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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7. 2022

네 하루치 그리움이 원망으로 바뀌던 시간

그릇된 양육 태도는 어디로부터 기인하는가



아직 가부장적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던 시절. 맞벌이 하는 집의 진풍경. 그 풍경 속에는 늘 아이들에게 절절 매는 엄마와 징징거리는 아이들이 있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돌아와 아이들 저녁을 차려 먹이는 여자. 재빨리 밥을 해치운 막내가 말한다. 엄마, 나랑 종이접기 해주세요~ 응, 잠깐만. 엄마 식탁만 빨리 치우고~. 엄마가 미친듯이 남은 반찬을 정리하고 개수대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첫째가 말끔하게 치워진 식탁에 가방을 가지고와 학교 숙제를 시작한다. 미치 설거지를 마치지 못한 여자는 첫째 요청으로 식탁에 불려와 수학 숙제를 봐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앞에 앉은 둘째가 유치원 가방에서 식판을 꺼내고 안내장을 펼쳐 내일 준비물을 눈으로 훑는다. 아, 내일 미술시간에 쓸 단풍잎을 주워 오라네. 언제 나가지? 그 사이 막내가 다가와 묻는다. 엄마, 이제 종이접기 할 수 있어? 아, 맞다. 잠깐만. 단풍잎 주으러 나갔다 오는 사이 빨래를 돌려놓는 게 좋겠군. 막둥아 잠깐만. 엄마 빨래만 잠깐 돌려 놓고~. 화장실 앞에는 아이들이 갈아입은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옷이 한가득. 여자는 빨래통에 모아져 있던 빨래까지 함께 담아 세탁기로 가져간다. 빨래를 돌리고 나니 다용도실엔 급해서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재활용 쓰레기가 바닥을 굴러다닌다. 눈에 보이는 대로 우유병 뚜껑을 열어 안을 헹구고 비닐 라벨을 벗기고, 머릿속으로 언제 단풍잎을 주으러 나가나, 하고 고심하는 사이. 혼자 마루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막내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이렇게 외친다. 엄마, 엄마~~~~!!! 나랑 언제 종이접기 해줄거냐니깐?


우리는 안다. 그 여자는 아이에게 "기다려"가 아니라, "No"라고 말했어야 했다는 걸. 엄마는 아이가 셋이고, 낮엔 회사에서 일도 하고, 그래서 저녁에 돌아오면 엄마도 너무 피곤하거든. 근데 너네 저녁밥도 먹여야 하고, 먹으면 치워야 하고, 내일 입을 빨래도 돌려야 하고, 준비물도 챙겨야 해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데... 아빠는 늘 회사에서 늦게 들어와서 도울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엄마가 오늘 너무 지쳐서 너와 종이접기 해줄 수 없을 것 같아... 너와 놀아줄 수 없어... 나는 그것마저 해줄 수 없는 엄마야. 하지만 나쁜 엄마라도 어쩔 수 없어. 네가 좀 이해해 주렴.  


하지만 우리는 아이에게 No라고 말하지 못했다. 퇴근하자마자 모두 이 여자에게 달라붙어 밥 달라, 씻겨달라, 놀아달라 하는 아이들 때문에 녹초가 되어도, 아이들에게는 늘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나쁜 엄마이므로. 우리 여자들은 늘 아이들에게 "기다려"라고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내 경험상 잘못된 부모의 양육 태도는 어느 정도 아이의 부족분을 채워주기 위한 노력에서 기인한다. 나 같은 경우도 그 부족분이 맞벌이었다.


아침마다 울고 불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어린이집 선생님 손에 내던지곤 도망치듯 회사로 출근하던 시절. 여자가 아이 낳고 다니기에 괜찮은 회사였다. 야근이 많지 않고 내 할 일만 하면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해도 되는 좋은 회사였다. 6시가 땡, 치면 나는 아이를 찾으러 헐레벌떡 퇴근길을 달렸다. 하루 종일 기다렸을 아이를 위해 바삐 서둘렀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나를 맞아 나오는 아이의 표정은 늘 뭔가 달갑지 않았다. 그러곤 집에 돌아온 그때부터 생떼가 시작되었다.


뭘 해도 아이의 성에 차지 않는 것 같던 저녁이 기억난다. 서둘러 조기를 구워 저녁상을 차렸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수저 위에 올려준 조기를 쳐서 후드득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치카치카 안 하겠다는 걸 얼러서 겨우 시켜놨더니 다시 체리를 먹어야겠다고 우겼다. 목욕을 시켜 나왔더니 이번엔 옷을 안 입겠다며 온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내가 아무리 육아에 서툰 엄마였다 해도, 뭔가 좀 지나치다 싶었다.


그리고 알았다. 맞벌이를 그만 두고 나서 내게 삶의 절대분의 여유가 생기던 어느 해. 한갓진 놀이터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봄나무 위에 내려앉은 햇빛을 무심코 바라보는데, 문득 그 시절 내 마음에 걸렸던 그게 뭐였는지 떠올랐다.


너의 눈빛이었다. 나를 맞으러 나오던 네 눈빛. 그건, 그리운 사람을 맞이하는 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건 하루 종일 뭐하다 이제 들어와 엄마 노릇이냐며 원망하는 아이의 눈빛. 벨이 울릴 때마다 혹 우리 엄마일까 보아 귀를 쫑긋거리던 너. 하지만 너의 차례는 늘 돌아오지 않았다. 띵똥, 띵똥... 띵똥 띵똥 띵똥 띵똥. 같은 반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에야 네 차례가 되었다. 네 엄마는 늘 맨 마지막에야 나타났다. 너는 매일 열번이 넘는 띵똥거림과 열번이 넘는 배신의 마음을 끌어안고 엄마를 기다렸다. 그러니 너의 엄마가 제아무리 6시에 땡 치자마자 너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온들, 네가 엄마 손을 잡고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네 하루치 그리움도 이미 저만치 물러나 원망으로 뒤바뀌어 있다는 걸, 나는 미처 몰랐다. 


나는 그때 너를 보자마자 먼저 꼬옥 안아주었어야 했다. 충분히 눈 맞추고, 하루 종일 무얼 하며 너는 재미있었는지, 그동안 엄마도 얼마나 네가 보고 싶었는지부터 이야기 나눴어야 했다. 밥 먹이는 일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나는 그때 생선을 잘 받아먹지 않는다고, 내가 챙겨 준 옷을 입지 않는다고, 빨리 잠들지 않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흔들었을까. 입을 열지 않고 옷을 입지 않겠다는 네 옆에 같이 드러누워 그저 너를 안아주어야 했다. 낮동안 충분하지 못했던, 아직 태어난 지 3년도 채 익지 않은, 너의 작고 여린 몸통을 꼬옥 끌어안아야 했다. 네가 보고 싶었다고, 하루 종일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내일도 또 싫다는 너를 낯선 이의 품에 던져놓고 엄만 출근해야 한다고, 하지만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엄마도 때론 힘들다고…


그때 말하지 못했다. 그땐, 내게 주어진 직무- 하루 종일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내가 해내야 하는 의무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했다. 그리고 아이 사춘기 때 내가 아이에게 'No'라 말해야 할 때마다 나를 주저앉히던 지분의 몇 프로가 이때의 기억에 기인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너에게 엄마가 전부였던 그때, 너를 충분히 채워주진 못한 엄마였다는. 나는 그 죄책감을 아직도 충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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