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이라 쓰고, 술상이라 부른다.
퇴근 길이 즐거운 이유는 집에서 먹는 소소한 저녁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일상을 즐기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도 나는 작은 밥상을 채운다. 신랑이 야근을 하고 늦게 올 때도 있지만, 혼자만의 밥상이라도 괜찮다. 그저 오늘 수고한 나에게. 한 주를 보낸 나에게. 꽤 느낌 있는 밥상을 선물해보자. 좋아하는 술도 함께.
우리는 성공한 인생
엄마가 선물해준 귀여운 와인 잔에는 가끔 와인을 대신해 소주를 담기도 한다. 카나페는 진짜 쉽게 만들고, 쉽게 분위기를 내는 음식인 것 같다. 감자를 삶고 으깨, 마요네즈와 소금 간을 한 감자 샐러드를 크래커 위에 올리고 제철 과일로 마무리한다. 크림치즈보다 감자 샐러드는 더 담백한 맛을 준다.
시집을 간 이후로는 차례를 지내지는 않지만, 시어머니께서는 꼭 전을 싸주신다.
아무리 급랭을 했다 해도 전은 다시 데워지면 금방 했을 때의 맛이 없기 마련. 이럴 때는 엄마가 명절 남은 전으로 해주시던 전 찌개에 도전해본다. 전이 타지 않도록 바닥에 무를 깔고, 양념장과 전을 올려 조려낸다. 칼칼한 맛을 위해 땡초(매운고추의 경상도 사투리)를 2개. 아니 3개 정도 넣어준다. 새우를 찾아 먹는 재미는 덤덤덤
마트에서 특가로 사 온 소고기와 마늘, 각종 버섯을 구워 허브솔트(맛있는 소금)와 같이 먹으면, 어느 근사한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저녁 식가 된다. 거기에 갓김치까지 더 한다면.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우리 부부는 2주에 한번 정도 마트를 간다. 사실 생필품은 그때그때 인터넷을 구매를 하는 편이라 굳이 마트를 가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는 습관처럼 마트 나들이를 즐긴다. 마트를 가지 않는다면 생활비가 좀 더 줄어들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보기도 하지만, 나름 데이트인 것을!
항상 마트에 갈 때마다 우리 부부는 다짐한다. "우유, 요구르트, 간단한 간식.. 거리만 사 오자" "응!" 그러곤 맥주를, 안주를, 너무 과한 간식을 담는 우리를 발견한다. 이 날도 우유를 사러 갔다가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면 파시던 아저씨를 발견하고 소라를 우리 카트로 입양했다. 마트에서 세일하던 소라,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과 남편이 좋아하는 앞다리살 구이, 좀 자신 있게 만드는 쌈장과 채소들 그리고 또 와인. 그리고 우리 부부.
개인적으로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중 쌀국수는 정말 정말 좋아한다. 면 한 젓가락에 고수 한 젓가락씩 먹는다. 냄새에 예민한 남편은 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남편과의 쌀국수 음식점은 난감하기만 하다. 결국 내 그릇에만 고수를 가득 담아본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하는 외식에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해 준 남편에게 고맙다.
겨울 철에는 시댁에서 보내주는 사과로 든든하다.
우리 부부는 토요일에 주로 운동을 한다. 고작 1~2시간 정도이지만, 나는 운동 가기 전 간단하게 사과를 준비한다. 여기에 금방 내린 커피를 함께. 커피는 잘 모르지만, 내릴 줄도 모르지만 일명 막 드립 커피는 왠지 남편이 내려주면 더 맛있는 것 같다는 핑계를 대본다.
잘 익은 김치와 고기만 있다면 이보다 쉬운 요리가 있을 수 있을까. 두루치기와 김치찌개의 묘한 경계. 토요일과 일요일의 경계를 넘나드는 어느 주말 저녁 술.상
가자미를 굽고, 계란찜을 급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 인지 모를 고기 산적을 듬성듬성 썰어서 계란찜에 간을 한다. 메마른 계란찜이지만 계란 반, 고기 반이라 맛있다. 간단한 반찬인 줄 알았지만, 은근 맛있게 하기 힘든 어묵 볶음과 남편이 좋아하는 김.
우리의 일요일은 이렇게 소박하게 시작된다.
한 냄비 가득 채운 어묵탕. 파를 삶아 리본으로 묶어서 마무리를 했다. 소주 병과 비교해본다면, 저 냄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남으면 내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별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은 어묵탕. 시원한 국물 맛이 또 생각난다.
남편이 없으니, 설거지 거리를 최소화하자!
김치와 멸치볶음도 한 접시에 담고, 잡채는 급 잡채 덮밥으로 변신.
양배추 샐러드, 총각김치, 돈가스, 동그랑땡, 멸치 볶음, 그리고 계란 프라이
나는 반숙, 남편은 완숙.
반찬 없을 땐 계란 프라이로 좀 더 알차고, 마치 영양 균형을 생각한 듯한 밥상으로 준비해본다.
우리 부부가 주로 가는 창고형 와인가게 주인이. 팩 와인을 추천했다. "굳이 병에 먹어야 한다는 편견만 버린다면 가성비 좋은 와인을 드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에 우리는 팩 와인을 덥석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와인과 함께 먹을 돼지고기와 함께. 반은 양파와 굽고, 반은 김치와 구웠다.
팩 와인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의 병 보다 두 잔 정도의 양이 더 들어있다. 팩 와인은 특성상 오랜 보관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린 산 그날 바로 먹었다.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본다.
고향에서 친구들이 놀러 왔다. 멀리 서들 와준 친구들에게 늦은 밤 작은 술상을 마련했다.
크래커와 함께 직접 만든 사과잼. 그리고 과일과 치즈, 인스타에서 보고 배운 쿱 샐러드. 연희동에서 산 빵들.
와인 잔이 비워질수록, 날 보러 와 준 친구들에 대한 마음이 깊어진다.
새벽까지 술 먹다 잠든 이들을 고려하지 않은 밥상. 바로 보쌈
양파, 사과, 된장, 파를 넣고 푹- 끓인 보쌈과 된장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술 먹고 텁텁한 그녀들의 식도에 기름칠을 해줄 보쌈.
양배추를 삶고, 산적을 구워낸다. 참기름 향이 가득한 쌈장과 함께 한 쌈 가득. 행복을 먹는다.
식구라는 말이 있다. 남편과 나는 밥상을 공유하는 사이이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일부를 차지하는 식사 시간. 이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예쁘거나 비싼 음식이 아니라 진짜 우리가 일상에서 이렇게 먹고 있다. 우리는 매일 음식에 따라 그릇 바꾸고 그러지 않잖아요. 어제 먹었던 반찬 오늘 또 먹기도 하고요. 평범하지만 결코 그 내용은 평범하지 않은 여러분의 밥상. 그리고 함께 먹는 식구를 바라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