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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이 다 지고 나서야 꽃인 줄 알았습니다.

동백꽃 필 무렵에 만난 나의 동백이 4

이 글은 1편부터 4편까지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 편을 먼저 봐주세요.

https://brunch.co.kr/@duckyou-story/40




죽을 날을 받아둔 동백이 엄마가 용식이에게 말했다. 징글징글하게 외로웠던 우리 동백이 이제 혼자 두지 말아달라고. 나의 결혼식 날, 자신의 손을 잡고 입장한 나를 신랑에게 건네며 우리 아빠가 말했다. 이 아이를 외롭게 두지 말아 달라고.


아직도 아빠가 했던 그 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자신이 홀로 지낸 외로운 시간들 때문인 건지, 내가 겪었을 외로움에 대한 추측이었는지. 하지만 애써 덤덤하게 건넨 아빠의 말은 내게 지난날 사무쳤던 외로움에 대한 '위로'이자 앞으로 외롭지 않을 거라는 '안도'를 가져다줬고, 그 날 아빠로 인해 눈물보가 터진 나는 주례 선생님 앞에 서서 한참이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시집을 간 뒤 주변 지인들로부터 종종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를 받는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니가 혼자가 아니라서 이제 안심이라며 곁에 이서방이 함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지금껏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나는 적잖이 마음이 쓰이는 존재였나 보다. 


나 또한 그들에게 '더 이상 내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한다. 이제 내게도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가족'과 힘들 때 돌아가고 싶은 '집'이라는 공간이 있으니 말이다. 내 생에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행복한 가정'을 얻은 나는, 내게 주어진 나의 두번째 가족을 소중히 가꿔가고 있다.


그렇게 매 순간 내가 더 이상 누군가의 아픈 손가락이 아님에 안도하고, 내게 허락된 모든 것에 감사한다.  


나의 용식이 그리고 나의 기적들

박복한 팔자에 이리저리 치이던 나에게 '행복해질 자격이 충분하다' 말해 준 사람이 있다. 나의 가치를 잃고 매일 스스로를 자책하던 나를 '니가 젤로 쎄고, 젤로 강하고, 젤로 훌륭하고, 젤로 장하다' 치켜세워 준 나의 용식이. 그는 아무것도 없는 나를 보며 '가진 것이 참 많다'고 말해 준 유일한 사람이다. 


이 사람 덕에 나는 가시밭길 같았던 지난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모나고 못난 나의 마음이 가끔 나를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이제 내게는 용식이가 있기에 무슨 일이든지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용식이는 잘생긴듯 못생긴듯 잘생겼다. 마치 우리 신랑처럼.


내게는 용식이 못지않게 감사한 사람들이 있다. 한 번도 공짜가 없던 내 인생에 공짜처럼 나타나 준 수많은 나의 사람들. 그들은 내가 쌓아 둔 단단한 성벽을 허물고 기꺼이 내 삶에 들어와 주었고, 나보다 더 나를 아끼며 오늘날의 내가 있게 해 주었다.


그들을 만나기 전 내 인생도 모래밭 위 사과나무 같았다. 파도가 쉬지 않고 달려드는데 발밑에 움켜쥘 흙도, 팔을 뻗어 기댈 나무 한그루도 없었다. 그러나 내 곁에 하나둘씩 돋아난 사람들과 뿌리를 엮었고, 그 덕에 발밑이 단단해졌다. 이제야 내 곁에 바닷바람과 모래알, 그리고 눈물 나게 예쁜 하늘이 보인다.  


가진 것이 없던 나에게 그들이 베풀어 준 모든 것들을 기억한다. 여지껏 내가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보내준 기적 같은 사랑 덕분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되어줄 수 있다는 동백이의 말처럼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기적이 되어주려 한다.


40회 말미에 작가가 편지를 남겼다. "이 세상에서 제일 세고, 강하고, 훌륭하고, 장한. 인생의 숱하고 얄궂은 고비들을 넘어 매일 '나의 기적'을 쓰고 있는 당신을 응원한다고.." 이 땅의 모든 동백이 들을 응원하는 작가처럼, 나 또한 무수한 고비를 넘어 매일의 기적을 쓰고 있는 나와 모든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늘 내 삶에 봄이 오기를 바랬다. 춥고 끔찍한 시간들이 지나고 어서 따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았다. 그러나 인생에 봄날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고, 봄이 왔나 싶다가도 금세 다시 겨울이 되곤 했다. 


그러나 겨울에도 꽃은 피었다. 모든 꽃이 다 져버린 한 겨울에도, 동백만은 꽃을 틔워 발갛게 빛을 내었다. 추위에 잔뜩 움츠러든 나는 미처 꽃을 보지 못했지만, 늘 겨울이었던 내 삶 속에서도 분명 무수한 동백이 피고 또 졌다. 나는 동백이 다 지고 나서야 그것이 꽃이었음을 알았다.


이제 조금은 가볍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 찾아 올 봄을 기다리며 지금의 행복을 미루기 보단 지금 이 겨울에 천지로 피어난 동백을 즐기면서 살기로 했다. 봄에는 신나서 춤을 춰대는 꽃씨처럼, 여름에는 방학 맞은 필구처럼, 가을에는 팔자 좋은 한량처럼, 겨울에는 눈밭에 뛰노는 개처럼 그렇게 가볍고 유쾌한 마음으로 내 생에 주어진 행복을 아낌없이 음미하려 한다.


이 글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동백꽃을 틔운 나에게 보내는 감사이자, 멋진 작품을 선물해준 임상춘 작가님에 대한 헌사이다. 나를 들여다보고 내 주변을 둘러보게 해 준 이 선물 같은 작품에게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전한다. 


 삶에 피어난 동백 한 송이를 그대에게 보내며 긴 글을 마친다. 



지금까지 <동백꽃 필 무렵에 만난 나의 동백이>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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