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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열차에서 북한 아저씨들과 수다 떨기

북한 아저씨 6명에게 둘러싸여 오징어와 땅콩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by 밍영잉 Mar 26. 2025

니나 할머니가 기차에서 내리신 후,

기차 칸은 조용해졌다.


빠르게 지나가는 나무 그림자가

기차 테이블 위에 앉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그림자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졌다.

열차는 다음 정차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기차 문이 열리고

내리고 오르는 사람들의 발소리,

가방 끄는 소리, 웅성거리는 대화들로

기차 칸의 끝자락이 분주해졌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이불을 허리까지 덮은 채

벽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런데,

기차 안을 채운 백색 소음을 뚫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익숙한 듯,

그런데 뭔가 어딘가 어색한 한국어였다.

억양도 단어 선택도 낯설었다.


소리는 복도 저 너머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졌고

곧 확신이 들었다.


‘아, 북한 사람들이다.’


중년 남성들,

못해도 다섯 명은 되는 듯했다.

설마 내가 있는 칸까지 오진 않겠지…


설마는 늘 사람을 잡는다.


그들 중 두 명이

조용히 내 칸으로 들어와

짐을 풀기 시작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인사를 건네거나

알는 채 하지 않았다.


서먹한 침묵 속에서

그저 서로의 존재를

조용히 받아들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머지않아,

나와 같은 칸에 배정된 두 명의 아저씨

명석 아저씨, 용화 아저씨와 

자연스레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는

총 일곱 명의 북한 아저씨들이 

타고 있다고 했다.


조금 뒤,

다른 아저씨 네 분도 

우리 칸으로 넘어와

책상 위에 간식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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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시에,

모든 관심이 내게 쏠렸다.


“혼자 기차에 탄 것이니?”

“네, 혼자 여행 중이에요.”


아저씨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요즘 남조선 여아들은 배짱이 있어~” 하시며

아저씨들끼리 수런수런 하셨다. 



한국의 회사 채용 방식이 궁금하다고 하셨다.

.

“먼저 서류로 제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요.

그게 통과되면 여러 번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하게 돼요.”


명석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인물심사란 게 배짱이 중요한데,

너는 아주 잘할 것이야.”


그 말이 참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손전화 있니?"

"네 그럼요!"

"서울사진 좀 보여줄래?"


한강에서 자전거 타는 사진, 

친구와 술 마시는 사진, 

대학교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사진, 

음식사진 등 

내 일상을 보여드렸다.


가장 오래 들여다보셨던 건 음식 사진이었다.

하나하나 멈춰 확대해 보시며 묻기도 하셨다.


"이것은 무어니?" 

"피자라는 건데요! 치즈랑 고기, 야채들을 밀가루 반죽 위에 올리고 구운 것이에요."

"아~ 북에 종합 지짐이랑 비슷하다야!"


옆에 있던 아저씨가 덧붙였다.

"그건 치즈가 없잖네! 그래도 비슷하다야!"

"근데 김치는 같이 안 먹니?"


먹는 이야기엔 모두가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북한 아저씨 여섯 분과의

수다 타임이 마무리되고,

이제는 다시 셋이 남았다.


명석 아저씨, 용화 아저씨, 

그리고 나.


이야기는 조금 더 잔잔해졌고

대화 속에는 묵직한 진심이 담기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에 깔린 침묵은

이제 어색함이 아니라,

편안함이었다.




-Part1-


*북한 아저씨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혹시모를 일을 대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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