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Oct 20. 2022

축구공의 만행

댁내 아들은 얼마만큼 예민하십니까?


본격적으로 사춘기로 진입하기 전, 내 아들의 예민함부터 하소연하는 게 순서일 듯하여. 막 사춘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에피소드 하나를 더 꺼내 들어 봅니다. 지금 봐도 한숨이 절로 나오네.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아디다스 피날레 17 OMB’. 2017년 UEFA 챔피언스 리그 파이널을 기념하여 제작된 아디다스 정품 축구공이다. 3일 전 주문한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언제 와, 연락 왔어?, 보통 며칠 만에 도착해? 아놔 왜 이리 늦는 거야?'를 물으며 수없이 나를 들볶던 그것. 애들 축구공치곤 너무 비싸 우리는 사줄 수 없으니, 정히 갖고 싶으면 너 용돈 모은 걸로 사라 하여 겨우 허락한 그것. 그 축구공이 드디어 도착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날아갈듯한 표정으로 택배 상자 들고 쏜살같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공을 들고 나오는 낯빛이 좋지 않았다.


“엄마~~~공이 좀 이상해.”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 떨어트릴 것 같은 기세로 달려나온 아들이 내 눈앞에 공을 들이민다. 내겐 다 그렇고 그런 축구공. 티 하나 없이 눈부신 새것이라는 거 말고는 전혀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에미가 전혀 공감하는 기색이 아닌 걸 눈치챈 녀석이 재빨리 아빠가 사준 “싼” 축구공을 가져와 다시 코 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여기 봐봐. 공기 주입구 가장자리. 여기가 매끈하지가 않잖아. 이렇게 싼 애들도 마감이 깨끗하게 잘 처리되어 있는데.”


아들의 설명에 그제야 눈을 가늘게 만들어 축구공을 자세히 뜯어봤다. 과연 축구공 한가운데 직경 2밀리미터 정도 되는 공기 주입부가 하나 박혀 있었는데, 그 고무 바킹 가장자리에 실로 미세한 균열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굳이 말하면 0.01 마이크로미터 정도? 베이비 개미가 하품을 한다면 눈 밖으로 찍, 하고 밀어낼 만한 눈물자국 정도의, 운동장에서 한번 뻥 차서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그런 게 100개도 넘게 찍힐 것만 같은 그 정도의 균열이었다.


“10만 원 짜리잖아. 그럼 완벽해야지. 싼 것도 이런 흠은 없는데… 어쩌지? 내가 이걸 얼마나 기다렸는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축구공을 이리저리 더 살펴보던 아들은 급기야 공기주입구의 위치가 하얀 육각형 안이어야 하는데 별 모양 안에 있어서, 게다가 별 모양 정중앙에 있지 않고 남서 방향으로 3밀리미터 정도 치우쳐져 박혀 있기 때문에 이 공은 불량이 분명하며, “이런 공으론 도저히 축구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품을 해서 다시 교환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감했다. 평상시에도 아들의 예민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개인차가 존재하는 걸 클레임이랍시고 반품할 수 있을지, 저쪽에서 받아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협상에 나서 보았다.


"OO야. 네 눈에는 거슬리겠지만, 보통 사람한테는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 흠이거든. 네가 운동장에 나가서 한번 뻥, 차면 바로 생기는 흠집 중 하나야. 그렇게 맘에 안 들면 반품 접수는 일단 해주겠지만, 이런 정도로 반품 사유가 될지 모르겠어. 똑같은 흠을 가진 게 다시 올 수도 있고. 네 맘에 쏙 드는 완벽한 축구공이 다시 오라는 보장도 없거든. 그러니 그냥 쓰면 안 되겠어?"


하지만 몇 번의 설득에도 아들은 고개를 크게 저었다. 울듯 말듯한 표정으로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도저히.


나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뒤적여 구매처를 찾아 반품 신청을 하면서 아들에게 다시 말했다. "그런데, 알지? 이거 반품하면 내일 학교엔 못 가지고 가. 다시 받으려면 지난번처럼 또 기다려야 한다." 그 말에 아들은 그때까지 참고 있던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부짖다.


"안돼~ 내일 꼭 학교에 가져가야 한단 말이야~~~~ 내가 이걸 얼마나 기다렸는데~~~~~"


늘 이런 식이었다. 모든 게 처음 자기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풀리지 않으면 울부짖었다. 오래 전 쇼핑몰에서도 그랬다. 네댓 살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난감이었는지, 먹는 거였는지, 뭔가 자기를 충분히 설득시키지 못한 채 우리가 몇 미터를 진행했던가 보다. 아이는 다시 몇 미터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바닥에 드러누었다. 한번 틀어졌다 싶으면 적당한 타협일랑 없었다. 꼭 다시 처음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서 그 일을 어그러진 그 자리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다. 아이템만 바뀌었다 뿐일지 대여섯 살때에는 요요였고,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팽이로 바뀌었을 뿐. 완벽한 것에 살짝의 흠이라도 생기면 녀석은 울부짖었다. 그때마다 내 딴에 얼르고 달래고 설득시켜보려 했지만, 늘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서로 진저리치고 나서야 겨우 마지못해 진정되곤 했던 거다.


반품 처리를 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이제 좀 감정이  풀렸겠거니 해서 방문 앞에 귀를 붙여보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아이는 '마음의 안식처'인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2차를 하는 중인 것 같았다. 흐느끼고 항변하는 소리가 간간이 문 밖으로 들려왔다. 축구공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을 먹고 치우는 중이었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애가 저러느냐고. 애가 외로워 죽겠다며, 전화를 했다는 거다.


"네에? 외로워 죽겠다고요?"


축구공 하나가 잘못 왔다고 이게 외로워 죽을 일인가. 하~.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약간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궁금증이 일어 아들을 붙들고 물었다. 할머니한테 너 외롭다고 했다며? 이게 그렇게 외로워 죽을 만한 일이니? 나는 아들의 감정이 이젠 조금 진정되었겠다 싶어 약간 가벼운 어조로 물어봤을 뿐인데... 하~ 아들이 눈에 다시 핏대를 세우고 나에게 울부짖었다.


"엄마는 우스워? 어? 내 감정이 우습냐고~~~"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무얼 놓치고 있는지 몰랐다.


(눈물의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것은 양말에서 시작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