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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가에게

너에게 쓰는 첫 편지

아가야 안녕? 엄마야 :)


편지 쓰기 숙제를 받고서 가장 먼저 너를 떠올렸어.

아빠에게는 14년 간 수백 통의 편지를 써줬으니

네게 써도 서운해하진 않겠지? 하면서 말이야.


너와 함께 한지도 벌써 7개월이나 되었네.

처음엔 눈에 보이지도 않던 네가 콩알만 해지고,

도룡뇽이(?) 되더니, 이제는 제법 사람 같아졌어.


그 사이 계절은 흘러 봄에서 여름으로,

다시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네.

다가올 봄은 함께 맞이하겠다 그지?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이맘때 즘에 엄마는

많이 아프고 슬픈 가을과 겨울을 보내었어.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고 살고 싶지 않았거든.


암것도 기대되는 것이 없었고 하고픈 것도 없었어.

그래서 매일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하루를 버티며

어둡고 무거운 생각 속에 잠식되어 있었단다.


아빠는 너를 갖고 싶다고 하면서도 많이 걱정했어.

엄마가 약을 끊고 임신을 하면서 더 아파질까 봐,

그래서 너도 잃고 엄마도 잃게 될까 봐 두려웠나 봐.


그래도 엄마는 너를 만나보기로 결정했어.

내가 아파도 좋으니 너를 꼭 보고 싶었거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건대 용기 내길 잘한 것 같아.



그러다 봄에 네가 찾아왔어. 아주 기적같이 말이야.

생각지 못한 너의 등장에 엄마아빠는 정말 기뻤어.

엄마에겐 아주 오랜만에 희망이라는 것이 생겼고

우리 세 가족이 함께 할 미래를 기대하게 됐지.


오랜만에 생긴 희망이 어찌나 간절하고 소중하던지

매주 피검사로 너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도 모자라

하루에도 몇 번씩 네가 있는지 테스트 해봤다?ㅎㅎ

유난스럽지만 네가 사라질까봐 두려웠던 것 같아.


그렇게 네 존재가 커져갈수록 엄마아빠의 마음속

생명력도 조금씩 따라 커져갔단다. 참 신기하지?

너는 그때 고작 2mm짜리 점박이에 불과했는데

그런 네가 엄마아빠를 살고 싶게 만들었단 게 말야.  


그래서 네게 말해주고 싶었어.

네가 엄마 아빠를 살려냈다고,

네가 우리 가족이 있게 했다고 말이야.



네가 오자마자 엄마는 다시 일을 하게 됐어.

아직 안정을 찾기도 전에 시작한 일이라서

혹여나 너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까 걱정했단다.


아니나 다를까 출근 첫날에 시작해 지금까지

단 하루도 그냥 지나간 날이 없었네. 매일매일

전쟁터 같은 그곳을 버텨내느라 너도 힘들었지?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고픈데

늘 보여주는 건 자해 상처에, 들려주는 소리라곤

죽고 싶단 말과 울음소리뿐이라서 미안해...ㅠ


엄마한테 오는 형아 누나들이 많이 아파서 그래.

사실은 살고 싶은데 지금 마음이 많이 힘든가 봐.

엄마가 돕고 싶은데 딴딴이가 엄마 좀 도와줄래?

우리가 형아 누나들 곁에서 같이 힘이 돼주자...



처음으로 조기진통이 와서 병가를 썼던 날,

너에게 미안해서 울었어. 씩씩하게 버텨주던 너도

사실 많이 힘들었구나 싶어서. 엄마가 딴 사람들

살리느라 정작 널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했어.


한동안 괜찮은 줄 알았는데 네가 또 힘든가 봐ㅠ

의사 선생님이 지금 이렇게 진통이 오면 안 된대.

아직 네가 너무 작고 약해서 아직은 엄마 뱃속에

같이 있어야 한데. 엄마 빨리 보고 싶어서 그러지?


엄마도 딴딴이 빨리 보고 싶은데 참고 있는 중이야.

그러니까 엄마랑 조금만 더 같이 있으면 안 될까?

엄마가 이제 무리하지 않고 잘 쉬기로 약속할게.

너랑 하는 첫 약속인 만큼 엄마가 잘 지켜볼게.


내가 계속 슬퍼하면 너도 슬퍼할 거 같아서

네가 엄마한테 휴가 줬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너무 걱정하며 미안해하기보단 고마워하려고.

엄마 힘들까봐 푹 쉬게 해 줘서 고마워 딴딴아.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네가 걸어오는 대화가

엄마는 참 좋아. 톡톡톡, 꿀렁, 데굴데굴 하면서

하고픈 말이 어찌나 많은지 듣는 재미가 쏠쏠해.


그렇게 계속 알려줘. 너 거기에서 잘 놀고 있다고

귤이 맛있다고, 기분이 좋다고, 지금은 쉬어가자고.

엄마한테 말해주면 엄마가 네 이야기 잘 들을게.

어느 누구의 이야기보다 네 말에 귀 기울일게.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너무 불안해하지 않도록

수다쟁이가 되어서 엄마에게 알려줬음 좋겠어.

네가 말하기 전에 엄마가 먼저 말 걸어볼까?


요즘 날씨가 좋지? 엄마가 만든 음식은 어때?

아빠가 딴딴이 사랑한다 하구, 랑당이 형님들도

너 많이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 2달 뒤에 보자.



이제 엄마도 그만 슬퍼하고 힘을 내 보려고 :)

그래야 너도 뱃속에서 엄마 걱정 그만할 테니까.

잘 먹고, 자주 웃고, 좋은 생각 하며 그리 보낼게.


내년 겨울엔 네가 엄마 품에 있겠구나.

다가오는 봄은 우리 셋이 함께 맞이하겠지.

여름엔 물놀이도 가고, 가을엔 단풍놀이도 하자.

모든 것이 처음일 너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줄게.


사랑하는 나의 아기, 딴딴아.

우리 만날 때까지 잘 지내렴.

머지않은 날에 만나기로 해.


편지를 마무리하기 아쉽구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보고 싶고, 정말 사랑한다.


- 24. 11. 17 제법 쌀쌀해진 가을날

엄마라는 이름이 아직 낯선 유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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