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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규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대낮에 눈뜨고 하는 즐거운 공상들

내 주위에는 프리랜서로 사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자신의 전공과 재능을 살려가며 일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내 월급과 비교했을 때 비현실에 가까운 소득을 벌어들인다. (가끔이지만 월에 1000만 원 가까이 벌고 억대 연봉을 찍기도 한다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가!)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듯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냐'는 나의 질문에 그들은 '365일 중 적어도 360일은 눈뜨고 깨어있는 순간은 물론 잠을 자면서도 일해야 한다'고 답했다. 뒤이어 나지막이 중얼댄 '나머지 5일은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아야 하고...'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지만, 여전히 열심히 하는 만큼 나의 가치가 올라가고 그만큼의 대가가 주어지는 삶이 멋지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중 한 명은 내게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하며 '삶의 자극제'가 되어주는 친구이다. 5년 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녀의 제안 덕분이었고 그 이후로 팟캐스트와 유튜브, 인스타와 블로그까지 모든 것에 시작에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도 항상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며 자신에게 지속적인 도전거리를 던져주는데, 그래서 나는 그녀로부터 자주 영감을 얻고 동기를 부여받는다.


그녀를 비롯한 프리랜서들의 삶을 엿보면서 얼마 전부터 나도 내가 가진 것들을 이용해 나만의 콘텐츠를 개발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안타깝게도 '나는 가진 것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려던 찰나, 내 고민을 들은 그녀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했다. '덕규 니 자체가 컨셉이잖아'라고.


그녀에 말에 따르면 나는 지금도 충분히 매력적인 콘텐츠를 갖고 있었다. 심리학을 전공한 상담자, 공무원이지만 곧 휴직 예정,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엄마에, 외국에서 근무 중인 남편과 고양이 2마리를 가진, 출판을 준비 중인 예비작가, 글쓰기와 노래 & 각종 운동을 즐기는 프로 취미수집러, 한때 여행에 미쳐있던 사람이자 곧 다시 떠날 배낭여행자. 그녀가 읊어준 나라는 사람은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여러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하는 것들을 꾸준히 기록하는 과정이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나라는 사람에 대한 홍보와 팬 확보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다양한 콘텐츠들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브런치 등의 다양한 플랫폼들을 동시에 활용하다보면 가장 적합한 것을 찾게 될거라고 했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막연히 상상했던 것들을 조금씩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됐다.      


그날 이후로 나의 머릿속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새롭게 보고 접하는 모든 것에 나를 대입해보곤 한다. 아직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과연 나라는 상품이 이 세상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월급을 받기 위해 직장에 매여 근근히 연명하는 삶을 살고싶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다.




얼마 전 꿈같은 사람을 만났다. 그녀의 직업은 전업작가. 그녀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을 실제로 일궈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글을 사랑해 주는 수많은 팬들이 있었고, 주로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일상을 글로 엮어내며 하루를 보내었다. 주 2회 독자들에게 보낼 글을 쓰고 나머지 시간엔 내 책을 쓰는 삶. 일상을 원하는 대로 구성하며 사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부럽고 좋아 보였다.           


그녀를 보며 느낀 감정은 지금껏 누군가를 보며 느껴온 감정들과 달랐다. 그것은 마치 아이유나 김연아를 봤을 때처럼 상대가 대단하다 못해 굉장해서 느껴지는 거리감이나 경외심, 실체는 없으면서 대단한 걸 가진양 으스대는 사람을 봤을 때 느껴지는 못난 감정(마치 ‘나도 저 정도는 하겠다’는 못난 시기와 오기, '나도 해야 하는데'와 같은 안달 남과 조급함 따위의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내가 찾던 길을 앞서 걸어가고 있는 동행을 만난 듯한 반가움과 내가 꿈꿔왔던 미래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찾은 설렘에 가깝다. 앞서 자신이 먼저 걸어오며 만났던 풍경과 사람에 관해 들려주고, 앞으로 그 길을 함께 걸어 나가며 도란댈 수 있는 동행이라니. 그런 존재를 찾은 기쁨은 앞서 미지의 공간을 여행하면서 다른 여행자를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과 흡사하다.


내 머릿속 상상을 나의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 그러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내가 꿈꾸는 삶이 저 우주너머 머나먼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상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실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이다.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한 여정의 출발선 앞에 선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설레고 가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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