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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Nov 28. 2022

아들이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해도 되고, 아들은 하면 안 되는 말



얼마 전. 킥보드를 타다 앞니를 하나 잃고 한 달여 치과 치료를 받고 있던 아들이 말했다. 그 큰 일을 겪고도 아무런 인생의 교훈 없이 실실거리며 돌아다니는 것 같아 한동안 다시 내 불안을 자극했던 그 아들이다.


"엄마, 사실 며칠 전 새벽에 나 죽고 싶었다. 자살할까? 생각했어."

"......"

"그런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가 죽지 않고 "반병신"이 된 어떤 유튜버를 본 거야. 그걸 보니, 아, 이건 아니겠다 싶더라."


이런 얘길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들을 나는 또 어느 정도의 톤으로 받아야 할까, 잠시 망설인다.

"그 유튜버에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겠네."

그리고, 다시 주저리 잔소리가 이어진다.


엄마도 예전에 죽고 싶은 때가 있었는데, 있잖아. 아들아. 사람이 죽고 싶다고 그렇게 쉽게 죽어지지도 않더라. 너도 그 유튜버 봐서 알겠지만, 사람 목숨이 은근히 질기다 너. 그러니, 이왕에 사는 거 근근이 불편하게 살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면 좋지 않겠냐. 네 몸뚱이 아끼고 사랑하면서 말이야.

(고2 아들과 이런 이야기나 하는 엄마가 될 줄이야)


아들이 처음 자살 이야기를 했을 때는 사춘기가 극에 달하던 3년 전쯤이다.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가는 걸로 남편과 실랑이하던 아들이 결국 입에 치약거품을 문 채로 남편 손에 잡혀 아파트 밖으로 질질 끌려 나왔다. 그때 아들이 말했다. 우리를 향해, 이 자리에서 그대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버리겠다고.


남편과 내가 그렇게까지 막무가내인 부모는 아니다. 당시 아들은 가족이 함께 해오던 것-가족 모임, 명절, 크리스마스 등을 모두 내팽개친 무조건 친구 우선순위로 저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지내고 있었다. 교회에 가는 것은 그저 그 수십 가지 가족이 함께 하던 경우의 수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차라리 교회에 가기 싫다고 명확히 이야기했으면 우리는 우리대로 준비하고 떠났을 것을... 그날도 교회에 가긴 가야겠는데 딱히 거절할 명분은 없고 하니, 아들은 이도 저도 결정하지 못한 채 화장실에 들어가 오래오래 이를 닦으며 시간을 질질 끌어대고 있었던 거다. 안 그래도 시간에 강박이 있는 아빠 신경을 슬슬 긁어대면서.


그리고 그때, 애를 내버려 둔 채 교회에 가는 차 안에서 알았다. 치약 거품을 뿜으며 죽겠다고 울부짖는 아들은 절대 이 길로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을 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던 수많은 청소년들과 뒤늦게 아들의 자살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이 나의 머릿속을 쑤시며 불안을 충동질하는 와중에도, 나는 알았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부모는 내 아이가 적어도 그 상황에서는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 같은 게 생기기도 하다는 걸.


나중에 상담사인 후배를 통해 과격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더욱 확신했다. 부모들로부터 자기 의견이 반복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이들이나 어느 순간 벽에 머리를 찧거나 손목을 긋는다고. 과격한 방식이 아니면 부모가 자기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부모를 협박하는 거라고. 그러니 결국 마지막에는 뭐든 자기 뜻대로 하는 내 아들이 굳이 자기 몸에 손댈 일은 없겠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사춘기 기간 동안 "이럴 거면 내 집에서 나가"라고 등 떠밀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의기양양하게 집을 나섰던 아들은 기껏 전철을 타고 대여섯 정거장 떨어진 백화점을 배회하다 옆동네 던킨 도너츠에 앉아 몇 시간을 보내고는 돈이 떨어지자마자 집구석으로 기어들어 왔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자기 손해 볼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뭐든지 처음에나 떨리는 법. 가출 사건 이후 엄마들이 깨닫는 건 이놈들이 평생 내게 들러붙어 살지 않도록 살살 다독여서 빨리 내보내야겠다는 확신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그저 그렇게 처음 겪는 일들을 통해 조금의 감을 얻는 일이다. 내 불안의 촉수를 조금 다듬어 같은 일에 똑같이 날뛰지 않게 벼리는 것.


p.s. 아 참, 아들이 "죽고 싶었다"라고 했던 날. 내가 속으로 반성했다고 말했던가. 다짐했다. 내가 평상시 입버릇처럼 하던 "죽고 싶다"는 말. 나부터 하지 않아야겠다고. 나는 해도 되고 아들이 할 수 없는 말이란 없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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