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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15. 2022

개는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

아들과 개의 공통점(9) - 사춘기, 훼손되는 시간



"엄마~ 나 친구랑 이따가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4학년 때였나.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흥분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걔는 어떻게 시간이 된? 학원 없?"

"몰라~ 암튼 4시까지 만나자고 했어!"


아직까지는 학원이든 운동이든 놀이터든 엄마들 위주의 짜여진 스케줄이 많던 때라, 자기들끼리 처음 약속을 잡았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4시가 될 때까지 재차 시계를 보며 확인을 하던 아들이 4시를 땡, 치자마자 놀이터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리고 30분쯤 지났을까. 아들이 터덜터덜 실망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왔다. 친구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어쩐지  싶었다. 아이들에게 기이할 정도로 늦게 새겨지는 것 중의 하나가 시간 개념이 아니던가! 저들끼리 신나게 약속을 잡은들, 고작 10년짜리 어린 인간이 제시간에 맞춰 나올 리 만무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모둠 활동을 하고, 에버랜드를 가고, 노래방에서 생파를 하면서 차츰 알게 될 터였다. 시간을 잡는 그 간단한 일 하나도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군가의 노력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까지 너는 기대와 실망을, 어긋남과 뜻밖의 결과들의 조합 속에서 우연 같기도 필연 같기도 한 인생의 실타래들을 엮어가겠지. 네 인생을 온통 뒤덮었던 엄마영토들을 차츰 걷어내고 그곳에 너만의 깃발들을 꽂아 나가겠지. 네가 그 영토들을 정복해 나가는 동안, 너를 위해 애써 가꾸어둔 토양 위에서 엄마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발견해 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내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빈 서판에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진달래꽃을 따 전을 부쳐먹고, 생강 꽃을 물에 우려 차를 마시는 일. 쇠뜨기를 똑똑, 떼 레고놀이를 하고 아이가 뺨을 풍선만큼 부풀려 목련 잎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일. 도를 향해 내달리는 아이의 단단하고 그을린 어깨, 온몸으로 눈밭을 구르며 깔깔거리던 너의 웃음소리, 깊은 물속에 자맥질하다 돌고래처럼 솟구치는 너를 바라보는 일. 매 순간 눈부셨던 너의 모든 것을 나는 기억한다. 너는 완벽했다. 나는 너를 통해 유년을 다시 살았다. 두 번째 유년엔 내가 못다 한 모든 것을 너에게 주고 싶었다.


그리고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내가 가장 좋은 것으로 차린 식사를 마다하고 편의점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시작했다. 애써 맞춰놓은 스케줄을 함부로 꼬아놓고, 동년배들에게 배운 욕을 입에 달고 집에 들어왔다. 이를 닦지 않고 옷을 갈아입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열심히 준비해보겠다던 시험은 늘 "다음 시험 때부터"였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핸드폰을 빼앗겠다고 하자 싸늘한 눈빛으로 날을 세웠다. 그때부터는 모든 게 나락이었다.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당근도 채찍도, 이성적인 조언도, 감성 어린 애걸도 아무짝에 소용없었다.


내 아들을 겪으며, 세상엔 꼭 실패하고 망가진 뒤에야 깨닫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말이 엄마가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마지막 말이란 걸 알지만, 아직도 이 말을 철회할 수가 없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선택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들에게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엄마. 그때부터 내게 아들을 바라보는 일은 실패를 지켜보는 일이 되었다. 내가 10여 년 열심히 일궈놓은 완벽했던 세계가 무지한 폭도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무참했다. 그리고 그건 일정 정도 아들과 독립하는 이들이 모두 어느 시절 맞닥뜨려야 하는 통과의례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너를 놓아주는 중이다.


다행히도 내 곁엔 아직 어린아이가 하나 더 남아 있다. 하루 종일 내 일거수일투족을 질척거리며 따라붙는 좀 귀찮은 녀석이긴 해도, 매일 똑같은 사료와 간식과 산책에도 공중을 붕붕 날아오르며 변함없이 기쁨으로 내게 화답하는 우리 집 댕댕이. '알코올 중독과 명랑한 은둔의 작가' 캐롤라인 냅은 아이를 키우지 않았지만 다행히 개를 키웠다. 그리고 <나와 개>라는 책에서 이렇게 우리 댕댕이들을 예찬하지 않던가.


"개는 사람보다 더 훌륭한 가족의 일원일 수 있다. 개들은 쉽게 비난하지 않고, 우울해하지도 않으며, 충성심이 강하고, 우리의 요리 솜씨를 헐뜯지도 않는다." 개는 불평도, 요구사항도 없다. 원하는 건 오로지 나의 사랑, 아니 간식 뿐. 그녀는 말한다. 개는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기대가 없기에 훼손될 일도 없으니 너의 사랑을 무한대로 퍼주어도 결코 배신당할 일 따위도 없다고.


아들을 보며 나는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영토를 지나가는 내 아들에게. 지금 너의 고통이 성장을 위한, 한 세계가 알을 깨려면 어쩔 수 없이 감당해 내야 하는 진통이길. 실패를 통해 네가 인간이고 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길. 신이시여. 오늘도 악으로 달려가려는 그의 발걸음을 붙들어 주시고,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지 않게 그를 보호해 주소서. 아무리 바보 같다고 내게 손가락질하시더라도, 저는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와 함께 했던 눈부신 순간들을 기억하니까요. 그건 제가 지상에서 잠시 엿본 천상의 행복이었으니까요. 그러니 그가 다시 눈부시게 날아오를 날을 저는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엄마란 아이에게 그런 존재니까요. 



<개와 나>, 캐롤라인 냅, 나무처럼. '7장. 가족과 개' (217-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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