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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했더니… 아주 잠깐도 쉬지 않았네? ‘쉬어’라는 말이 거기까지 가다 죽었나 봐?” 그는 나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그래 못 쉬었다. 아니 안 쉬었다 왜! 할게 많아서 매일 꼭두새벽부터 설치느라 병까지 났어! 어쩌라고” 그의 눈치를 살피던 나는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싶어 배 째라고 밀어붙였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기를 신신당부 부탁하던 친구는 3달 만에 예상했던 대로(?) 만신창이가 된 나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대체 뭐가 그렇게 어렵기에 그 부탁을 못 들어줘서 이 사달이 났냐며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의 핀잔에 입을 비죽거리며 궁시렁거리던 내 눈에는 금세 눈물이 맺혔다. 나는 ‘왜 자꾸 다들 나보고 쉬라고만 하는 거냐고, 나도 온몸이 아파 죽겠는데, 제일 쉬고 싶은 건 난데, 도무지 쉬지를 못하겠는 걸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는 걸, 아무것도 안 해본 적이 없는 걸, 그래서 어떻게 해야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 걸, 왜 자꾸 온 천지 사방에서 쉬라고 성화인 건지 정말 미쳐버릴 거 같았다. 사실 나는 전혀, 단 한 시도 쉬고 싶지 않았다.


답답한 내가 책상을 탕탕치며 ‘대체 어떻게 해야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가슴을 탕탕치며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인데 그걸 ‘어떻게 하라’고 설명할 수 있겠냐고 했다. 숨 막히는 창과 방패의 싸움은 반복되었고 결국 창은 방패를 뚫지 못했다.


왜 그렇게 아등바등 뭔가를 하려고 애쓰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답했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면 올해가 금방 가버릴 거고, 그럼 나는 꼼짝없이 그 끔찍한 곳으로 되돌아가야 해. 매일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사건사고들 처리하고, 죽겠다는 애들 붙들고 씨름하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매일 웃고 싶고, 좋은 사람들과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지금부터 뭐라도 해야 당장 뭐라도 될 거 아냐”


눈물을 그렁대며 한탄하는 나에게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2% 남은 배터리로 자꾸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배터리가 50% 차오를 때까지만이라도 충전을 하라는 말이야.  불구덩이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곳에 자꾸 뛰어들지 말고 소방차가 와서 저 불들을 꺼줄 때까지 잠시만 물러서서 기다리라는 말이라고. 조금 쉬면서 너의 몸을 보살핀 뒤에 하라는 말이지 영원히 때려치우라는 말이 아니잖아.”


그는 내 마음을 이해했고, 나는 그의 뜻을 이해했다. 그렇게 한참의 싸움 끝에 오늘만이라도 쉬기로 합의한 우리는 사이좋게 집 밖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법에 걸린 듯 혼자 얼쑤절쑤 비틀대다 발목을 세게 접질렸다. 발목이 부드득하고 뒤틀리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자마자 직감했다. 뭔가 사달이 났다는 걸.


절뚝이며 병원에 갔더니 큼지막한 깁스를 채워줬다. 의사는 ‘초기에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계속 덧나서 평생 고생하게 될 거라’며 겁을 주었다. 친구는 ‘쉬어라 쉬어라 백날 말해도 쉬지 않으니 신이 이렇게 보내버리는 거라’며 사뭇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집안에 나를 가두고 떠났다.


친구의 바람대로 어쩔 수 없이 쉬게 됐다. 마음이 마냥 편하진 않았지만 ‘아프니까’라는 면죄부와 ‘지금 안 쉬면 나중에 더 쉬어야 하니까’라는 합리화가 먹혀들었다.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주섬주섬 주워 먹고, 소파에 드러누워 주구장창 TV만 봤다. 외출이라곤 병원을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한 주가 훌쩍 지났다.


쉬고 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그간 하지 못한 일들 때문에 마음이 바빠지는 것만 빼고는. 새로 시작하기 좋은 오월의 첫날, 다시 새봄을 맞이한 듯 설렌다. 그치만 이전처럼 무리하지 않기로 나와 약속했다. 최우선순위는 내 몸과 마음의 회복, 꼭 해야 할 것은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뿐이니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만 내가 쉬니까 신이 내 다리를 작살 낸 걸까? 아무것도 없어지니 종일 누워서 '왜 이렇게 된 건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되물었다. 4년 전 네팔에서도, 사고 후 환자 일 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다음에야 나는 겨우 쉬었다. 지금 내게 반드시 쉬어야 해서 이렇게라도 쉬게 된 건가 싶었다.


아직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세상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가서 물어보고 싶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고 조급하고 생각이 많은 건지, 어떻게 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로 편안히 있을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마음편히 정말 평온하게 쉴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나는 그럴 수 없는 인간이고, 그래서 나는 다시 '쉬기'보단 '하기'를 선택했다. 인간은 참으로 쉬이 변하지 않고, 나의 고집은 정말 디지게 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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