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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아기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몸을 살리기 위한 노력 중

아끼는 동생이 엄마가 되었다. 매번 볼 때마다 조금씩 배가 불러오더니 어느새 그 뱃속의 존재가 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사진을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것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그 몸에서 사람이 나왔다고? 그녀를 실제로 보기 전까지 나에게 아기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유니콘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 태어난 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은 그 생명체를 실물로 접했다. 그리고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조차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걸 어떤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마치 처음으로 '인간'을 만난 기분? 아니 아주 고귀한 '존재'를 처음으로 접한 기분? 뭐라 쉬이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압도적인 신비로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엄마 품에 안겨있던 아기를 받아 들고서 조심히 손과 발을 구경했다. 저 작고 가느다란 가락들이 움직이는 것도, 나름의(?) 기능을 한다는 것도 참으로 신기했다. '세상에... 저것도 손가락이라고 꼼지락대는 것 좀 봐...' 나는 코딱지 만한 손톱이 콕하고 붙어있는 그 조막만 한 손이 신기해서 한참 동안이나 만지작거렸다.

 

아기는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듯 또 다른 장기를 보여주었다. 가지런히 눕혀둔 자리에서 한참을 버둥거리더니 잠시 뒤 몸을 헤까닥 하고 뒤집었다. 마치 슈퍼맨이 된 듯한 자세를 취한 아기는 본인 무게의 3/1을 차지하는 머리를 꼿꼿이 든 채로 팔다리까지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자세로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팔딱거렸다.


나는 그 작은 존재가 가진 어마어마한 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운동해 본 사람이면 아마 알 것이다. 저 슈퍼맨 자세가 얼마나 힘든 자세인지. 아기가 의기양양하게 방실방실 웃으며 하고 있는 저 자세는, 운동을 깨나 해온 어른조차도 복근힘 없이는 2분도 채 버티기 힘든 고난도의 자세였다.

믿기지 않는다면 당장 바닥에 엎드려보라. 우린 웃을 수 없다.


그건 분명 어른에게도 몹시 힘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어른이라서 힘든 걸지도 모르겠다.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구부정하게 쭈그려 앉아서 종일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거나, 목을 길게 뺀 채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른의 몸이 갓 만들어진 최상의 아기몸처럼 제대로 기능할리가 없다.


종일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골반은 접힌 채로 단단히 굳고 몸통은 힘을 잃게 된다. 코어 근육이 사라진 몸통은 중심을 잡지 못하게 되고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흐트러진다. 중심을 잃은 기반 위에서 구조물이 탄탄하게 세워질 리 없다. 머리도 목도, 그 아래에 달린 어깨와 견갑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하루하루를 겨우 버틴다.


재활을 도와주는 치료사분이 그랬다. 모든 인간은 원래 잘 기능할 수 있는 좋은 구조물을 갖고 태어나는데, 구조물이 제자리와 본연의 힘을 잃으면서 아프고 덜컹거리게 된다고. 제기능을 잃은 곳 보상하기 위해 쓰지 말아야 할 부분  쓰다보면 힘을 줘야 할 곳은 풀어지고 느슨해야 할 곳은 긴장하게 된다고 했다.


새벽에 만나는 요가 선생님은 그러셨다. 허리와 목어깨가 아픈 것은 중력으로 인해 하루종일 아래로 쳐진 부분이 손상되기 때문이라고. 태어날 때 만들어졌던 몸으로 안티에이징하며 돌아가기 위해서는, 중력을 거슬러서 떨어진 부분을 모두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눌린 것을 뽑아 세우고, 뭉친 것을 펼치고, 굳은 것이 풀어야만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첫 수업에서 배웠던 것을 정리해둔 공책이다


새벽에 찾는 요가원에서도 저녁에 가는 재활센터에서도, 두 선생님은 같은 원리로 내 몸을 바로잡는다. '뒤로 꺾여진 골반을 돌이켜 꼬리뼈를 말아 넣으라, 굳어있는 고관절의 근육을 풀고 느슨해진 둔근을 단단히 잡으라. 주춧돌이 되는 발목과 발바닥 아치를 탄탄히 하고, 다리와 골반 위에 코어를 단단히 잡아 중심을 잡으라.'


여기서 핵심은 무너진 몸을 남이 일으켜주는 게 아니라 본인이 일으켜 세워야한다는 것이다. 원리와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선생님들의 몫이지만, 그것들을 몸으로 익히고 계속해서 단련해 나가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아기가 쉽게 뒤집지 못한다고 해서 계속 대신 뒤집어줄 수 없는 것처럼, 내 몸도 나 스스로가 바로잡아 나가야 한단 걸 안다.

 



나는 오래도록 제기능을 잃고 휘청거려온 몸을 다시 세워나가고 있다.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바들바들거리는 근육과 작은 움직임에도 삐그덕거리는 골관절들을 다시 강하게 만들고 있다. 매일 약해진 코어와 복근을 다지고, 굳어버린 골반을 풀며, 헐거워진 견갑을 단단히 걷어 올리는 중이다.


몸에 좋지 않은 나쁜 자세로 하루 10시간씩을 버티면서 고작 1시간 남짓한 운동이 해결해 주길 바라는 건 분명 욕심이다. 그러나 '어후~ 하기 싫어 죽겠네' 중얼 대면서 매일 이를 악물고 운동을 하는 것은, 나 아닌 누구도 내 몸을 대신 살려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동생의 아기는 전보다 편하게 몸을 뒤집을 수 있게 됐고, 이제 팔다리를 움직이며 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키려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용을 쓰앞으로도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거쳐 테지만, 우리는 모두 그녀가 언젠가 무릎을 딛고서 기다, 앉다, 일어서, 결국은 걷게 되리란 걸 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우고 해내는 아기처럼 나 또한 다시 아기의 상태로 돌아가보려 한다. 내가 태어났던 원래의 상태로,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제기능을 하던 그때로. 위대한 아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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