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행이 무산된 뒤 한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기존에 예약했던 왕복 티켓을 살리려고도 해봤지만 국적기의 운항이 중단되면서 모두 종이조각이 돼버렸다. 몇 시간에 걸친 검색 끝에 몇몇의 항공편을 발견했다. 저렴한 건 30시간 이상 4개국을 경유해야 했고, 10시간 내외의 직항편은 300에서 600만 원 사이를 오갔다. 두 가지 선택지 모두 '존재는 하지만 탈 수는 없는' 비행편이었다.
어느 날 때마침 그럴듯한 비행편이 나타났다. 하나는 1주 뒤에 출발하는 85만 원짜리 카타르 항공편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2주 뒤에 출발하는 50만 원짜리 러시아 항공편이었다. 두 비행편 모두 2개 도시를 경유해 15시간 이상 비행을 해야 했지만, 비교적 쓸만한 가격에 견뎌봄직한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고민하다 2주 뒤 조금 더 저렴한 러시아 항공편을 예약했다.
얼마 뒤 우리가 예약한 러시아행 비행편이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코로나로 러시아가 셧다운 되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우리가 고민하던 카타르행 비행기가 떠나는 날이었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가 막차를 놓쳤고 그 이유가 얼마 되지 않는 돈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속이 상했다. 우리가 카타르행을 선택했다면 지금쯤 그 비행기를 타고 터키를 떠났을 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매일 하루 일과는 항공편 검색과 함께 시작했다. 그리고 항공권 발권 -> 운행 중단 -> 취소 및 환불 -> 새 항공권 서칭 및 재발권의 과정을 몇 번이나 더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항공권 취소 문자를 받고도 놀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다시 항공편을 찾아볼 생각에 눈앞이 까마득하고 설마 했던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까 불안감이 엄습하긴 했지만, 처음 느꼈던 가슴 철렁하는 충격은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부터 다시 눈 감을 때까지 온갖 안 좋은 소식들이 쏟아졌다. 전 세계에 코로나가 얼마나 퍼지고 있고 하루에 몇 명이 사망했는지를 앞다투어 보도하는 통에 어느 나라에서 셧다운을 선포했는지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가뜩이나 반복되는 항공편 취소로 인해 한껏 예민해져 있던 나는 매일 크고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신랑과 논쟁을 벌이며 싸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누군가 탓하고 싶을 때
항공편 취소, 항공사의 늑장환불, 불합리한 병원 검사결과와 재판 중단까지. 연이어 터지는 문제들로 우리 부부가 살벌하게 싸우는 날이면 가족들은 덩달아 숨을 죽이고 살얼음판 위를 걸었다. 그러다 한바탕 싸움 후 냉전 상태가 찾아오면 엄마와 아빠가 나서서 '다 같이 여기서 살자. 같이 터키어 공부도 하고 농사도 지으면서 지내면 되니 걱정마라'고 우리를 달랬다.
가족들은 단순히 우리가 한국에 돌아가지 못해 싸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정리되지 못한 생각과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뒤엉켜있었다. 콕찝어 '무엇' 때문에 지금 내가 '어떻다'라고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연달아 터지고 계속해서 꼬여가는 상황 속에서 어느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던 어느 날, 나는 신랑과 언성을 높이고 싸우다 가족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아이처럼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저런 문제들로 한껏 날이 선채 마구잡이로 악을 쓰던 내가 스스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만 것이다. 순식 간에 싸하게 굳어버린 집안 분위기 속에서 아빠는 우는 나를 한참 지켜보다 가만히 곁으로 다가왔다.
'너는 틀림없이 전생에 터키 공주였을 거야. 그래서 터키에 올 때마다 매번 이렇게 오래 머무는 거 아닐까?'
아빠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건넨 그 말은 정말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서른이 넘은 나를 달래기엔 너무나도 유아틱한) 말이었지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엉엉 울던 나는 그 말에 그만 '크헝'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로 인해 딱딱하게 얼어붙었던 집안 분위기는 마치 마법을 부린 것처럼 쨍하고 깨어졌다.
나를 위해 아빠의 고향으로 떠난 가족여행
문득 1년 전 사고로 터키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사고를 당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신혼여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을 뒤로하고 터키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그렇다고 해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속상했다.
