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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의문의 상자가 배달되었다

혼자 맞는 4번째 결혼기념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저녁,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하니 문 앞에 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아무 것도 시킨 게 없는데 왠 택배지?' 나는 꽤나 큰 크기에 의심스러운 상자를 앞에 두고서 이걸 들고 들어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그때 마침 띠링 하고 메세지 한통이 날아왔다. 휴식시간에 남편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오빠 혹시 택배 보냈어?' '응! 도착했어? 어서 가서 열어봐!' 남편이 보낸 것임을 확인한 나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상자를 집어들었다. '내일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함께 하지 못하는 대신 보내는 선물이야.'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아들고 어안이 벙벙해졌던 나는 상자를 열자마자 활짝 웃었다.




지금으로부터 1달 전 후쿠오카 공항에서 4개월 만에 휴가나온 남편을 만났다.(갑자기 뭔 상황인가 싶다면 그 전 글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라) 게이트가 열리고 멀리서 남편이 보이면 다다다 뛰어가서 탁 하고 안겨야지 상상했건만, 현실에서의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재회했다. 머나먼 타국 어느 사막 위에서 지내던 남편은 4개월 간 사람의 온기를 느껴본 적이 없는 듯 했다. 멍하게 텅비어버린 눈빛과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 내 몸이 닿을 때마다 흠짓하던 몸짓이 지난 시간을 말해주었다.


낯가림의 어색함도 잠시, 남편이 머물렀던 2주 간 둘은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다. 마치 그간 벌지 못한 돈으로 그동안 해주지 못한 모든 것들을 다 해주려는 듯 사랑과 정성을 퍼붓는 남편 덕에, 하고싶었던 것과 가고싶었던 곳, 먹고 싶었던 것을 원없이 이루며 꿈같은 시간을 보내었다. 


항상 마음 속으로 그리워하던 존재가 눈 앞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가슴을 가득 채웠던 그립고 애틋한 마음은 서로의 눈과 손이 맞닿은 모든 순간에 오고 갔다. 바라보고 있는데도 보고싶었다. 짧은 만남 뒤, 우린 다시 공항에서 헤어졌다.


서로를 마주 바라보는게 얼마만인지

그곳으로 돌아간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간 내가 걱정할까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힘든 상황 속에서 버텨내고 있었다고, 그곳에서 일을 그만두고 돌아와 한국에서 다시 시험준비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혼자 그곳에서 고생하고 있는 남편의 뜻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간 혼자서 지고 있던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일을 하러 간 덕분이었다. 몸을 추스리기 위한 휴식의 시간도, 그로 인해 줄어드는 월급도. 모든 것을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이 나를 대신하여 돈을 벌어주었기 때문이다. 남편 휴가에 맞춰 떠날 여행과 멀잖아 들어갈 우리의 새집까지. 나는 6개월 뒤 남편이 돌아오면 함께 누릴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현실의 무게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돌아온다는 것은 또 다시 어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가 시작된다는 것과 더불어 내가 다시 생의 무게를 짊어지기 위해 직장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모든 것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작아지고 무너져내린 남편의 모습만은 다시 마주 할 자신이 없었다. 며칠 간 혼자 속앓이를 하던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울며 이야기 했다. 좋은 아내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사실은 너무 두렵다고.


남편은 아내를 울리는 못난 남편이라 미안하다며 고생은 자기가 할테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다. 무슨 일을 해서든 먹여살릴 수 있으니 걱정말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기를 믿어달라고 했다. 나는 지난 몇 년 간 봐왔던 그 어떤 모습보다 믿음직한 남편의 모습을 본 순간, 그간 나를 사로잡고 있던 불안이 씻은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서야 진심으로 남편의 선택을 지지하게 됐다.


그러나 곧 돌아오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남편은 무언가 결심한 듯 그곳에서의 어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간 남편을 괴롭혔던 문제들을 들고 상사를 찾아갔고, 본인의 의사와 부당한 처사를 밝히며 개선을 요구했다. 귀한 인력이 필요했던 회사는 남편의 요구에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해주겠노라 약속했다. 그날 저녁 남편은 직장생활 5년 만에 처음으로 시도해본 갈등해결이었다며 이제서야 맘이 잡히고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온 남편을 보며 나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에 대한 존경심과 든든함을 느꼈다. 살아오는 내내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해야하고 스스로 버텨야만 했던 이 세상 속에서, 처음으로 믿고 의지 할 사람이 생겼다는 믿음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라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지금껏 내가 남편에게 바랐던 건 '남편의 당당한 모습'과 함께 살아갈 '생에 대한 의지'가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곳에 남겠다는 남편에게 침몰하는 배에서 건져야 할 물건은 없다고 목숨만 살아서 돌아오라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되든 상관없으니, 아침에 눈 떴을 때 끔찍하지 않고 저녁에 돌아올 때 보람을 느낄 수있는 일을 함께 찾아보자 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온가족이 한 집에 오손도손 함께 살며, 밝고 건강한 에너지로 집 안을 채우는 것' 뿐이니 말이다.


지나보낸 시간들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이 시간들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들을 함께 보내면서 우리의 관계는 계속해서 견고하게 한꺼풀씩 덧입혀지고 있다. 서로 멀리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연결 되어있는 기분이다. 




오늘은 4번째 결혼기념일, 여전히 이 아름다운 봄날을 함께 보내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각자가 머무는 곳에서 여전히 행복하다. 남편이 기념일을 맞아 보내준 선물은 자기를 꼭 닮은 시바인형과 노란 튤립이었다. 남편이 보낸 튤립 7송이와 시바는 그의 빈자리를 채우며 아침 저녁으로 나를 웃게 한다. 


남편은 튤립의 꽃말이 '희망'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멀기만 했던 그 단어가 저 꽃과 함께 우리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감내하는 이 시간들을 '희생'이 아닌 '성숙'에 시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보. 세상에 태어나줘서, 나를 사랑해줘서, 나와 결혼해줘서 고마워.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 다시 웃으며 만나자. 사랑해요♥


얘 덕분에 더이상 혼자처럼 느껴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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