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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 Mar 29. 2024

상처 주지 않는
다정함을 선택하는 청년들

'상처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청년'이 올리는 글

정치인을 보는 안목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판단이 어려운 것이 당연지사다.

그만큼 자신을 챙기는 것조차 버거운 우리들에게 투표라는 행위와 권리는 무겁게 느껴질 듯하다.


반면, 고령자 어르신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고 그들이 거듭된 잘못을 저질러도 힘을 실어주려고 하는 경향이 크다. 심지어 그들은 투표율이 높은 편이고, 차지하는 인구 비중도 꽤 된다.


때문에 정치인들은 우리보다 그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 정도는 나도 잘 알아"라고 대답할 듯하다. "이 나라에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고, 그 누구도 신뢰하기 힘들다."라고 말하고 싶을 거다. 


"그래. 나는 봐왔어. 우리 청년들이 그간 겪어왔던 아픔들을. 그렇게 상처가 쌓이고 벌어져서 '아무런 선택도 안 하며' 상처를 주지 않고자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지."



상처를 안겨주기 싫어서, 상처 주지 않는 다정함을 선택하는 청년들


나도 잘 안다.

상처를 안고 가는 청년들이, 더 이상 다음 세대에 그 상처를 안겨주기 싫어서

상처 입지 않는 강함보다도 상처 주지 않는 다정함을 선택하고

상처 입은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을.


아픔을 잊다 보면, 상처를 잊게 되기 때문에 

계속 상처를 잊는 길을 걷고만 싶어 한다는 것도.



하지만 그로 인해 흘려듣던 울음소리는 틀림없이 우리의 아픔에서 나온 것이고

'그러한 자신을 두 번 다시 놓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그동안 부모의 다정함 아래서 우리가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아픔이 우리를 지켜줬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식으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세상에 짓눌러지기 않기 위해

아픔을 상기시키고 기억해 내면서 계속 상처에 맞서 싸우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상처 주지 않는 다정함' 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처에 맞설 수 있는 강함'입니다.


부족한 내용이었겠지만, 이글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길 바라며 이제 펜을 놓고자 합니다.

"부디 우리 청년들이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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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노래의 가사를 참고해서 글을 작성함.

Flow - Sign               

https://youtu.be/ZsKie-w_FCA?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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