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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은 포르쉐가 박살났다

저기요, 아파서 쉬신다면서요

항상 분주히 지내는 나에게 친구는 '뭐든 좀 적당히 하라'라고 그리고 '가끔은 제발 좀 쉬라'고 귀에 피가 나도록 말했다. 내가 '나름 잘 쉰다'라고 반박하면 '쉰다는 건 너처럼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할 때가 아니라, 천장에 점하나를 찍어놓고 종일 그것만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있다가 저녁 즘 고양이 똥이나 치울 때 쓰는 말이야'라고 면박을 줬다.


친구는 '너는 포르쉐를 태워서 보내면 얼마 뒤에 너덜너덜해진 티코로 만들어서 돌아올 인간이야. 가는 길에 가시 덩굴이 있으면 덩굴을 좀 걷어내고, 기름이 없으면 기름도 채우고, 가끔은 차에서 내려서 멀리 풍경도 감상해 가면서 그렇게 가야 하는데 너는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이빨로 끌고서라도 계속 가잖아'라며 나를 쉬지 않고 달리는 폭주기관차 같다고 했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라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내적 만족도만은 최상의 여행일걸?'이라고 겨우 한 마디 받아쳤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어쩌면 '과로사'나 '의문사' 자칫하면 '객사'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스스로는 이미 무수한 가시덩굴들이 바퀴를 휘감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벌써 기름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직을 시작할 무렵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운동센터였다. 사고 후 반년 간 받았던 도수 외에 제대로 된 재활운동을 하지 못한 터라 몸상태가 많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목과 어깨, 골반의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렸고, 가끔 무리하는 날이면 잠을 자다 깰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단순히 건강 유지를 위한 운동이 아니었기에 좀 더 신중히 전문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찾게 된 곳이 지금의 센터이다.    


이곳의 원장님은 운동처방사이자 물리치료사이다. 원래 필라테스의 목적재활에 있기에 내가 현재 배우는 것들 또한 단순 '운동'보다는 환자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치료'에 가깝다. 일반적인 센터는 몸매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찾는 여성분들이 많은데 비해, 이곳은 영구적인 손상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거나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런 환자들 중 하나이다.


일반 필라테스에서 대기구나 소도구를 써서 몸의 이런저런 근육들을 강화하는 운동이 주를 이룬다면, 나의 경우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몸의 핵심 근골격계를 원래 상태로 돌이키는 동작을 주로 한다. 마치 와식생활을 하는 환자급의 코어근육과 해파리처럼 흐물대는 견갑 및 등근육, 말라비틀어진 북어같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골반과 어깨 등이 전혀 제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 수업마다 8만 원 가까이를 내고 배우는 동작들은 겉으로 보기에 '이게 무슨 운동이야' 싶을 만큼 단순하다. 그러나 베드 위에 누워서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1세트만으로도 땀이 빠질 빠질 흐른다. 하고 나면 기진맥진 해지는 이 운동들을 선생님은 매일 200번씩, 수시로 반복하라고 시켰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하루 한번 50번 정도를 겨우 해냈다.


3번째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하루에 운동을 얼마나 하냐고 물었다. 나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하루에 100개씩 한다고 했다. 나의 대답에 눈이 동그래진 원장님은 나지막이 그러나 강한 어조로 나를 꾸짖었다. '지금 아파서 쉬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냐, 근데 하루종일 무얼 하느라 운동을 안 하는 것이냐. 운동 전체를 하는데 채 5분도 걸리지 않을 텐데 24시간 중에 얼마를 할애하면서 나아지길 바라는 거냐'고 물었다.


나의 근육상태는 너덜너덜하게 닳아 끊어지기 직전의 밧줄 또는 피부 표면에 생긴 상처 같은 상태라며 그렇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 근육이 아프다고 마구잡이로 주무르거나 누르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단 일주일만이라도 몸이 회복될 수 있도록 환자처럼 누워서 중력에 힘을 받지 않도록 쉬어주라고, 그 뒤 몸이 회복되면 마치 운동선수처럼 지금 자기가 시키는 운동만 반복적으로 해서 단기간에 강해지라고 했다.


24시간 중에 내 몸이 건강한 자세로 유지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나는 아파서 휴직을 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대부분의 시간을 내 목과 어깨, 등과 골반에 좋지 않은 상태로 방치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참 우습고 건방진 생각이었다. 고작 일주일에 2번 1시간씩 하는 운동으로 몇 십 년에 걸쳐서 손상되어 온 내 몸이 나아지길 바랐던가? 나의 몸을 혹사시키고 망가뜨리는 것은 쉽게 하면서, 몸을 회복시키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에는 왜 이렇게 소홀한 건지. 선생님의 일침에 뜨끔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태어났을 때 내 손에 쥐어졌던 것은 포르쉐의 키였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멋진 선물을 소중히 다루지 못하고 정말 마구잡이 엉망진창 와장창창 타고 다녔다. 그로 인해 타이어에는 펑크가 났고, 겉 표면은 닳디 닳았으며, 새까맣게 기름때와 먼지가 내려앉아서 이게 원래 포르쉐였는지 티코였는지 알아볼 수 없는 형상이 되었다. 겉에 낀 때와 먼지를 닦아내고 상해버린 부품들을 손보면 다시 포르쉐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아파와서인지 건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회의감과 무력감을 자주 느낀다. 그러나 선생님은 인간의 몸에는 자체적인 회복력이 있고 아직 나는 젊다며 악화되는 상황에서 방치하지 않고 나아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분명히 호전될 수 있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제는 안 되는 동작을 따라 하며 어거지로 용을 쓰다 기어코 눈물샘이 터졌다. 눈물이 났던 게 힘들어서인지, 서러워서인지 혹은 고마워서인지 모르겠다.  


혼자서 길을 잃고 이곳저곳을 헤매다 진을 다 뺐다. '이번 여행은 글렀어, 내가 그렇지 뭐, 대충 이렇게 살다가 끝끝내 길을 못 찾으면 걍 때려치지 뭐' 하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잠시 쉬어가려 주저앉은 내 곁으로 다른 차 한 대가 다가왔다. 자기가 길을 안다며 그저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난다. 다시 나침반을 가진 가이드와 함께 목적지로 향해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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