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부재 속에 자라면서 간절히 엄마라는 존재를 찾았다. 그러나 매번 내가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이번 생에서 엄마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해야했고, 쉽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절망했다.
주변에 엄마와 돈독하게 관계를 맺고 지내는 딸들을 볼 때면 과연 엄마가 딸에게 주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그 사랑을 받는 딸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궁금증을 느꼈다. 나로서는 경험해 본 적 없기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엄마의 사랑이 뭔지 느껴보고 싶었고, 그것이 정말 그렇게도 크고 대단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딸이 될 수는 없지만 엄마가 될 수는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다면 엄마가 되어서 그 사랑이 뭔지 경험해보고 싶다'는 맘이 찰나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생각들은 이내 무수한 두려움들에 묻혀 저 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의 삶과 아이의 삶을 바꿔야 한다면
상담자라는 직업상 건강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 마음에 병을 가진 이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늘'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자식들'이나 '자식으로 인해 고통받는 부모들'만 만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갖게 됐다. 내가 좋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물론, 나로 인해 아이가 망가지거나, 그 아이로 인해 내가 고통받게 될 것에 대한 불안감이 항상 존재한다.
아이가 생김으로써 나의 삶을 포기하고 아이를 위해 전적으로 희생해야 한다는 것 또한 엄마가 되기 망설여지는 큰 이유다. 20대부터 호기심도 꿈도 많았던 내가, 살면서 하고 싶은 무수한 일들과 나의 삶을 접고 오직 아이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나를 바칠 자신이 없다. 아니, 그렇게 바칠 수야 있겠지만 그러면서 진정으로 행복할 자신이 없다. 내 삶을 포기하면서 아이를 원망하거나 낳은 걸 후회하게 된다면 그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참으로 몹쓸 짓이 될 것 같다.
내가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될지 두렵다
나 또한 결핍이 많은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가끔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 그래서 혹여나 내가 과거에 누리지 못했던 것을 아이에게 쏟아내면서 부담을 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루지 못한 꿈과 해내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지워주며 그것을 대신 이뤄내라고 요구하기보단, 내가 미처 가지지 못하고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부터라도 나와 남편에게 해주면서 우리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해도 될까?라는 의문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에게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것이 웃기지만, '이 위험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아이 혼자 남겨져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진지하게 지금처럼 기후가 변하고 엉망으로 망가져가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 과연 우리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한다.
뉴스를 통해 지구 곳곳에서 쉴 틈 없이 태풍이나 홍수, 화산 폭발이나 대형산불이 발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시간이 갈수록 이런 재해들이 더 심하게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다 지난 몇 년 간 코로나까지 겪고 나니 이전에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걱정'이 '충분히 해봄직 한 걱정'으로 다가왔다. 이 지구 상에 아이를 덜렁 낳아두어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을 원망하면 어쩌나 싶다.
물, 불, 바람, 흙이 합쳐지면 천하무적!! 이 아니라 지구종말이다
사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그저 부모가 만들었으니 이 세상에 태어난 것 뿐이다. 모든 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이 본인 아닌 타인을 위해서 아이를 낳는다. 주로 부모의 역할을 하고 싶어서 혹은 노후를 함께 해줄 존재를 위해, 심지어는 첫째가 외롭고 적적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 아이를 낳으니 말이다.
이 세상에 남겨져서 자신의 인생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이인데, 과연 그 아이에게 의사를 묻지 않고 인생이라는 큰 과업을 부과해도 되는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누군가 이 인생이라는 것이 정말 살아봄직하여 꼭 다른 누군가에게 '너도 삶을 살아봐, 너에게도 꼭 경험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낳는 거라면, 나는 아직 이 인생을 산다는 것을 권유해 주고 싶을 만큼 '삶이 좋은 것이다'라는 답을 얻지 못했다.
부모가 될 우리의 마음가짐
남편과 나는 모두 결핍이 많은 환경 속에서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생(生)은 고(苦)'라는 생각 때문인지 혹은 여전히 지금의 삶이 녹록지 않아서 인지 아직 아이를 낳을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나는 일을 시작한 이후로 아기를 갖는 것에 대해 가끔 생각하게 됐는데, 출산과 육아에 대한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 직장인 덕이 크다.
남편의 경우 안정적으로 돈을 벌지 못해서 인지 아직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남편이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도 좋은 아빠가 될 자질이 많은 사람이란 것도 알고있지만, 스스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담을 주고 싶진 않기에 그런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마음은 '절대로, 죽어도, 아이를 갖지 않겠다'라기 보단 '아직은 낳아야겠다는 확신이 없다'에 가깝다.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 모두 '너희들이 행복하면 그걸로 그만'이라며 자율성을 존중해주시는지라 주변 환경에서의 압박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아이를 낳아야겠다'와 '낳지 말아야겠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중이다. 주변에서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는 말을 던지면 '아직 계획이 없다' 혹은 '몸이 좋지 않아 보류 중이다'라고만 답한다. 이 대답이 얼마나 더 우리의 보호막이 되어줄지 모르겠지만 늦기 전에 우리 부부만의 답을 찾고 싶다.
만일 자연스레 살아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생긴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키울 것이다. 아이는 우리 부부를 찾아 이 세상에 와 준 선물이니까. 그러나 만일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해도 시험관 시술과 같은 인위적인 노력을 들이거나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가지려 하지는 않을 거다. 존재하지 않는 아이에게 집착하며 서로를 괴롭히는 대신 남편과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쓰고 싶다.
직접 아기를 낳거나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엔 아직 확신이 없지만, 신기하게도 아기를 사랑으로 키워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손이 야무지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니까 분명 아이를 잘 키우고 사랑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얼마 전 남편에게 만일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베이비박스에 찾아온 아기들의 위탁모가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은 '사람에게 마음을 많이 쓰는 네가 한 아이를 만나고 보낼 때마다 얼마나 힘들어하겠냐'며 단숨에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버려진 것도 그 아이들의 뜻과는 무관하니,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이 세상이 따뜻하고 믿을 만한 곳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주고싶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인생을 마주하더라도 그 세상을 살아갈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지금은 미래에 '무엇이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무엇이든 어떻게든 될 수 있다' 생각하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한다. 나의 아기가 되었든 이 세상 누군가의 아이가 되었든, 나의 직업이 언젠가는 '엄마가 되어주는 일'이 될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