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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 Apr 21. 2024

악플러에게 대응하는 자세와 방식

그들의 행동 배경과 사고에 입각해서

키워드

1. 사람을 부품으로 대하는 사회
2. 시키는 대로 움직이길 바라는 사람
3. 생각한 대로 상대가 행동하기 바라는 사람
4. 자기중심적, 지나친 자기애, 나르시시스트
5. 틀릴 여지를 두지 않는 사고방식


자신이 사고방식이 더 나은 쪽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의 수용'이 필요하다. "더 나은 방식으로 생각이 바뀌는 것." 나는 이러한 과정을 '성장'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세상을 보면 변화를 수용하기 싫어하는 자기중심적 발언을 하기 바쁜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나는 이러한 배경에 '시키는 대로 움직이길 바라는 사회'와 '네가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라는 식의 사람을 부품으로 대하는 인식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면 방어기제로서 사람은 지나친 '자기애'를 가지기 쉽다.


'자기애'는 그 자체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자기애'가 자기중심적으로 제대로 된 고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하게 형성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애정을 느끼며 자존감을 형성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자기애'가 아닌, "너는 틀렸어, 내가 시키는 대로 생각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면 그만이야."라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만들어진 것.


스스로를 애정결핍에서 보호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않은 방어벽은 허물어지기 쉽다. 그것이 일종의 자기 합리화로 작용한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급하게 쌓은 자기애를 기반으로 한) 악플'을 악플로 대하는 구도를 갖게 되면 서로 벽을 보고 이야기하기 참 쉬워진다. 대화에 있어서 틀릴 여지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를 인정함으로써 상대에게 발언권을 내준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작용할 뿐이다. 


'자신의 논리가 틀렸다'라고 한들, 그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평소 SNS에 악플러들이 붙을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깊이 있게 글을 작성하지만, 틀릴 여지가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있고 '내 생각이 틀려도 된다. 그 과정 자체가 배우는 것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악플을 받아본 적은 별로 없다. 지금까지 1~2번에 이른다. 그들을 대할 때는 처음에 진정성 있게 이야기를 시작하되, 상대를 쉽게 설득하려는 대화의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다. 악플러 스스로가 위화감이나 자신을 돌이킬 수 있는 계기를 주려고 '진정으로 네 생각이 맞다고 설득을 하고 싶다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라'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진정성을 보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려는 양상'을 보인다. 


애당초 나는 그들이 '설득이 될 사람들이라는 기대를 하며' 진정성 있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벽 보고 대화하며 '무시로 일관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에 가깝게 예측하고 있다. 그것이 사회에 부품으로 인식되고 무시당하며 방어기제로서 '자기중심적'으로 변한 이들의 어두운 이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피해의식 속에서 사회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그 구성원 중 일부를 무너뜨림으로써 심리적 안도감을 느끼려고 든다. 그것이 '피해의식 속에서 방어기제로서 지나친 자기애를 보이는' 나르시시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 안정감은 극히 일시적으로 다가올 뿐이기에, 늘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서기 쉬운 조건으로 작용한다.


(자기중심적 모습의 다른 이면에) 피해의식이 있고, 그로 인해 상대를 질투하며 무너뜨리려는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틀릴 여지가 있고,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게' 유도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스토리를 써보라'라고 하면 된다.


진정으로 나를 설득하고 너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으면 "작품을 헐뜯는 방식으로 불가능하고, 자신만의 작품을 그려내 봐라"라고 메시지를 던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작품을 훼손하는 쉬운 방식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이들이, 위화감을 느끼게끔 하여 흔들리게 만드는 것이 내가 그리는 큰 그림이다.


https://youtu.be/0e6vUbMi2kA?feature=shared

악플러들의 방식은 영상 속의 기후 활동가들이 '작품을 훼손하는 쉬운 방식'으로 사회 문제에 임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은 타인과는 서로 다른다는 것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가 '개성'이고 설령 안 좋은 쪽이라 한들, 그러한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문제 인식'을 갖고 경계심을 얻을 수 있다.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그 모습이 매우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그 시각을 달리하려면 자신이 앉아있는 각도부터 바꿔야 한다. 세상이 바뀌길 기대하는 것보다 그를 지켜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 월~씬 빠르다'라고 느낀다.



SNS를 하다 보면 차단 버튼을 굉장히 편한 기능이자 유익한 것을 인식을 하고 쉽게 사용하도록 권유하는 댓글을 종종 본다. 나는 이 '차단'기능을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쓰고 있다. 지금까지 차단의 대상은: '사기꾼, 로맨스스캠' 외에는 없다. 이러한 나를 보고 "악플러들과 대화를 안 하면 편하고 좋은 것 위주로 볼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주어진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악플은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그럼에도 악플이 사회에서 없어지기 바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한 명을 차단해도 다른 이가 나타나서 또 악의적인 댓글을 남길 여지가 분명히 있다. 한 명을 배제해서 문제가 해결이 될 정도로 사회가 좁지는 않다. 어차피 사리지기 힘든 악습이라면, 우리는 이 악플을 다른 쪽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1. 악플을 아무렇지 않게 '쿨하게 대응하는' 당사자들을 지켜보면서 다른 이들은 '카리스마'를 느낀다.

2. 악플러를 계속 만날 여지가 있다면, 그러한 환경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은 인위적으로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우연을 통해서 그 배경에 직면할 수 있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경험을 하며 얻는 지혜'에서 비롯될 뿐이다.


비롯 악습이긴 하지만, 악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를 최대한 활용하여 '그 외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계기로 역이용할 필요가 있고 그러한 기회는 언제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요즘 SNS에 진지한 글만 쓰고, 유익한 내용의 전달을 목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추천피드에 평화가 찾아왔다. 가끔은 '악플을 조금은 받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적당한 악플은 나 자신의 성장에 있어서 그리고 문제해결 방식을 찾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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