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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버려진다는 것

동백꽃 필 무렵에 만난 나의 동백이 3

이 글은 1편부터 4편까지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 편을 먼저 봐주세요.

https://brunch.co.kr/@duckyou-story/40




어느 날 자기 엄마를 데리고 나갔던 동백이가 엄마를 버리고 돌아왔다. 27년 전 엄마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돌려주며 나름의 복수를 한 줄 알았는데.. 그녀는 마치 자신이 다시 버려진 듯 무너져 내렸다. 27년 간 가슴에 박혀있던 말을 뱉어냈음에도 그녀는 전혀 후련하지 않아 보였다.

             

그녀가 엄마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그 날을 가슴에 새긴 것이 복수를 위한 게 아니었단 것만은 알 것 같다. 어쩌면 그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생각이 나서, 돌이키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 날의 일을 차마 잊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나 또한 엄마라는 이름의 사람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다. 돌아가신 엄마 대신 나의 엄마가 되어주겠노라 우리 집에 왔사람은 몇 년 뒤 엄마라는 이름을 갖고 사라졌다. 자신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이 모두 내 탓이라며 원망을 퍼붓던 그녀는 내가 학교를 간 사이 우리 집을 떠났다. 휑하게 비어버린 집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서있었던 그날의 기억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녀가 떠난 후로 수도 없이 그 날을 곱씹었다. 내가 착하지 않아서, 예쁘지 않아서,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엄마가 떠난 것이 모두 나의 잘못이라 생각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리고 그렇게 수 없이 그 날을 되뇌는 사이 내 가슴에는 그날의 공기부터 그 사람의 눈빛까지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남아버렸다.


시간이 흘러 당시 엄마 나이 무렵이 된 나는 같은 여자로서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피가 섞이지 않은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 상황 속에서 탓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겠구나..'하고. 그러나 그녀를 이해하면서 더 이상 그녀를 미워할 수 없게 돼버린 나는 참으로 애석하게도 그녀를 다시 그리워하게 되었다.

꿈속에서 그 날로 돌아온 엄마는, 동백이를 버리지 않는 선택을 했다.


동백이가 자신을 아프게 한 엄마를 결국 용서했던 것은 엄마가 잘못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녀가 자신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준 사람을 다시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쩌면 30년간 비어있던 엄마의 자리를 채우고 그간 받지 못했던 사랑을 받고픈 욕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0년 만에 나타난 엄마를 마주하는 나의 마음 또한 그러다. 엄마는 분명 내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이지만 내가 간절히 바라던 존재이기도 하기에.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했던 나는 결국 다시 그녀를 엄마로 맞아들이기로 했다. 비록 아직 동백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엄마가 되어 줬던 그 유일한 사람을 나도 용서려 한다.


망할 놈의 팔자타령 따위

동백이가 고아에, 미혼모에, 술집 여자로 사는 것이 박복한 팔자를 타고났기 때문이라 수군대는 동네 사람들을 봤다. 그리고 오래전 내 뒤통수로 날아왔던 수많은 수군거림을 떠올렸다. 엄마의 장례식 날에도, 새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도. 내 삶에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어른들은 옹산리 아줌마들처럼 근거 없는 수군거림을 던져댔다.


그중 몇몇은 나를 불러앉혀 놓고 '이게 다 팔자 때문이라고, 나가 박복한 팔자를 타고났다'라고 했다. 그리고 말미에는 꼭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대체 그놈의 팔자가 뭐 길래 뭔 일만 있으면 팔자 팔자 거리는 것이며, 내가 왜 그 망할 팔자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내 팔자가 어때서

나는 누군가로부터 그 지긋지긋한 팔자타령을 들을 때마다 '내 기필코 드세고 더러운 내 팔자를 바꿔 볼 테니 어디 한번 두고보자'고 이를 갈았다. 그리고 내 팔자를 뒤흔드는 나쁜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엄한 팔자 탓 대신 어떻게 이 일들을 헤쳐나갈 것인지 궁리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동안 '어쩜 이럴 수 있나' 싶을 만큼 삶이 꼬이는 순간들이 가끔씩 찾아왔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기억 저편에서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고 아픈 것이 혹시 그 망할 팔자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스르르 떠올랐다.


두 사람은 늘 입을 비죽이며 지질하고 섧게, 그러나 함께 울었다


계속해서 힘든 일을 겪는 용식이에게 팔자가 옮을 거라며 자기를 떠나라 말하는 동백이를 보았다. 나는 시선을 옮겨 물끄렴이 신랑을 바라봤다. '이 사람이 신혼여행에서 사고를 겪고, 타국에 갇혀 힘든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여지꺼정 백수 나부랭이로 살아가는 것도 혹시 내 팔자가 옮아서인가?'


진지하게 꺼낸 나의 '팔자 옮음설'을 들은 신랑은 그런 게 어딨냐며 피식 웃어넘겼지만 나는 쉬이 웃음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문득문득 내가 아니었다면 평범하게 살아갔을 사람이 나로 인해 괜히 스펙타클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괜시리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나의 박복한 팔자로 인해 신랑마저 가시밭길을 걷게 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대신 '우리 신랑이 용식이처럼 강력한 상팔자로 내 팔자를 싹 다 덮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보려고 한다. 과연 내 팔자가 이길지 신랑의 팔자가 이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이미 내 팔자에 존재하는 무수한 불행들을 충분히 댕겨다 썼으니 앞으로는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믿고 싶다.


용식이가 준 가장 큰 선물. 에브리 데이 해피 동백 데이



본 이야기는 '동백꽃 필 무렵에 만난 나의 동백이 4'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duckyou-story/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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