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재혼은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약이었을까. 시간이 흘러야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은 차츰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틀에 한 번씩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몸이 조금씩 나아졌고, 잘 먹고 푹 쉬면서 체력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걸어서 30분 걸리던 병원을 15분 만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외출 후 족히 3시간을 내리자던 낮잠 시간도 점차 짧아졌다. 예민함과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마음이 조금씩 다듬어지면서 우리는 점점 지금의 상황에 적응해나갔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각자의 역할이 생겼다. 음식 준비와 빨래는 내가, 설거지와 청소는 남편이 하면서 집안일을 척척 해내게 되었다. 하루 3끼의 밥을 함께 해 먹고 집안을 뒹굴거리는 동안 조금씩 일상이 주는 행복도 느꼈다. 가끔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의 소식을 알던 사람은 무사한 우리 모습에 반가움과 안도의 눈물을 보였고 상황을 몰랐던 사람들은 많이 놀라고 미안해했다. 그렇게 잃었던 일상과 관계를 회복해 가면서 우리도 남들처럼 결혼 생활에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체력이 늘고 마음이 안정을 찾으면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자고 늘어져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둘이 나란히 앉아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몸의 통증과 마음의 분노가 사그라들면서 그만큼의 여유를 현실에게 내어준 것이다.


사실 1년 전 결혼과 신혼 배낭여행을 함께 준비하면서 나는 신랑에게 약속했었다. 이번 세계여행을 함께 해준다면 돌아와서는 허튼짓(?)을 하지 않고 착실하게 현실을 살겠노라고. 비록 생각지 못한 사고로 모든 것이 기약없이 늦춰졌지만 어찌 되었든 이제는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


나는 교원임용고시를, 남편은 공기업 취직을 준비하기로 했다. 신혼집 작은 방에는 나란히 책상 2대가 놓였고, 우리는 새해를 맞아 독서실과 인터넷 강의를 결제하고 공부할 책과 학용품들을 사모으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턱없이 부족한 집중력과 체력에 당장 10분 간 궁둥이 붙이고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첫날엔 30분, 다음 날엔 1시간을 앉아있으며 조금씩 시간을 늘려갔다. 툭하면 졸음이 쏟아지고 시도 때도 없이 통증이 찾아왔지만 우리는 죽어도 책상 앞에서 죽자며 버텼다.


혹시 터키로 와줄 수 있습니까?

어느 날 오후 터키에 있는 변호사 Soner로부터 연락이 왔다. 늘 그랬듯 '잘 지내냐, 몸은 좀 어떻냐'는 일상적인 연락인 줄 알았건만 그는 우리에게 '터키로 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갑자기? 지금? 터키에? 그는 재판에 제출할 서류들을 발급해야 한다며 우리가 직접 현지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제 고작 한국에 들어온 지 반년이 지났을 뿐인데.. 재판까지 1년 이상이 걸릴 거라던 그의 말과는 달리, 생각지도 못하게 덜컥 날아온 터키 방문 요청에 우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날 저녁, 우리 부부는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스케줄러와 달력을 펼쳐놓고서 터키를 언제, 어떻게, 얼마나 다녀올지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했다. 이제 막 시험공부를 시작한데다 그곳에 다녀오기 위한 시간적 금전적 지출이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내 눈에 스케줄러 한 귀퉁이에 적힌 '결혼 1주년'이라는 표시가 들어왔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이제 곧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라고? 신혼여행을 망친 이후로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던 나의 두 눈이 갑자기 번쩍하고 떠졌다.


'오빠, 우리 결혼기념일 맞춰서 다시 신혼여행 가자. 망한 첫 번째 신혼여행 대신 두 번째 신혼여행을 가는 거야!' 생각지 못한 제안에 남편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신혼여행을 가자며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1년 전 시작하자 마자 끝나버린 나의 신혼여행을, 아니 미처 끝내지도 못하고 중단한 나의 신혼여행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한참 나의 말을 듣던 신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나는 그 길로 '두 번째 신혼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신혼여행 다운 신혼여행

노트북과 세계지도를 펼쳐 들고 터키와 가까운 유럽, 그중에서도 꼭 가고 싶었던 몇몇 개의 나라들을 뽑아 단숨에 1달짜리 여행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신혼여행에서 가려던 나라들 중 비교적 안전하고 지금의 체력으로도 크게 무리 없이 갈 수 있는 나라들을 추리다 보니 체코 프라하와 독일 드레스덴,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이라는 꽤나 신혼여행답고 그럴싸한 플렌이 세워졌다.

떠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그렸던 처음이자 마지막 그림일기

사실 1년 전 첫 번째 신혼여행을 준비하던 그때의 우리는 신혼여행을 2주 남겨두고서도(심지어 그것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포함한 100일짜리 배낭여행이었음에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었다. 출발 전에 한 거라곤 '병에 걸려 죽지 않을 만큼의 예방접종'과 '첫 번째 국가로 가는 비행기 티켓'이 전부였고, 여행 짐도 출국날 새벽녘에서야 배낭에 부랴부랴 때려 넣고 허겁지겁 공항으로 달려갔던 터였다.


뷰가 멋진 호텔을 예약하고, 필름 카메라와 커플룩을 챙겨 넣으면서 여태껏 해본적 없는 '신혼여행 다운 여행'을 준비하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정신없었던 그때와는 달리 차근히 여행을 준비하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식 준비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그때의 나와는 달리 간질대는 마음에 들뜬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진짜 신혼여행을 떠나는 듯 설렜다.

여행을 준비하는 자세

출국까지는 한 달 남짓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10시간이 넘는 비행과 1달 간의 여행을 해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했다. 여행이라는 목표는 나에게 재활과 운동의 의미를 불어넣어 주었고 그날 이후 나는 병원을 의욕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물리치료사분께 나아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물었고, 시키지 않아도 걷기 운동을 나섰다. 그것은 내게 다시 건강해져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 덕이었다.


터키행 비행기표를 끊은 날 터키 가족들에게 방문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몸이 안 좋은 엄마를 위한 안마기와 낚시광인 아빠를 위한 낚싯대, 한국에 관심이 많은 조카를 위한 김밥말이 세트와 젓가락부터 언니들을 위한 한국화장품과 꼬마 공주들을 위한 꼬까옷들까지. 가족에게 줄 선물들이 이민용 캐리어 하나에 가득 찼다. 모두가 즐길만한 한국 과자들과 커피들, 한국 음식과 전통 문양이 새겨진 작은 선물들을 곱게 포장하면서 그들을 다시 볼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좌: 가족들에게 줄 선물, 우: 1달 간의 여행짐


한국 신혼집에 남겨질 고양이들을 위해 친한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의 첫 번째 신혼여행을 함께 한,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 가까워진 동생 소라는 두 번째 신혼여행을 떠날 우리를 위해 기꺼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주었다. 한 달간 우리 집에서 지낼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집을 치우고 정리하면서 1년 전 신혼집을 꾸미던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켜켜이 먼지가 쌓이고 묵직한 먹구름이 내려앉았던 우리 집에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맑은 햇볕이 내리쬐는 느낌이었다.


출국날 새벽, 우리를 배웅하는 소라와 인사를 나누며 왠지 모를 뭉클함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반년 만에 다시 배낭을 매고 두 번째 신혼여행을 위해 집을 나섰다.


신혼여행 짐싸기 영상이 궁금하다면 -> https://youtu.be/3rsiCP43u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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