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광경에 머리가 아팠다.
지나는 사람마다 표정이 밝다.
올드타운 쪽으로 걸어가니 영국에서 투어를 온 학생들이 많았다.
덕분에 어느 곳에 서있어도 영국 영어 가이드를 공짜로 들을 수 있었다.
몸이 안 좋아서 우울한 건지 우울해서 몸이 안 좋은 건지. 이 상태로는 오늘 계획했던 아우슈비츠수용소를 갈 수 없었다. 이 몸으로 그곳에서의 감정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일어난 지 30분 만에 오늘의 일정을 포기하고 그저 집에서 쉬기로 마음먹었다.
저녁 6시쯤 되니 이대로는 바닥으로 꺼지겠다 싶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안경을 낀 채 밖으로 나왔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제과점에서 마음에 드는 쿠키 몇 개를 샀다.
집에서 나온 지 오분만에 아름다운 석양에 감정은 다시 균형을 찾았다.
계획까진 아니더라도 예상했던 여행루트가 있었는데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가고 싶은 곳들이 자꾸 생겨난다. 돌아가는 날짜를 저 멀리로 미루고 싶어졌다.
나온 김에 프라하로 가는 티켓을 구매하다가 실수를 했다. 그 대가는 10%의 수수료.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완전 속상했지.
아이스크림이 다섯 스쿱인데.
밤 10시쯤, 퇴근했을 고시아와 함께 아이스크림이나 퍼먹어야겠다 싶어서
맥주와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어갔다.
역시 고시아는 과일와인을 따라주며 나를 반겼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시비엥침행 버스를 탔다.
한 시간 남짓 달리니 안개가 자욱한 수용소 앞에 도착했다.
수감자들의 가방, 신발, 옷가지, 그릇 등 소지품들을 한 데 모아둔 전시관.
그중 가장 가슴 아프고 울컥했던 것은 구둣솔 더미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구두 한 번 닦아낼 여유쯤은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지?
두 시간 반 가량 제1수용소를 돌아본 후
셔틀버스를 타고 제2 수용소 비르케나우로 향했다.
면적이 제1 수용소의 약 20배에 달하는데 그 목적은 오직 학살만을 위함이었다.
기찻길의 끝은 언뜻 보면 노란 낙엽이 내리는 평화롭고 드넓은 공원이었지만
그곳은 가스실에서 나온 시체를 쌓아놓는 부지였다.
그 앞에는 그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이 있었다.
나도 그 앞에 서서 진심으로 기도했다.
20세기,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최고의 악행.
비인간적인 잔인함에 내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살면서 꼭 한 번은 와 봐야 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