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만에 온 세상이 변했다

모든 것이 불과 2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른 새벽, 60리터 배낭 2개와 거대한 캐리어 2개를 들고 집을 나섰다. 비행기는 김해에서 인천을 거쳐 15시간을 날아 이스탄불 신공항에 도착했다. 1년 전 묵었던 호텔에 머물며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는 친구와 반가운 재회를 했다. 함께 걸었던 거리도, 윤슬이 아름답던 바다도 모든 것이 1년 전 그대로였다.


가족들이 있는 콜크텔리로 갔다.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가는 차 안에서 내내 가슴이 터질 듯 설레었다. 엄마와 아빠, 두 언니들, 그리고 사랑해 마지않는 3명의 조카. 그들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면서 느꼈던 기쁨이 선물 보따리를 풀어헤치며 두배로 커졌다. 우리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가족들로 집이 북적거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북적거림에 가슴이 벅찼고, 그리워하던 이들을 다시 만나 행복했다. 2020년 2월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날 저녁, 한국으로부터 소식이 들려왔다. 얼마 전 시작된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퍼지는 바람에 나라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했다. 우리가 출국할 때까지만 해도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사뭇 걱정이 되었다. 한국의 가족들은 우리라도 외국에 나와있어 다행이라 했고, 터키 가족들은 한국이 위험하니 이곳에서 살자고 농담인 듯 진담을 건넸다.


다음날 아침, 터키 메인 뉴스에서 한국 소식이 들려왔다. 중국 우한에 이어 한국 대구의 폭발적인 확진자 증가로 터키를 포함한 전 세계 100여 개 국가들이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시켰다고 했다. 소식을 접한 몇몇 친구들이 걱정스레 안부를 물어왔지만 우리는 무사히 입국해서 가족들과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었기에 '조금만 더 늦었으면 터키에 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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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웠던 모든 것들. 여행, 바다, 가족.


전쟁의 서막 - Corona War

어느 날 아침, 항공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가 나가기로 한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이 줄어 출국 일정을 연기한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는 흔쾌히 귀국 항공편 스케줄을 변경했지만 이튿날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 운행은 모두 중단되었다. 우리는 아쉬운 대로 프랑스 여행을 포기하고 영국 런던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으로 여정을 변경했다.


그러나 파리에 이어 런던과 바르셀로나, 이윽고는 이스탄불까지.. 도시를 바꾸는 족족 항공사에서 운행하는 주요 도시 발 항공편들이 하나둘씩 운행을 중단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한국으로 돌아갈 방법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우리는 항공사에 급히 연락해 아직까지 항공편이 운행 중인 나라를 찾았고, 유일하게 남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발권했다. 유럽 5개국 여행이 독일 여행으로 바뀌는 데는 일주일도 체 걸리지 않았다.


계획했던 유럽 여행 일정이 취소되면서 독일로 넘어가기 전까지 터키에 머무는 시간이 열흘 남짓 늘어났다.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던 터키 가족들은 생각지 못한 희소식(?)에 기뻐했다. 환호를 내지르며 엉덩이 춤을 추는 조카들을 보면서 여행이 취소된 것은 아쉽지만 가족들과 더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스스로 위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그러나 며칠 사이에 상황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했고 독일과 프랑스, 이란과 스페인이 차례로 바이러스에 점령당했다. 해당 국가 내 확진자 수가 2000명을 넘어서면 대대적으로 국제뉴스에 보도되고 전 세계 코로나 순위에 랭크인 되었다. 중국에 이어 2위를 지키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게 순위를 내어주고 점차 밑으로 내려왔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쎄한 느낌이 들었다.


조용하던 터키에서도 첫 번째 확진자가 생겨났다. 뉴스를 지켜보던 아빠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늘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 더 머물다 가라던 아빠는 이제 더 이상 터키도 안전하지 않으니 어서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조카들은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되냐고 벌써부터 입을 비죽였다.


곧 독일로 떠날 우리와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온 가족이 다시 콜크텔리 부모님 집에 모였다.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싸놓고 다 같이 옹기종기 거실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던 어느 저녁,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 9개의 국가가 터키의 출입국을 금지시켰다고 했다. 잠깐의 침묵과 함께 모든 가족이 벙찐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항상 그랬듯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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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과 대략 난감, 그 어디 즈음

날이 밝자마자 독일행 티켓을 발권한 터키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물었다. '우리는 독일에서 한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발권한 한국인인데 내일 오전에 터키에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냐'고. 그러나 한참의 논의 끝에 돌아온 대답은 '터키와 독일 상호 간에 자국민 출입국은 가능하나 외국인의 경우 확답을 줄 수 없으니 탑승 당일 공항에 와보고 안 되면 탑승권을 환불받으라'였다.


그러나 출국이 가능할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공항에 가서 떼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거니와, 터키 정부에서 출국을 승인하여도 독일 정부에서 입국을 거부하면 다시 터키로 돌아와야만 하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고 대략 난감했다. 그 뒤로 한참 동안 항공사 직원과 짧은 영어로 '표가 있는데 왜 못 가냐 VS 갈려면 가라 책임은 못 진다'와 '표 대신 돈을 주겠다 vs 필요 없다 표를 내놔라' 라며 실갱이를 벌였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우리는 방향을 틀어 터키 한국 영사관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국가 대 국가의 입장에서 터키에서 독일로 입국할 수 있게 도움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영사관에서는 '항공사와 알아서 해결하라'는 무책임한 대답을 들려주었고 나는 그간 참았던 모든 분노를 단전에서 끌어올려 사자후를 내질렀다. 한참 나의 무지막지한 분노에 들들 볶인 직원은 직접 항공사에 연락을 취해 모든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덧붙여 최근에 상황이 수시로 바뀌니 '내일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에 꼭 다시 한번 확인해보라'는 당부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며 함께 마음고생을 한 가족들은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어 정말 다행이라'며 진짜 마지막 밤을 맞아 작별인사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서야 했지만 가족들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에 늦은 시간까지 모여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가족들이 하나둘씩 잠자리에 들려던 그때, TV 뉴스에서 빨간 글씨로 긴급속보가 나왔다.


"EU 셧다운 선포"

TV에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나와 '지금 이 순간부터 한 달간 EU 해당국 내의 이동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유럽 출입국을 금지한다'라고 했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연합국 전부가 전 세계로부터 문을 걸어 잠그겠다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얼어붙은 듯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상황과 국적을 불문하고 독일로의 입국은 물론 한국으로의 출국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방법을 찾기 전까지 터키에서 머무르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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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고비와 변화 끝에 한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지만 허망하게도 출국 12시간 전에 코 앞에서 한국행 문이 닫혔다. 이 모든 것은 2주 만에 일어났고 그로 인해 우리는 기약 없는 터키살이를 시작했다. 그날 WHO는 코로나에 대해 전 세계에 팬데믹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온 세상이 바뀌었다.



터키 가족들에게 준 한국 선물 영상 -> https://youtu.be/1LESgoxcs0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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