊은 걱정이 있다면, 당신은 진정 개아빠, 개엄마가 맞습니다. ㅎㅎ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저, 이종인 역. 열린책들. '제2권. 신들의 욕정과 인간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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