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케이 Jan 21. 2024

두려움은 용기를 낳는다

뭔가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는 용기가 두려움을 줄여준다

살면서 모두가 두려움을 마주한다. 넘어지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고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대처하면서 산다.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 두려움은 무조건 피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고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대처할 여유조차 없이 다가온 두려움에 맞서야 할 때도 있고, 불확실한 두려움을 스스로가 점점 더 키워가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수 있지?', '도대체 일이 왜 이지경까지 되었을까?'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현상을 잘 이해하기도 어렵기에 '두려움'은 우리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어릴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하고 조직을 이끄는 사장이 된 지금도 두려움은 익숙하지 않은 무서움이다. 두려움을 파고 들어가면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스스로 심하게 자책하면서 상처를 내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를 받아도 두려움을 빠르게 극복하는 건 대부분 어렵다. 어쩌면 '두려움 극복'이라는 말은 쉽게 쓸 수 없는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누군가에게 터 놓고 얘기를 할 수 없다면 그 답답함이 병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리더들에게는 특히 취약한 부분이다.



내가 잘못을 명확히 했거나, 문제의 원인을 명확인 제공을 해서 생긴 두려움은 대부분 '책임'과 관련이 있다. 진심을 다해서 끝까지 책임을지면 그 두려움은 대부분 오래가지 않고 해결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아니거나, 잘잘못을 따지기가 어려운 두려움은 '책임'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쌍방책임의 접촉사고에서도 그 해결에 있어서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오히려 억울한 마음에 화병이 생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런 경우의 두려움은 아쉬움, 서운함, 원망, 배신감, 심지어 복수심까지 일어난다.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당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 대부분 나도 모르게 마음에 상처가 생긴다. 그래서 '법'대로 하기도 하면서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어두운 터널로 함께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속 상처를 더 키우기도 한다.


'용기'는 그런 상황에서도 문제를 명확히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준다. 나쁜 일이나 두려운 일이 있더라도 먹고살려면 일은 또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억울함에 기반한 두려움 때문에 일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일을 결정해서 해야 한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대적할 수 있는 내 안의 유일한 무기는 '용기'이다. 두렵고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용기를 쉽게 낼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뭔가를 해야 하는 용이글 내야 한다. 그게 그나마 두려움을 줄여 줄 수 있다.



창업 초기에 여러 속상한 일들이 많았다. 특히 사람과 관련한 일들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 한편에 불편함과 억울함이 남아 있다. 사업 확대를 위해서 어렵게 모셔온 임원이 얼마 후 회사의 주요 직원들과 함께 퇴사하여 경쟁사를 설립한 일이 있었다. 사업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직원들의 이탈은 회사의 '존망'이 결정될 수 있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며칠 동안 억울함과 원망, 그리고 사람을 너무 '믿는 것'에 대한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내가 이 회사를 다시 끌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여러 질병까지 얻게 되었다. 


매일같이 한강을 가서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왜 막을 수 없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생각의 시간조차도 사치라는 걸 알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급여와 세금 등 회사 운영비를 위해서 또 앞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돌아갈 곳도, 피할 수 있는 여유도 없었기에 다시금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추스르고 회사에 남아준 몇 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힘을 합쳐 다시 시작을 했다. 그 후 그 사업은 더 이상 성장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회사는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사업군은 더 다양하게 넓힐 수 있었고 그때 낼 수 있었던 '용기'가 많은 것을 바꿔 변화의 기회를 주었다.  


당시 사람으로 인한 여러 두려운 일들을 종종 겪었다. 그때는 어렸고, 지켜야 할 것보다 나아가야 할 일들에 집중해야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겪는 일들이라 스스로 위안했다. 스타트업에서는 함께 하는 조직에 뜻이 맞지 않거나 대표에게 서운한 게 있을 때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픈 상처가 되어 나를 괴롭히기도 하는 그런 잊히지 않는 과거가 되기도 한다. 



용기는 두려움에 대응해서 뭔가를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게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면서 마음속 만리장성을 쌓아도 '마음의 상처'만 더 커지는 경우가 많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작을 수도 있다. 혹은 두려움 극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일 수 도 있지만 선택해서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마음속에 점점 커지는 상처는 막을 수 있다. 그게 어딘가? 내가 짜증 내고 걱정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데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잘 넘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뭔가를 하는 것'을 결정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이전 18화 이대로 끝이 없는 일을 반복할 수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