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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13. 2022

아들이 말했다, 평생 알바만 하고 살아도 될 것 같다고

아들과 개의 공통점(8)- 눈부신 순간은 어떻게 재능이 될까



유튜브에서 희한한 개를 만날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 개도 주인이 부지런했으면 저렇게 담배 심부름을 하고, 공중을 날아올라 멋지게 원반을 낚아채고, 간식 야바위 하는 개로 이름을 날릴 내친김에 돈도 벌어다 줄 수 있었을 텐데! 왜 우리 개는 요 정도밖에 안됐을까. 애정 부족이었을까. 인내심이 모자랐던 걸까. 애초에 기대가 없었던 걸까. 왜 우리는 더 많은 걸 바라고 도전하고 성취하지 못했을까.


큰아이가 3학년 때쯤인가. 한창 스케이트 보드를 타러 다녔다. 영화 <월터의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주인공 월터가 아이슬란드 평원을 배경으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도로를 질주해 내려오는 장면이 얼마나 멋있었던지! 어린이날 선물 어쩌고를 핑계로 스케이트 보드 하나를 사서 슬쩍 들이밀었는데 아들이 덥석 받아 동네 놀이터에 끌고 다니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단숨에! 도로를 질주했다. (엄마들의 뻥이란)


확실히 배우는 감이 좋은 아이였다. 그 길로 주말이면 서울에 있다는 스케이트 보드의 메카를 찾아다녔다. 뚝섬 유원지의 스케이트 보드 파크. 과연 그곳엔 유튜브에서 보던 스케이트 보드의 장인들이 유유히 슬라이딩 기물 사이를 오가며 멋들어진 가오를 뽐내고 있었는데...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캘리포니아의 어느 유명 스케이트 파크장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자유로운 기운이 물씬했다.


낮은 경사의 스타트 박스를 시작으로 쿼터 파이프와 하프 파이프를 오가던 아이가 어느 순간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낭떠러지 코스에 이르렀을 때, 아이가 그 높은 곳에 보드의 턱을 걸치고 여러 차례 숨을 고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옆에서 "할 수 있어, 용기 내 봐. 한 번만 넘으면 돼"라고 재차 응원을 보냈고,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여러 번 물러서다 내딛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보드에 자신의 몸을 온전히 내맡기고 슬라이딩 하던 순간. 지켜보 우리도 함께 안도의 탄성을 내지르며 얼마나 환호했던가.


그 아이가 지금 방에 처박혀 밤낮으로 게임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가끔 생각한다. 그 눈부셨던 경험의 순간들을. 그때 우리를 몇 달간 지켜보던 한 스케이트 보더가 다가와 명함을 건네며 '아이에게 재능이 있으니 자신에게 맡겨달라' 했을 때. 그 경험을 사주었다면 지금 조금은 다른 아이가 되었을까. 그때 과감히 우리가 지갑을 열고 아이를 최고 단계까지 끌어 올렸다면, 그때 정점에서 맛본 짜릿한 희열을 잊지 못해 지금 여러 도전 앞에 망설임 없는 아이로 자랐을까. 그때 자신에 대한 효능감을 지렛대 삼아 지금 열심히 공부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을까.


아들이 자라는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당신의 아들이 축구에 재능이 있으니, 우뇌가 발달한 아이라 체스를 잘하니 우리에게 맡겨봐 주십시오. 하지만 누군가 그런 명목으로 우리에게 수업료를 요구할 때마다 우리는 먼저 의심해 보곤 했던 거다. 애가 진짜 천재면, 그렇게 탐이 나면, 돈을 요구하진 않았겠지. 저건 다 장삿속일 거야. 남편은 평생 학원도 과외도 한번 없이 전교에서 놀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학원에서 하는 공부는 가짜공부고, 집에서 자기주도로 하는 공부만이 진짜 공부였다. 실제로 세상엔 너무나 많은 대회들이 있었고, 아이들의 재능은 그렇게 빨리 발견되는 것만으로도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휩쓸었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천재인 줄 알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그렇고 그런 평범한 재능 중 일부임을 깨닫게 될 뿐이다.


몇 달 전, 아들이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들은 새로 출시된 아이폰을 사고 싶었지만, 2년 동안 쓰고 있던 아이폰은 안타깝게도 너무 쌩쌩해 바꿀 명분이 없었다. 하여, 알바를 해서 아이폰을 바꾸겠다는 것. 이제는 정신 차리고 공부에 올인하겠지, 하고 기다리던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공부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지치다 지친 우리는 방구석을 뛰쳐나와 뭐라도 하겠다 하면 다 허락해줄 참이었다. 그렇게 아들은 꼬박 달을 성실하게 채웠다. 단 한 번도 알바 시간에 늦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한  세 달이 지났을 때 말했다.

"엄마, 이대로 평생 알바만 하고 살아도 될 것 같아."


어떻게 아들은 늘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는지. 우리는 아들이 그 무거운 불판을 닦고 바닥을 청소하며 몇 푼짜리  알바비를 손에 쥐고 나면 "아~ 공부가 제일 쉬운 것 같아요"라고 할 줄 알았다. 고생을 해봐야 세상 이치도 깨닫게 될 거라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아야 어른들 말이 옳다며 돌아올 줄 알았다. 아들 스스로도 제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알바하면서 스스로도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고 싶다고. 하지만 알바를 통해 아들이 깨달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쓸모'였다. 아, 내가 내 아이폰을 스스로 바꿀 수 있을 만큼은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안도.


공부란 건 아무리 쏟아부어도 바로 돌려주는 것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입시 태세로 돌입하는 초등 고학년부터 내내 대학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그 아인 공부가 좋아 보인 적이 없었다. 대학까지는 너무 먼 여정이었고,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 '찐따' 같았다. 근데 고작 주말 4시간 알바를 뛰었는데, 바로 통장에 돈이 꽂혔다! 세상이 자신의 쓸모를 알아봐 주었다.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모르는 철없는 아이에게 그 몇십만 원의 돈은 즉각적인 보상이요, 눈부신 동기부여였다. 바로 돈으로 환산되는 그 방식에 아들은 단박에 매료되었다.


막말로 아들이 공부를 잘하기 바라는 것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길 바라는 것도, 대기업에 들어가길 바라는 것도 다 돈 때문이 아닌가.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주변에 잘 베푸는 좋은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니,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들  방식에 자유로울까.


그 대답 앞에 나 스스로도 자신 있지 못했다. 그러니 나는 이번에도 아들을 이기지 못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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