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신혼생활

결혼 3개월 차, '환자'부부의 신혼생활

지금부터 풀어가고자 하는 이야기는 2년여 전 내가 결혼을 했던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야 시작된다. 어떠한 연유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결혼 후 어떤 신혼여행을 다녀왔는지에 대해 구구절절이 풀어놓은 글이 1번째 브런치북 '조금 특별한 신혼여행'이라면, 지금부터 풀어나가고자 하는 글은 그 신혼여행 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2019년 7월의 어느 날, 나는 '조금 특별한 신혼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내가 보낸 신혼생활은 차마 '신혼'이라고 표현하기 힘든 시간이었으니 편의상 '남다른 신혼생활'이라고 해두자. 신혼여행이 뭐 그리 특별했는지 궁금하다면 나중에 브런치북 1편을 읽어보기 바란다. 나의 신혼생활이 뭐 그리 남달랐는지는 지금부터 들려줄 테니.



많은 신혼부부들이 짧게는 5일, 길게는 열흘 남짓한 신혼여행을 다녀온다. 양손 그득히 선물들을 싸들고 돌아와 양가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결혼식을 찾아 준 지인들 혹은 직장에 감사를 표하며 일상으로 자연스레 복귀한다. 평일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신혼집 가득 깨소금 냄새를 채운다.


몇 달 후 배달된 결혼식 사진과 영상을 보며 '그땐 그랬지' 아련한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을 설계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사랑의 결실을 맺고 자연스럽게 부모가 될 준비를 한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지난 몇 년 간 지켜본 신혼부부 대부분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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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just married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을 떠난 지 3달 만에 남의 집 같은 낯선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머뭇머뭇 들어선 현관에는 업체에서 일찌감치 보낸 앨범이 배달되어 있었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은 한없이 낯설었고,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만치 꾀죄죄한 거지꼴이 되어버린 우리는 한참 앨범을 물끄렴히 들여다봤다.


자식들의 무사귀환 소식에 양가 부모님이 손수 신혼집을 찾아오셨다. 여행을 다녀왔지만 빈 손인 우리와는 달리 어른들의 손에는 각종 영양식과 먹을거리가 바리바리 들려있었다. 살아서 돌아왔으니 그걸로 되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부모님을 배웅하고 돌아오니 비로소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신혼 3개월 차에 둘 다 환자가 된 우리 부부의 신혼생활은 분명 남들과 달랐다. 세계일주를 계획하며 퇴사를 한터라 가야 할 직장 따위는 없었고, 우리 부부가 계속 세계여행 중이라 믿고 있는 친구들이 우리를 찾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신혼부부는 (아니, 아무도 찾지 않고 딱히 갈 곳도 없는 두 환자는) 반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24시간을 샴쌍둥이처럼 단 둘이 꼭 붙어서 보냈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꼬옥 붙어 있는 것이 낭만적이고 행복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부부가 24시간을 꼬옥 붙어 있는다는 것은 전혀 낭만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8년 간의 연애 때보다 신혼 첫 6개월 간 훨씬 더 자주, 아주 치열하고, 많이 유치하게 싸웠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고로 인해 80대의 체력과 4세의 인내력을 가지게 된 탓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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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과 80살 사이

80대의 체력을 가진 '가짜 노부부'의 하루 일과는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오전 느지막이 눈을 뜨고서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밥과 약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서면,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병원에 30분이 넘게 걸려서 겨우 도착한다. 거동이 불편한 나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한 발자욱씩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 병원에 도착한 뒤, 1시간 넘게 재활치료를 받고 다시 느릿느릿 걸어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그날 하루치의 체력은 이미 바닥나고 만다. 그렇게 반나절 만에 하루 일과를 마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앓는 소리를 내며 곯아떨어지는 것이 전부다. 그들에게는 점심을 해먹을 힘도, 다시 집 밖을 나설 여력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4세의 인내심을 가진 '어린 애부부'의 하루는 아주 스펙터클하게 진행된다. 감정은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예민하게 들쑥날쑥거리고, 이해심이나 참을성은 밴댕이 속 알 딱지만큼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민한 밴댕이 두 마리의 속 안에서 끓어오르는 화는 서로에게는 물론 바깥으로도 향한다.


예민함으로 무장한 두 마리의 쌈닭은 매일 보는 담당 주치의부터 처음 보는 마트 계산원분에게까지 닥치는 대로 화를 내며 싸움을 걸어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각지 못하게 만난 삶의 역풍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우리 둘에게는 억울한 마음을 토로할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방향을 잃은 분노의 화살은 이곳저곳을 마구잡이로 쏘고 다니며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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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백수 사이

원래 계획했던 고시공부와 취직 준비는 모두 무기한 연기되었다. 고시 공부는커녕 잠시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있을 체력도, 사회생활을 감당할 정신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모든 사회와의 교류를 단절한 채 신혼집이라는 우리만의 세상에서 집과 병원만을 오가며 최소한의 삶을 유지했다.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먹고,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을 사고, 최소한의 사람만 만나며 살아가는 삶은 적막했다.


병원 치료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지만 정작 쉬지는 못했다. 집 인근에 치료받을 병원을 알아보고, 국내 보험사에 연락해 사고로 입은 피해들을 증명하고, 한 달에 몇 백만 원씩 쏟아지는 병원비를 보상받기 위해 쉴 새 없이 서류를 떼다 내어야했다. 보험사에서는 계속해서 내게 사고가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를 캐물어댔지만, 그 사고가 일어난 이유를 정말 알고 싶은건 우리였기에 종종 할말을 잃었다.


터키에 있는 변호사에게 보낼 재판용 서류들을 준비하느라 난생처음 외교부와 법무 사무실을 들락거렸다.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재판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외국인 변호사와 준비하는 과정은 혼란 그 자체였기에, 우리는 그곳을 드나들때마다 잔뜩 날이 선 채로 영문도 모르고 진탕 싸웠다. 우리에게는 요양과 휴식이 필요했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60년을 함께 살아온 듯 끈끈한 전우애를 갖게 되었다. 화장실에 가는 시간 제외한 24시간을 내리 붙어 지내며 함께 눈뜨고, 3끼를 함께 먹고, 머리를 싸매고 쥐어뜯는 동안 '내가 너인 듯, 네가 나인 듯' 점차 하나가 되어갔다. 함께 있어도 혼자인 듯 불편하지 않고, 아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기까지 우리는 수도 없이 지지고 볶고 울며 아팠지만 그만큼 가까워지고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그 남다른 신혼생활이 우리를 남다른 신혼부부로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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