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팀장에게 진급 탈락 통보를 받았다. 팀장은 진급 발표가 나기 전에 그만 퇴근해도 좋다고 한다. 그전에 ‘이번 탈락 결과는 너의 퍼포먼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라는 주제로 긴 얘기를 했다. 부제는 ‘힘내’였는데, 구색을 갖추려고 억지로 끼워 넣은 소품인 듯 별 효과는 없었다. 팀장은 부장까지 한 번도 누락되지 않고 진급한 ‘회사의 인재’였다. 진급 누락을 간접 경험으로만 느껴봤을 터인지라 체험에서 우러나온 위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책상으로 돌아와서 ‘이제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한다. 우선 진급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진급 안되었네, 좋은 소식을 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내도 나의 진급에 대해 걱정은 하면서도 ‘설마 이번에는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아내로부터 ‘힘내요. 회사가 어려운 것을 어찌하겠어..’라는 답장이 온다.
진급에 떨어진 다른 동기 한 명은 벌써 집에 갔다며 사무실에서 뭐하냐고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풀이 죽은 얼굴로 집에 불현듯 가기가 애매하다. 장모님께서 7살 딸의 육아를 돕기 위해 함께 지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집 근처에 있는 고양 스타필드로 향한다. 날씨는 봄의 빛깔이 완연한데 마음은 더 차갑고 깊은 겨울 속으로 돌아갔다.
허기를 채우려 좋아하던 쉑쉑버거를 먹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스타필드에서 걷고 또 걷는다.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될 것 같았는데, 참담함이 마음을 넘어서 몸까지 소진시켰는지 걸을 힘이 나지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하지? 회사 사람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으니 휴직을 할까? 아니면 부서 이동을 하겠다고 할까? 부서 이동을 하면 어디로 가지?’ 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팀장과 뜻이 안 맞거나 본인이 원하는 데로 되지 않을 때 과감하게 부서이동을 하거나 사직까지 불사한 동기들도 있다. 하지만 난 좋게 말해서 버티는 힘이 있고 좀 더 객관적으로 본다면 소심하고 결단력과, 행동력이 부족하다.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를 키워내는 학교 교육에 최적화된 탓인지 성실함이 내 몸과 머리에 각인되었다.
‘버티기’에 대해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져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상황은 더 좋아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버틴다면, 너는 더 나아질 거야.’라고. 내가 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패에 대해 철저하게 내부귀인을 해서 개선하라는 가혹한 말로 들리기도 한다. 혹시 이 또한 자본가들이 노동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꾸며낸 그럴싸한 이야기뿐인가?
심리학과 전공 교수님이 어느 날 수업시간에서 ‘사람은 잘 변하지 않아’라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내향적인 나는 외향적인 내가 되기는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편안한 성격이 명확해지고 굳이 노력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변화 없이 버틴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정말 그냥 부서를 이동하거나 휴직을 하는 게 어쩌면 ‘현재의 나’를 위해서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맞지 않는 작은 옷을 입으려고 억지로 욱여넣으면 들어가긴 하겠지만, 그 불편함을 감내하고 사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