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지내는 내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이었다.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부터 코르크텔리 같은 소도시까지. 터키 어디를 가든 이곳저곳에서 쉽게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양이는 TV 속 광고나 길거리 홍보 포스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존재였다.
가게 안 밖으로 자유롭게 드나들며 낮잠을 퍼질러 자는 아이들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몸을 부비적대는 아이들까지. 사람을 보면 경계를 하고 도망을 가는 우리나라 고양이들과는 달리 터키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여유롭고 사람들에게 친화적이었다.
1개에 1리라짜리 상품. 고양이도 파는 겁니까?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을 길고양이 혹은 도둑고양이라 부르며 그다지 반기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함께 살아가는 귀여운 친구들로 여기며 밥과 물을 챙겨주는 터키 사람들의반응도 신선했다. 큰 길가 공원이나 작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인근 주민들이 만들어놓은 고양이 급수대와 쉼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안탈리아를 찾았을 때 나를 놀라게 만들었던 것은 고양이 마을이었다. 관광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작은 공원에는 새끼를 베거나 몸이 아픈 고양이들을 위한 집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기부로 유지되고 있는 고양이 마을에는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이곳은 행복이 가득한 고양이 마을입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이곳저곳에서 마주하는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한국에 두고 온 나의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발걸음을 멈추고 다가가 그들을 한참 쓰다듬다 보면 그들 생각에 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아픈 데는 없겠지.'
그렇게 나의 것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한국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참을 통화하며 마음에 짐을 덜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우리 신혼집에 두고 온 내 새끼들은 사라진 두 집사를 그리 찾지도 않고 새로 나타난 집사와도 잘 지내고 있단다. 그들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그 공간이 혹여나 스트레스가 되진 않을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잘 적응해서 서로 아웅다웅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첫째 까칠까칠 랑이와 둘째 둥글둥글 당이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걱정했던 것은 '떠나갈 우리'가 아닌 '남겨질 두 녀석'이었다. 혼자 둘 수도, 어디에 맡길 수도 없어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말아야 고민하는 찰나, 기적처럼 등장한 다크호스 덕분에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 익숙하게 그들을 돌보며 이따금씩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는 그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른다.
이곳의 음식과 사람들에게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에 있는 나의 집과 사람들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무엇보다도 익숙한 공간에서의 익숙한 삶을 가장 그립게 만드는 것은 '나의 것'들이다.
마음이 휑하니 가슴에 큰 구멍이 난듯한 느낌이 들때면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고, 따순 온기를 느끼며, 몰랑한 뱃살에 코를 파묻고 포근한 이불 냄새를 맡던 그때가 간절해진다.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 침대에 누워 극세사 이불을 덮고 자는 모습
잦은 환경의 변화로 으른이 되면서 예민 보스가 되어버린 첫째 랑이는 떠나기 직전까지 눈에 밟혔다. 도통 밥도 입에 대질 않고 핼쑥해진 모습으로 아련하게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짠해 자주 콧잔등이 시큰했었는데.. 그래도 요즘은 밥도 잘 먹고 임시 집사님 가랭이 사이에서 잠들기도 한다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쪼꼬만 조랭이떡 같았던 둘째 당이는 어마어마한 먹성으로 거대한 조랭이떡이 되어버렸다. 쪼끄말 때는 그나마 똥꼬 발랄한 정도였었는데 이제 덩치가 커져서 랑이를 이겨먹으려 한단다. 자꾸자꾸 커진다니돌아갔을 때 돼지 보스가 되어있을까 봐 살짝 겁이 나지만 그럼에도 잘 먹고 잘 논다니 그저 고맙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걸었던 영상통화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두 녀석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나는 생생한 모습을 눈에 담으며 적잖이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없어도 잘 있구나, 다들 여전하구나.' 하고.
별다른 것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잘 지내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 역시도 그러한 존재였던 적이 있을까?
무언가를 잘 해내 끊임없이 존재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던 지난 삶에서 벗어나, 마치 아기 때로 돌아간 듯 잘 먹고 잘 자고 잘 있어주는 것만으로 기특하고 감사한 지금의 내 존재가 낯설지만 소중하다.
요즘 내게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여실히 느낀다. 내 손과 발, 내가 먹던 음식, 내 집과 옷, 내 사람들과 고양이, 내 삶.. 잃을 뻔했기에 더욱 소중해진 것들과 잃지 않았다면 소중한지 몰랐을 것들이 뒤섞여 모든 것이 소중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