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엄마와 여자 사이에서 1

터키 엄마의 직업은 '엄마'다. 직장을 나가야 하는 엄마들을 대신해 아기들을 맡아서 돌봐주시기 때문이다. 특정 자격이나 정규 직장이 있는 것은 아니니 엄밀히 따지면 가정주부지만, 생활비를 벌어다 주는 가장 중요한 일이 이 '엄마 일'이기에 나는 엄마의 직업을 '엄마가 되어주는 일'라고 부르고 싶다.


엄마는 지난 수십 년 간 베이비 시터 일로 소일거리를 하시면서 놀고 있는 아빠를 대신해 돈을 버셨다. 이 돈으로 자식들을 먹일 음식을 사고, 알뜰히 모아 지금 살고 계신 집까지 사셨으니 엄마에게 이 일은 엄연한 직업이자 귀중한 일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부모님 댁에 머무는 동안에도 엄마는 이웃집 아기를 맡아서 돌보셨다. 아기의 이름은 무하마드 에민(Mohamad Amin). 태어난 지 고작 6개월 된 에민의 엄마는 인근 병원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다. 에민의 엄마는 아침 일찍 에민을 우리 집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했다가, 점심때 잠시 들러 아기에게 젖을 주고는 퇴근할 때가 돼서야 에민을 데려간다.


깎아놓은 밤톨같은 무하메드 에민

늘 혼자 에민을 돌보면서 틈틈이 집안일을 해왔던 엄마는 생각지도 못하게 나타난 고급인력(?) 덕분에 맘 놓고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나란히 앉아 아기를 돌보는 우리 부부를 바라보며 엄마 아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너희의 아기는 언제 낳을 거냐'라고 물었다. 그리고 아기를 낳으면 터키에 데려오라며 자기가 잘 키워 주겠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에 아기를 돌봐 줄 사람이 없는 나는 엄마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그 말에 진심으로 혹했다. 언제 아기를 갖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정말 터키로 데려와 온 가족과 함께 키울까?'라는 상상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러겠다'는 약속 대신 '낳게 되면'이라는 가정을 덧붙였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

30대 초반을 지나면서 주변 언니와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대부분은 아이를 가져서 기뻐했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아이를 낳은 것'이라고 할 만큼 행복해했지만, 적잖은 이들이 임신 중에는 물론 출산 후에도 아이 혹은 부부관계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혼자 육아를 하느라 아이와 단둘이 집에 남겨져서 힘들어하는 무수한 엄마들을 보면서 '나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게 됐다.


그녀들이 임신 중에 겪는 어려움들(대부분이 겪는 입덧이나 심리적 변화 + 개인별로 겪는 임신성 당뇨 및 피부소양증 등)은 물론, 출산 후 육아의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들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 보였다. 출산으로 약해진 몸으로 자지도 먹지도 씻지도 못하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없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놓이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견디기 힘든 어마어마한 일이니 말이다.


그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비)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대처하며 엄마 노릇을 하는 것은 내게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못해 무시무시한 일처럼 보였다. 그것은 단순히 '모성애라는 원동력'이나 '엄마라는 책임감'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안 밖에서 당연하게 요구되는 '좋은 엄마'의 역할을 목격할 때마다, '나라는 사람은 그걸 절대로 해낼 수 없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산후 우울증 또한 대부분의 이들이 겪었다
사고 후 내 몸 상태

결혼 후 3년째에 접어들다 보니 주변에서 '아이는 언제 가질 거예요?'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듣는다. 그때마다 나는 내 몸상태를 핑계로 든다. 이것은 때때로 불편한 질문을 넘겨줄 좋은 구실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사고의 여파로 여전히 내 몸 이곳저곳에는 후유증이 남아있다. 골반이 탈골된 탓에 장시간 앉아있거나 걷는 게 힘들고, 오른팔 뼈가 분쇄되었던 탓에 아직도 무거운 걸 들거나 칼 질을 할 때마다 불안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입원했던 서울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아기를 받아내고 키워줄 수 있는 안정적인 몸 상태가 되어야 아기가 잘 생길 테니 임신을 생각한다면 몸을 잘 가꾸라'라고 했다. 골반이 불안정하다고 느껴지면 몸이 스스로 임신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 아기가 잘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 임신을 하는 동안 아이의 무게를 감당치 못해 몸이 많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멀쩡한 몸으로 아이를 낳은 이들조차도 아기를 안고 업어 키우면서 손목과 허리가 아작나 매번 파스와 복대로 전전하던데.. 이미 있는 대로 작살이 나서 내 몸 중에 최약 부위가 되어버린 내 손모가지가 과연 아이를 키우는 동안 제 기능을 해줄지 의문이다. 덧붙여 '몸이 안 좋다'는 나의 핑계가 언제까지 임신 질문에 대한 방패막이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교회에서 아이의 존재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우리 부부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커플들이 2쌍 있다. 신혼여행 후 몇 달 만에 교회로 복귀했더니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기를 가져 있었다. 다들 원하던 아기였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키워가는 모습에 흐뭇했지만, 그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나도 그들처럼 아기를 가져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장 아기가 급했던 것도 아니고 내게 아기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런 조바심이 드는 건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덧붙여 우리가 만일 임신이 간절한 부부였다면 그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참 곤욕스러웠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난임 혹은 불임부부의 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한 것이.

지금 이시간에도 아기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아기들이 자라 오도도도 뛰어다니는 지금은 '어서 나도 아이를 가져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주변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생겨 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잠긴다. 나를 제외 한 모두가 부모라는 인생의 과업을 수행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면 '나는 언제 그 과업을 수행하지?' 혹은 '그 과업을 꼭 수행해야만 하는건가'라는 의문과 조바심이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교회에서 아이는 어마어마한 축복이자 선물 같은 존재다. 하나님이 다음 세대를 위해 보내어주신, 내가 이 아이를 바르게 키우고 세상에 심는 것만으로도 참 복되고 소중한 일을 하게 만들어주는 존재. 신 앞에서 내 인생이 그러하듯 자식 또한 나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부모는 하나님 앞에 자식을 내어놓고 잘 돌보아주실 것이라 믿고 맡겨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를 못 믿어서 아이를 낳을까 말까 망설이는 나는 어쩌면 믿음이 부족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본 이야기는 '엄마가 되기 두려운 이유'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duckyou-story/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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