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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리짱 Aug 09. 2024

면접에서 4번 연속 차인 이유는

지겨운 예비1번은 이제 그만 


동네 투썸플레이스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바라보는 하늘의 구름이 뭉게뭉게 예쁘다. 저녁이 돼 바람도 살짝 불어 걸어 다닐 만한 초록초록한 여름날.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이렇게도 평화롭다. 한숨 나오고, 욕도 나오고, 요동치는 건 내 마음 하나뿐인가.


4개월짜리 서울시 매력일자리(구 뉴딜일자리) 면접을 봤는데, 이번에도 예비 1번이다. 4개월짜리에 예비 1번이라 ㅋㅋㅋ 이럴 거면서 30분이나 면접을 보면서 내 답변에 “좋은 거 같습니다”라고 맞장구 쳐주고, 이것저것 관심 있게 이력사항은 왜 물었나요?ㅜㅜ 


이쯤 되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살면서 면접 4번을 내리 떨어져 본 적이 있었나? 없었다. 처음이다. 모든 일엔 총량의 법칙이 적용된다던데, 살면서 써야 할 면접 운을 이미 다 써 버린 건 아닐까? 어떻게 해야, 정말 어떻게 해야 취직이 될까 ㅠㅠ 


남들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를 가는 생활이 그립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회사 ‘개목걸이’를 매고 한 손엔 프랜차이즈 커피를 들고 점심시간에 거리를 활보하는 직장인들을 보곤 울컥했다. 정말 울 뻔했다. 아무 의미 없고 지겹다고만 생각했던 직장인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소중하게 다가오는 날이 오는구나, 싶어서. 


이런 부정적이고, 자신을 슬프게 여기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오늘은 좀 청승맞고 싶다. 계속 내가 별로라는 남자들만 골라서 소개팅하고 다니는 기분인데 이거. 사실 나도 너네 다 내 취향 아니고 별로였거든? 으아아앙, 그러니까 내가 차야 되는데 왜 차이고 다니는 건데. 분하고 억울하네.  


이번 면접의 패인은 요컨대 외향적인 사람을 뽑는 자리인 모양이다. 40대 이상만 지원할 수 있는 중장년 일자리여서 40대인 내가 유리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안일했던 나. 중장년 일자리는 여기대로 치열해서 중장년 특유의 붙임성 좋고, 서글서글한 바이브가 먹히는 모양이고, 2, 30대 위주의 일자리엔 나이가 많아서 어렵고. 아니 그러면 대체 40대인 전 어디로 가야 하죠? ㅠㅠ 


난 세상 차분하고 내향적인 사람인 거에 자부심 있는 사람인데, 내 성격이 뭐 어때서? 큰 목소리로 사람을 두루두루 챙겨야 하는 자리라면 나도 사양이다. 조용하고 얌전하게, 조곤조곤 말해도 일만 잘할 수 있다. 


물론 나름대로 좋은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생활의 반은 배우 덕질 중인데, 이벤트에 당첨돼서 내일 최애가 나오는 시사회+GV를 보러 간다. 운이 좋았고, 꿈만 같고, 또 덕메들도 같이 당첨돼 같이 보러 가서 좋고, 몇 달 만에 최애 볼 생각에 신나고 ㅋㅋㅋ 요즘 들어 내가 진짜 되는 일이 별로 없는데, 엊그제 당첨 문자 받고 얼마나 기쁘던지 면접 보러 가는 길이 꽃길만 같았다. 그랬는데 결과는 ㅋㅋㅋㅋㅋ 


면접이 끝나고 용산에서 영화 <리볼버>를 보고, 결국 집도 돈도 생긴 총잡이 전도연을 부러워하면서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 바람이 살살 불어 덥지 않았고, 오랜만에 한강변을 따릉이를 타고 라이딩하는 기분이 정말 끝내줬다. 밤 라이딩이라 위험할까 봐 음악도 듣지 않았는데 2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갔다. 


아름다운 한강 다리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의 불빛들. 천만 도시 서울엔 사람도, 차도, 집도 이렇게나 많은 데 내 사람도, 내 차도, 내 집도 없구나. 가진 건 아직까진 건강한 몸뚱이와 덕질력과 따릉이 1년 정기권 정도? 그래도 울진 않을 거다. 이번엔 면접 광탈은 아니고, 예비 1번이니까 앞으로 면접 결과는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버티는 일이 남았다. 그러려면 몸도, 마음도 체력을 길러야 한다. 마흔은 건강해야 한다. 제발 곧 오늘을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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