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 몸을 살리는 방법

내 몸 사용 보고서 3

몸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이 몸과 평생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몸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인터넷 창을 켜고 관련 정보들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던 나는 책을 찾아보기 위해 대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면역력에 대한 책부터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책, 심리적인 부분이 신체에 끼치는 영향력에 관한 책까지. 제목을 보고 관심이 가는 책들을 가져다 그 자리에서 읽어치웠다.


전 세계에 저명한 학자들이 쓴 책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로 귀결되는 공통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몸을 구성한다는 것, 지나치게 섭취한 음식들이 독이 된다는 것, 그러한 독소들이 모여 호르몬의 불균형을 야기하고, 궁극적으로는 질병과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내가 먹는 것들이 나를 만든다는 것'과 '병이 부족이 아닌 과잉에 의해 나타난다'는 사실은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였음에도 내게 놀라운 발견으로 다가왔다.




책에서는 계속해서 쉬지 않고(그것도 어마어마한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을 무시무시한 양과 횟수로) 먹는 것이 몸의 과부하를 낳고, 그로 인해 잉여된 물질들이 몸속에 남아 부패하면서 독성물질로 변화된다고 했다. 과도한 소화활동으로 기진맥진한 장기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영양소를 섭취하지도 독소들을 배출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몸이 탁하고 약해진다는 것이었다.


위와 장 같은 소화기관의 역할은 단순히 음식물을 소화시키고 흡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장에는 우리 몸 전체의 면역세포 중 70%가 포진해 있었고, 장내 세포에서는 세로토닌과 같이 심리적인 만족감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생성되고 있었다. 어쩌면 내 몸의 면역체계가 고장 난 것이, 그리고 몸과 함께 내 마음이 무너졌던 것이 나의 식생활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먼저 나의 식생활을 돌아보아야 했다.


1. 식습관 돌아보기 (내 몸을 무엇으로 채워왔는가)

지난 몇 년 간의 식생활을 곰곰이 되짚어보니 가히 '최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완전한 육식주의자에 면순이이자 치즈 환장러였던 내가 주로 섭취해왔던 것들은 밀가루, 유제품, 고기, 설탕, 기름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다시 말해 책의 저자들이 몸에 좋지 않으니 되도록이면 섭취를 줄이라고 신신당부하는 것들의 총집합체였기 때문이다. 내가 살기 위해 먹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나를 죽이고 있었다.


대학시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끼니를 거르는 일이 허다했고, 그나마 챙기는 끼니마저도 어딘가로 이동하는 동안 눈에 보이는 대로 대충 주워 먹는 것이 전부였다. 주로 주워 먹은 것들은 편의점에서 파는 샌드위치나 삼각김밥, 빵 쪼가리 따위의 것들이었고, 간혹 온기를 가진 것이 그리울 때면 컵라면이나 붕어빵, 포장마차 분식 같은 것들로 허기를 채웠다.


대학원 시절 실험실에 쩔어 사는 동안에는 중국집 음식이나 패스트푸드 같은 배달음식을 주식으로 삼았다. 그러다 배달 음식이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물리게 되면, 건강을 챙긴다는 명목으로 쌀밥을 찾아먹곤 했다. 그러나 이름만 밥인 (사실 또 다른 배달음식에 불과한) 각종 도시락들은 몸과 마음에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것 외에도 내가 몸에 저지른 잘못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밤샘 작업을 버텨내기 위해 하루 종일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고, 두뇌에 총기를 불어넣는다는 명목으로 시도 때도 없이 초콜릿과 각종 단 것들을 때려 넣었으며, 몸이 아플 때마다 온갖 종류의 약들을 쏟아부었으니 말이다.


나는 늘 내가 아픈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며 몸에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애써왔었는데, 알고 보니 내 몸은 밤낮없이 쏟아지는 쓰레기 같은 음식 폭격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것이었다.