그때 가족들은 상심한 나를 데리고 아빠의 고향 아드라산으로 여행을 떠나 주었다. 온 가족이 작은 차 하나에 몸을 구겨 넣고 떠나야 했지만, 그 여행은 온전히 '여행을 못해 시무룩해진 막내딸'인 나를 위한 여행이었다. 그 사고가 일어난 것도, 신혼여행이 중단된 것도. 그들 중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가족들은 모두가 안타깝고 미안해하며 속상한 나를 위로해주었다.
문득 지금의 내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 상황 속에서 괜히 엄한 남편과 가족들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는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 답답한 상황에 대해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나의 못난 마음이 나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분노의 화살이 힘을 잃고 그 자리에 떨어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에 누군가를 탓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내려놓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자유
그날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우리가 예매했던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시에 TV에서는 터키가 셧다운을 선포하여 출입국을 전면 통제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모든 국제선 비행기가 기약 없이 운영을 중단했으니 이제 터키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끝나든, 전용 헬기를 띄우든 특별한 수를 쓰지않는 한 이제 우리는 이 나라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가슴이 철렁하는 대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지난 몇 주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매 순간이 버거웠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심사숙고를 통해 선택한 결과가 계속해서 좌절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이 닫히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되자 도리어 맘이 편안해지는 역설이 찾아왔다. 내 손을 떠난 문제를 들고 계속해서 발을 동동 구를 필요는 없는 거였다.
그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쌌던 짐을 다시 풀고 모든 짐을 배낭에서 꺼내 차곡차곡 서랍장에 넣었다. 그리고 기약 없이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잠깐의 '체류'가 아닌 '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터키에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나만의 삶의 루틴을 꾸리기 시작했다.
3끼의 식사와 몇 번의 커피타임을 즐기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테라스에 나가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어느덧 가족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아침 식사 후 엄마를 도와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열 식구의 빨래를 정리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점심이 되었다. 각자의 일을 하던 가족들과 간간히 모여 터키 커피와 짜이 몇 잔을 마시고 나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아침마다 뉴스를 확인하고 한인 커뮤티니 사이트에 들어가 새롭게 업데이트된 상황을 살폈다. 대신 하나하나의 소식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이전보다 거리를 두고 지켜봤다. 저녁엔 다 같이 모여 앉아 팝콘을 튀겨놓고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터키 가족에게 한국 드라마를 소개했고, 우리는 터키 영화를 보았다. 그렇게 단순한 일상이 반복되다보면 오늘이 며칠이고 지금이 몇 시인지 생각할 겨를 없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터키에 들어오고 코로나가 스멀스멀 시작될 당시 농담 삼아 '이러다 터키에 또 갇히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이 씨가 되어 이렇게 다시 터키에서 지내게 될 줄은 몰랐다. 초기에는 무수한 시행착오들을 겪으면서 참 속이 상했었는데, 이제는 어이없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속상함을 넘어 헛웃음이 나온다. 삶을 좀 평범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원래 신행이 이렇게 가기 어려운 건가? 이따끔씩 의문이 든다.
대단한 신혼여행을 하고 싶었다기 보단 단지 1년 전에 중단했던 신혼여행을 마무리 짓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남들이 잘만 다녀오는 신혼여행을 첫 번째는 교통사고로, 두 번째는 코로나로 중단하게 되고 나니 사실 억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상황이라도 좀 다르면 모를까, 마치 데자뷔처럼 2년째 터키라는 나라에 머물며 10명의 대식구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자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1년 전 그때처럼 또다시 터키에 갇혀버린 우리는 이제 '이번에도 터키에서 좀 살다가겠노라' 웃으며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원치않는 일이기에 당황스럽고 속상하지만 벌써 2회차에 이르른 '뜻밖의 터키 한달살이'는 더 이상 나를 좌절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모두 잘 사는데 나만 괴롭던 1년 전 그때와는 달리 나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함께 겪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위안을 느끼기까지 한다.
어느 누구도 내일을 예측할 수 없고 모두가 일상을 벗어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어이없고 억울한 이 상황을 원망하는 대신 아빠 말대로 '나는 전생에 터키공주였었나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