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는 용기가 두려움을 줄여준다
살면서 모두가 두려움을 마주한다. 넘어지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고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대처하면서 산다.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 두려움은 무조건 피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고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대처할 여유조차 없이 다가온 두려움에 맞서야 할 때도 있고, 불확실한 두려움을 스스로가 점점 더 키워가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수 있지?', '도대체 일이 왜 이지경까지 되었을까?'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현상을 잘 이해하기도 어렵기에 '두려움'은 우리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어릴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하고 조직을 이끄는 사장이 된 지금도 두려움은 익숙하지 않은 무서움이다. 두려움을 파고 들어가면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스스로 심하게 자책하면서 상처를 내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를 받아도 두려움을 빠르게 극복하는 건 대부분 어렵다. 어쩌면 '두려움 극복'이라는 말은 쉽게 쓸 수 없는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누군가에게 터 놓고 얘기를 할 수 없다면 그 답답함이 병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리더들에게는 특히 취약한 부분이다.
내가 잘못을 명확히 했거나, 문제의 원인을 명확인 제공을 해서 생긴 두려움은 대부분 '책임'과 관련이 있다. 진심을 다해서 끝까지 책임을지면 그 두려움은 대부분 오래가지 않고 해결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아니거나, 잘잘못을 따지기가 어려운 두려움은 '책임'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쌍방책임의 접촉사고에서도 그 해결에 있어서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오히려 억울한 마음에 화병이 생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런 경우의 두려움은 아쉬움, 서운함, 원망, 배신감, 심지어 복수심까지 일어난다.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당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 대부분 나도 모르게 마음에 상처가 생긴다. 그래서 '법'대로 하기도 하면서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어두운 터널로 함께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속 상처를 더 키우기도 한다.
'용기'는 그런 상황에서도 문제를 명확히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준다. 나쁜 일이나 두려운 일이 있더라도 먹고살려면 일은 또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억울함에 기반한 두려움 때문에 일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일을 결정해서 해야 한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대적할 수 있는 내 안의 유일한 무기는 '용기'이다. 두렵고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용기를 쉽게 낼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뭔가를 해야 하는 용이글 내야 한다. 그게 그나마 두려움을 줄여 줄 수 있다.
창업 초기에 여러 속상한 일들이 많았다. 특히 사람과 관련한 일들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 한편에 불편함과 억울함이 남아 있다. 사업 확대를 위해서 어렵게 모셔온 임원이 얼마 후 회사의 주요 직원들과 함께 퇴사하여 경쟁사를 설립한 일이 있었다. 사업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직원들의 이탈은 회사의 '존망'이 결정될 수 있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며칠 동안 억울함과 원망, 그리고 사람을 너무 '믿는 것'에 대한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내가 이 회사를 다시 끌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여러 질병까지 얻게 되었다.
매일같이 한강을 가서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왜 막을 수 없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생각의 시간조차도 사치라는 걸 알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급여와 세금 등 회사 운영비를 위해서 또 앞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돌아갈 곳도, 피할 수 있는 여유도 없었기에 다시금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추스르고 회사에 남아준 몇 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힘을 합쳐 다시 시작을 했다. 그 후 그 사업은 더 이상 성장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회사는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사업군은 더 다양하게 넓힐 수 있었고 그때 낼 수 있었던 '용기'가 많은 것을 바꿔 변화의 기회를 주었다.
당시 사람으로 인한 여러 두려운 일들을 종종 겪었다. 그때는 어렸고, 지켜야 할 것보다 나아가야 할 일들에 집중해야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겪는 일들이라 스스로 위안했다. 스타트업에서는 함께 하는 조직에 뜻이 맞지 않거나 대표에게 서운한 게 있을 때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픈 상처가 되어 나를 괴롭히기도 하는 그런 잊히지 않는 과거가 되기도 한다.
용기는 두려움에 대응해서 뭔가를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게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면서 마음속 만리장성을 쌓아도 '마음의 상처'만 더 커지는 경우가 많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작을 수도 있다. 혹은 두려움 극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일 수 도 있지만 선택해서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마음속에 점점 커지는 상처는 막을 수 있다. 그게 어딘가? 내가 짜증 내고 걱정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데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잘 넘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뭔가를 하는 것'을 결정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