의사들이 먹지 말라는 음식만 먹은 것 같다. 그러니까 아프지
2. 생활습관 개선하기(건강한 것으로 채우기)

내 몸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했다. 나는 내 몸의 전체적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건강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일지에는 3끼의 식사내용과 더불어 매일 자고 깨는 시간과 배변 상태는 물론, 챙겨 먹는 약과 물의 양, 통증의 정도와 몸의 컨디션 등 내 몸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담기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내 몸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기록했다. 먹고 마시는 것들에 따라 달라지는 장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음식들을 조절하여 먹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와 하루를 끝낸 뒤 잠자리에 들기 전 통증 정도를 비교하면서 다음날의 일정과 컨디션을 조절했다. 내 모든 관심을 내 몸에 이토록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가장 먼저 바꾸기 위해 노력한 것은 나쁜 음식을 끊는 것이었다. 내 몸이 받아들이기 버거워할 만한 음식들을 피하고, 되도록이면 바깥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위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식사의 양을 줄였고, 점심 즈음에 첫 끼니를 먹고 이른 저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음식을 섭취하는 전체적인 시간을 줄였다. 차츰 속이 편안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쁜 음식 멈춰! 건강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따른다.

다음으로 시도한 것은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집 근처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직접 기른 작물들을 사다 먹었는데 이후에 좀 더 다양한 작물을 먹기 위해 찾아보던 중 한살림이라는 생활협동조합을 알게 됐다. 조합원이 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을 당시 그곳에 20대는 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아기를 키우는 어머님들이었고, 나머지는 항암치료 혹은 투병 중인 어르신들 이셨다.


그곳에서는 농약을 치지 않고 소규모로 정성껏 기른 다양한 농작물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비록 조금 못생기고 볼품이 없었지만, 하나같이 건강하고 안전한 것들이었기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작고 모난 사과나 찐 고구마로 한 끼 도시락을 꾸렸고 콩을 삶고 갈아 직접 두유를 만들어 먹었다. 지금껏 먹어왔던 음식들에 비해 소박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은 비어있던 내 몸을 조금씩 채워주었다.


3. 신체기능 향상시키기(몸 움직이며 체력 키우기)

내부를 맑게 정화시키자 몸이 가볍게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독기와 붓기로 가득 찼던 몸이 비워지니 그 빈자리에 채워 넣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몸에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고 싶었던 나는 거창한 결심 대신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부터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당장 운동화를 조여 신고 집 근처 골목을 휘적휘적 걸으면서 하루에 5분씩 조금이라도 짬을 내어 몸을 움직였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진 뒤로 저렴한 가격에 자전거 한대를 샀다. 장을 보거나 누군가를 만날 때 등 웬만한 이동을 자전거로 하기 시작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것에 재미를 붙여나갔다. 매일 피곤에 쩔어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하던 15분 거리의 직장에도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왕복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나름의 대장정이었지만 비가 오거나 정장을 입어야 하는 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날들을 자전거와 함께 했다.

  


일정한 수입이 생기기 시작한 뒤로 월급의 일정 부분을 할애하여 내 몸에 투자했다. 필라테스 학원을 등록해 손이 덜덜 떨리는 금액을 학원비로 내어가며 1:1로 원장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몸을 조금씩 움지락 거리는 것이 전부 인, 겉으로 보기에 뭔가를 하는 듯 마는 듯 한 동작을 하는데도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깊숙한 곳에서부터 조금씩 힘이 생기고 단단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체력과 근력이 조금씩 생기고 난 이후로 헬스에 등록해 재활 PT를 받기 시작했다. 엄청난 무게를 달아서 대기구를 쳐가며 근육을 뽐내는 다른 사람들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맨몸으로 내 팔과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유없이 나를 괴롭히는 통증' 대신 '운동 후 내가 괴롭힌 부위에서 느껴지는 근육통'을 느끼는 것은 내게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텅 빈 채 죽어가던 몸은 기분 좋은 묵직함과 생기로 서서히 차올랐다.




내 몸을 살려내기 위해 했던 무수한 시도들은 사실 앞서 적혀있는 글의 내용처럼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다.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장장 6~7년의 시간에 걸쳐 몸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더디고, 지루한 날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에 걸쳐 망가진 몸이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뿅 하고 나아지는 비법 같은 건 없다. 조금씩 꾸준하게 시도하는 노력들이 차츰차츰 모여, 서서히 나아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만일 누군가 이유 없이 망가진 몸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아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컨디션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다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 말한다. 지금껏 당신이 먹어온 것들과 당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 당신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디서부터 무언가를 바꿔나가야 할지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여 나와 같은 이가 있다면 하나하나 차근히 스스로에게 묻고, 자신과 이야기하며 실마리를 풀어나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본 이야기는 '내 몸 사용 보고서4 (너를 잃고, 다시 찾기까지)'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duckyou-story/56


이전 10화 보이지 않는 병과 싸운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