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케이 Jan 28. 2024

오늘도 애써 태연한 척합니다

CEO 리더십_태연함

단언컨대 태연함은 CEO의 중요한 리더십의 하나이다. 학습으로도 잘 되지 않는 어려운 것이다. 요즘은 전통적인 리더십만으로 안 되는 복잡한 세상이다. 하지만 '태연함'은 시대에 상관없이 리더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CEO의 태연함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표정을 일컫는 '포커페이스'와는 다르며 어쩌면 더 어렵다. 다양한 표정으로 인간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태연함이라 할 수 있다. 스타트업 CEO에게 태연함은 곧 참을성을 말하기도 한다. 주로 나쁜 일, 속상한 일, 억울한 일, 이상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태연함이다. 




매 순간 태연함을 요구하는 현상에 마주한다. 인사, 실적, 리더십 등 거의 모든 업무 영역에서 태연함이 필요하다. CEO가 어려운 직업인게 이 태연한 척을 잘해야 하는 게 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매 순간 생각해야 하고, 자주 짜증 나는 일이 발생하고, 가끔은 미칠 듯 한 억울함에 멘탈이 무너질 일들도 일어난다. 그래도 태연함을 유지해야 한다. 딱 한번 무너지는 순간에서도 CEO의 리더십 리스크가 회사 리스크의 문제로 될 수 있고, 직원들에게는 언제까지나 지적을 당할 수도 있다. 그냥 참아내는 거다. 그래서 태연함은 참을성이다. 그래서 속병이 나는 CEO들이 많이 있고, 질병을 얻는 CEO도 여럿 보았다. 나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항상 있다. 


오늘도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언제까지 태연함을 유지해야 하고, 유지할 수는 있을까? 를 생각한다. 유지해야 한다면 누굴 위해서 해야 할까? 힘들게 태연함을 유지하는 게 어떤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나의 태연함을 요구하는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이점이 되지 않으면 굳이 이걸 힘들게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오늘도 '나의 태연함'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러다 화병이 생기겠어' 그럴지도 모른다. 다소 억울한 일이 있어도 버티는 거다. 그래서 태연함은 버티는 것이다. 


회사의 공식적인 대응은 법적 절차가 많다. 공식적인 대응은 대부분 CEO의 의사결정 사안이다. 작은 회사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았을 때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대부분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닌 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대응을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업무 공백, 정신 적인 피로감, 잘못된 상식의 일반화 등 여러 종류의 비용이 든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결론을 하게 되고, 많은 중소기업 CEO가 이런 이유로 그냥 넘어가거나 참는다. 작은 회사의 CEO에게 태연함은 내가 아닌 회사를 위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연함은 외로운 것이다.




"누구누구는 리더십이 없어서 같이 성장할 가능성이 없어요. 그래서 퇴사를 합니다." 퇴사하는 직원에게 듣는 흔한 말이다. 태연함을 유지하기에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 말이다. 직원은 회사에서 성장을 해야 하고, 회사는 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그걸 서로 노력 없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회사를 다시는 동안은 팀원과 리더 모두가 같은 노력을 해야 하고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퇴사를 하는 직원들에게 퇴사의 구체적인 원인(다음 회사에서는 성공적인 회사 생활이 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과 계획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언제나 조언을 하지 못한다. 퇴사를 결심한 직원에게는 '조언'이 아니라 간섭이 된다는 걸 안다.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회사 생활을 잘 한 직원,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들에게 적잖게 피해를 주었던 직원(아쉽게도 본인만 모르는 경우가 많다.)에게도 함께 일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과 이직 후 발전에 대해서 응원을 마음속으로 한다. 단지 우리 회사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태연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 친구가 회사에 대해서 뭐라 뭐라 하던데요?" 간혹 퇴사한 직원이 회사나 상사에 대한 서운함을 이직한 후에도 좋지 않은 얘기를 하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 CEO인 내 귀에까지 들린다면 얼마나 많이 하고 다녔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퇴사한 직원이 회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이 아주 일부인 경우가 많고, 그 일부도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일부를 일반화, 개념화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 그렇게 해서라도 서운한 마음이라도 풀린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게 풀릴까?  회사도 혹은 아직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는 구체적인 사람과 사실을 가지고 명확하게 당사자들과 얘기를 하는 게 서운함도 오해도 풀리는 게 아닐까? 아무튼 회사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듣게 되면 기분이 좋지 않다. 가서 반박을 하고 싶고 나 역시 서운함을 하소연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한없이 약자가 되는 경우가 참 많이 있다. 역시 태연함을 유지해야 한다.




아직도 나는 겉으로 표현하는 말과 표정이 마음속 깊숙이 있는 내 감정과 일치하지 않는다. 겉과 속의 태연함이 다르다는 얘기다. 솔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같아질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태연함이 나에게는 여전히 어렵고 날 힘들게 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태연함을 지켜야 할까? 회사에 도움이 되고, 직원들은 다혈질의 리더와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뱉어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감정에 따른 결정을 하면 안 되는 자리에 있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난 오늘도 애써 태연한 척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