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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29. 2022

예민한 아들 둔 엄마들만 아는 이야기

하나 둘 놓아가던 마지막 열망들에 대하여

먹는 것부터 책을 빌려 읽히는 것까지. 아이 취향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점점 더 나는 아들의 입맛에 맞추지 못하는 엄마가 되어 가는 와중에... 하나 둘 놓게 되던 시절 이야기. 지금 보면 왜 이렇게 애한테 휘둘렸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붙들 수밖에 없었던 에미의 열망 같은 거랄까요. 그때 심정이 드러난 일기장 하나를 또 까보려고 합니다. 역시 예민한 아들 없으신 분은 스킵하시는 게...  



남편이 급성장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설사가 멈추지 않던 일요일 저녁, 혹시나 하여 응급실로 내원한 것이 바로 입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응급실 침대도 모자라 대기실 의자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응급실 침대로 옮겨지자마자 코에 호스를 밀어 넣는 작업을 시작했다. 장으로 내려가지 못한 분비물을 뽑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코로 호스를 넣는 데 실패해 몇 차례 토사물을 받아내며 사투를 벌인 다음 날 새벽에야 간신히 응급병동 입원실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간이침대에서 구부리고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난 첫날 저녁. ‘애들 얼굴이 보고 싶다'는 남편 말에 잠깐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함께 죽을 사러 내려간 지하에서 발견한 버거킹. 동네에 잘 없는 그 버거킹! 반가운 마음에 아이들을 꼬들겨 주문을 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좀 전에 영업이 끝났음을 알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큰아들눔의 한마디 "아, 너무 먹고 싶었는데 아쉽다~!"


훗,  아쉽긴 개뿔. 아까만 해도 적극적으로 햄버거 먹자고 권유한 건 엄마인 나거든? 큰 놈은 입이 워낙 짧은 데다 또래에 비해 키도 작고 체중도 미달이라 늘 뭐라도 먹겠다고만 하면 아낌없이 지갑이 열린다. 그러니 5분 전만 해도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었던 장본인은 바로 아들놈이다.  "아니야~~ 진짜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말이야. 엄마, 집에 돌아가는 길에 꼭 사줘~나 정말 먹고 싶어~~." 그저 햄버거 주문이 불발되니 더 아쉬워진 것뿐. 내가 그 속을 모를 리 없건만!


위에서 기다리는 아빠 생각에 서둘러 죽을 데워 올라가는데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들눔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뒤통수를 잡고 길게 늘어진다. 

"알았다고~~! 가다 있으면 사준다고. 내가 언제 너 먹는다는 거 못 먹게 한 적 있니? 문 닫았다니까 못 사준 거잖아. 버거킹이 잘 없어서 확답을 못해주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가는 길에 버거킹 있나 잘 찾아봐. 사줄게!"

"치~안 사줄 거면서." 이미 기분이 상한 녀석은 뻔히 내 의중을 꿰뚫으며 작정한다. 그렇게 멀리 돌아가며 사줄 기세는 아닌 걸 눈치챈 거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계속 국수가 먹고 싶다는 둥,  배가 고파 죽겠다는 둥 툴툴거리는 녀석을 듣다 못해 한마디 했다. 

"OO야. 먹고 싶은 거 한번 못 먹은 게 그렇게 못 참을 일이니? 안 사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문 닫아 그런 건데." 

"정말 먹고 싶었단 말이야." 

"알아. 그래서 가게 찾아보라고 했잖아." 

"엄마가 주변 검색 돌려보면 되는데 안 해줬잖아."

"그래, 맞아. 엄마 생각에 검색까지 하며 찾아 들어가서 먹을 건 아닌 거 같았어." 

"그것 봐. 사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저녁을 굶은 것도 아니고, 간식으로-그것도 꼭 먹고 싶었던 것도 아닌 햄버거 하나를, 안 사주겠다는 것도 아니고-마침 영업이 종료되는 바람에 못 사준 게 그리 큰 잘못이란 말인가. 


"OO야, 엄마 아빠 갑자기 아파서  응급실 실려오는 바람에 이틀 전부터 밤 꼬박 새우고, 토한 거 받아내고 치우고 나름 고생 많았거든. 엄마 감기도 아직 말끔하게 가시지 않아서 컨디션도 별로야. 아까 운전도 막 휙휙, 하고 불안한 거 봤지? 지금 가서 아빠 내일 출장 갈 짐도 싸야 한다고. 신경 쓰고 피곤해서 얼렁 집에 가서 씻고 눕고 싶은 생각뿐인데... 네가 대신 운전이라도 좀 해줄래?"


억지를 부리는 목소리. 톤도 한 단계 높아지면서 갈라진다. 아이의 구시렁거림이 잦아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후루룩 몇 술 뜨더니 "역시 컵라면은 맛이 없네" 하면서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나는 말없이 씻으러 목욕탕에 들어갔다. 


다음 날, 퇴원 수속을 밟으러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버거킹 생각이 났다. 자기 입맛에 딱 안 맞으면 바로 재수 없게 구는 꼴이 맘에 안 들었지만, 기왕에 생각난 거 어제 일도 만회할 겸, 머릿수에 맞춰 햄버거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마침 점심을 안 먹었다던 녀석이 와~하며 달려오며 하는 말.

