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로즈의 계단 : 현실 세계에서는 닿을 수 없는 것
2020년 블랙홀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 공동 수상자 중 한 명인 로저 펜로즈 옥스퍼드대 교수가 그의 아버지 이오넬 펜로즈와 함께 고안해 대중에게 알린 "펜로즈의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은 뫼비우스띠처럼 계단에서 오르거나 내려가도 제 자리로 돌아오는 그런 안타깝고 짜증 나는 계단이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시간축을 더하면 4차원이라 얘기도 할 수 있으니 3차원에 살고 있다고 단정 짓기도 애매합니다.)에서는 불가능하고 2차원에서만 구현 가능하다. 2차원 계단에서도 착시 현상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하는 일 각각이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 끊임없이 진행만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때가 많다. 사업에서는 시작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끝도 반드시 내야 한다. 시작은 했지만 언제 시작을 했는지 언제 끝날지 모를 때, 내가 혹은 이 작업이 펜로즈의 계단 위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오르막에 오르면 계속 오르막, 내리막으로 향하면 끝도 없는 내리막. 선택을 해서 걷다 보면 시작도 끝도 구분이 불가능 해진다. 내가 진행하는 여러 일들에서도 펜로즈의 계단 위에 놓이는 상황이 가끔 발생한다. 이 계단은 이미 만들어진 계단을 찾아 올라가거나, 스스로 만드는 것들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내가 만드는 것이다. 게을러서, 두려워서, 불안해서, 억울해서, 아쉬워서, 미련이 남아서, 물러날 방법을 몰라서, 결정을 하지 못해서..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면 나도 모르게 펜로즈의 계단을 걷게 된다.
"저희 제품에 대한 소개 발표 후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제품을 소개하고 고객에게 자주 피드백으로 듣는 긍정적인 얘기들이다. "분위기는 좋았다." 사실 이 말을 전하는 사람 혼자서 그 발표회장에 참석한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얘기를 듣고 전달하는 우리 직원의 말은 더 불확실할 수 있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았다"라는 말을 근거 없이 믿을 때가 많다. 회사 분위기가 어두울 때는 그 가벼운 말 한마디도 믿고 싶어 진다. "우리도 잘했지만 더 적합한 회사가 있어서 다음 기회에 함께 하자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다음에는 꼭 우리랑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네요." 바라는 대로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언제나 '다음'을 믿는 게 문제다. '다음'이란 없는 것인데 말이다. 펜로즈의 계단을 만드는 순간이다.
결과는 실패인데 과정은 나쁘지 않다는 다소 '이상한 분석'이 사업에서는 많이 일어난다. 그런 '이상한 분석'이 어리섞은 행동으로 이어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펜로즈의 계단에 올라설 수 있다. 목적지에 대한 명확한 묵적이 없거나 멈춰야 할 분명한 기준이 없으면 끝이 없는 계단 타기를 하게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도 펜로즈의 계단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일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찾고 해결을 하고 반복하지 않아야 스스로를 의미 없는 반복을 피할 수 있다.
노력하는 것이 가치 있고 중요하다지만 끝도 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펜로즈의 불가능한 계단 타기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의 계단 오르기와 계단 갈아타기를 해야 한다. 절대 이뤄지지 않는 불가능한 계단에 올라타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준이 답이다. '기준'을 만들고 점검하고 돌아보면 가능하다.
1) 펜로즈의 계단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 파악
2) 정리해야 할 일들(내려가는 계단)과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것들(올라가는 계단)을 분석
3) 각각의 일들에 대한 '기준'들 마련
4) 행동으로 진행
5) 새로운 일들은 '기준'을 먼저 정하고 실행
기준을 '목표'로 잡을 수도 있다. 개념적인 목표보다는 목표를 구체화하는 게 더 나은 기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년대비 성장' 보다는 '영업이익 **억 달성'등 의 구체성 있는 목표가 좋다. 그때까지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다. 힘들지만 목표를 보고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을 이뤄가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다. 계단 타기를 하다 보면 계단을 오르는 것인지 내려가는 것인지 못 느껴질 때가 가장 위험하다. 이때도 기준을 따르는 것이다. '언제까지 사용자 ** 명 확보'는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의 기준은 기간과 숫자만 달리 표현하면 충분히 제자리걸음을 피할 수 있다. 시작할 때는 기준을 정하고 스스로 정한 점검 시점에 그 일들에 대한 결과를 점검한다. 그리고 판단 시점에서는 기준에 따라 결과를 판단하여 향후 결정(목표 고도화 및 멈춤)을 하면 펜로즈의 계단도 활용할 수 있다.
오늘도 끝나지 않는 2차원 평면 속 계단을 계속 오르고 내리는 착시 현상에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자문하지 않으면 자각하기가 어렵다. 자문과 자각의 행위가 귀찮고 힘들어서 피하게 되면 지금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을 반복해서 쫒으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피할 수 없다. 무의미한 반복은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 판단하는 능력을 갉아먹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내가 서 있는 곳이 펜로즈의 계단 위가 아닌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