"엄마~ 롱치킨버거 사 왔지?" 

"아니~~? 불고기와퍼 사 왔는데? 너 원래 불고기버거 먹잖아!"

"아니야~~ 나 버거킹은 롱치킨버거라고."

급 실망한 표정으로 힐끗 종이꾸러미를 내려다본 아이가 분통을 터트린다.

"내가 어제도 롱치킨버거라고 했는데... 아~ 좀, 전화 한번 해주면 되는 걸!."

"너 롯데리아도 맥도널드도 다 불고기버거 먹길래 당연히 불고기버거인 줄 알았어. 미안. 어젠 경황이 없어서 못 들었다고. 오늘만 그냥 먹으면 안 돼?"

"됐어~나 그럼 라면 삶아 먹을래."

"너 어제도 라면 먹었잖아. 밥 볶은 것도 있고 죽이랑 카레도 있으니까 그냥 밥 먹어!!!"

"싫어. 라면 먹을 거야."


뚜껑이 열렸다. 차라리 사 오질 말 것을 괜히 사 와서 이게 뭔 꼴이람. 옆에서 영문을 모르고 듣고 계시던 할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OO야. 그럼 엄마한테 이따 다른 거 사달라고 하고 지금은 대충 먹어."

"엄마가 안 사준단 말이에요. 우리 동네 없다고, 멀리 나가야 한다고 안 사줘요." 

당연하지. 내가 미쳤냐? 너 햄버거 하나 사멕인다고 왕복 1시간이나 차 몰고 나가게?

"알았으니깐, 라면 먹을 거면 네가 삶아 먹어. 그리고 너 어제 다리 아프댔지? 계속 아파서 병원 가야 할 거 같으면 좀 있다 아빠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줄 때 같이 나가자. 병원 갈 거면 빨리 준비해."

"지금은 배 안 고파."

"병원은 갈 거니 말거니?" 

"안 가~~~."

"알았다. 병원 갈 거면 지금 가자고 분명히 말했다. 이따 딴 소리 하지 마라."

"....."


참자 참아. 부글거리는 가슴을 끄잡아내리면서 차려놓은 점심을 대충 치운다. 현관에는 아침에 큰아들눔에게 대신 반납을 부탁했던 도서관 책이 그대로 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핸드폰이나 들고 앉을 거 같기에 겸사겸사 부탁했던 건데,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혼자는 못 가겠다며 돌아오면 같이 가자고 했던 그 책이다.

"책은 다 봤니? 안 봤지? 내가 미쳤지. 보지도 않는 책을 맨날 무겁게 빌려가지고는. 내가 미쳤어. 다시는 빌려오나 봐라."

양쪽 어깨에 가방을 둘러매고 나머지 책을 손과 팔에 지탱하며 차로 가지고 내려오며 셀프한탄이 시작된다. 

"어그, 저놈의 다리도 지난번에 하도 계속 앓는 소릴 해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왜 오셨어요"를 두 번이나 했다고. 지 동생 같았음 뼈가 부러지고 저절로 아물어도 몇 번을 했겠다."

옆에 앉은 남편이 또 시작이구나, 하는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그럼 가지 마."

"근데 저렇게 아프다고 난린데 어떻게 또 안 가. 하루 이틀 지나도 더 아파진다고 하니 가봐야지 어쩌겠어. 지난번에 한 번은 대수롭지 않게 봤다가 깁스한 적도 있잖아. 그냥 봐서야 알 수가 있나."


남편을 공항버스 타는 데까지 내려주고 도서관에 들른다. 책을 반납하고 그냥 나오려는데 반납 서가 위에 지난번 애들이 재밌게 본 시리즈 최신판이 보인다. 9권을 반납하고, 다시 12권을 빌렸다. 스스로 빌려오진 않아도 바닥에 깔아놓으면 몇 권이라도 들여다보니 이 짓도 안 할 수가 없다. 만화책이라도-안보는 애들도 있다 하니 그나마 좋은 만화책 위주로 빌려다 놓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 가끔 만화책이 아닌데도 아이들을 사로잡는 멋진 책을 만나기도 하니, 이 짓을 아니할 수 없다. 애들 키우는 일이 햄버거 하나에도 이리 다양할 진대, 우린 얼마나 많은 가치 판단의 기로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괴로워하며 살고 있을까. 그저 그 선택이 돌이킬 수 없이 크게 잘못된 선택만이 아니길 바랄 뿐.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들눔이 아깐 미안하다며, 다리가 너무 아프니 병원에 데려다 달란다. 아. 아프다는 녀석의 청을 내 스케줄에 맞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해야 하나, 마지못해 따라나서야 하나.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아이의 요구에 맞춰하게 되는 나는 일관성이 없는 엄마인가, 응석받이 엄마인가. 결국 이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한 사람의 역사를 이루는 큰 물줄기가 되는 것인데, 아, 나는 매일매일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오늘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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