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지막 밤, 아닌 밤중의 스릴러

빗길에 배낭을 메고 넘어지고는 곧, 있어야 할 터미널이 사라졌다.

by 밍영잉


헬싱키로 가는 버스 시간은 밤 11시 30분.

상트페테르부르크 숙소에서 출발한 시각은 밤 10시 40분.

30분을 걸어가야 하니, 출발 20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흠 여유롭군.'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만 더 일찍 도착해서 주변 마트에 들러

남은 루블(러시아 화폐)을 털어야지!’


조금씩 비가 오고 있었지만

배낭을 멘 채 터미널을 향해 서서히 뛰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어이없게 발이 미끄러져,

배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커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향해 종종걸음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민망함이 어떠한 감각보다 앞섰던 순간,

뒤집어진 풍뎅이처럼 몇 초간 버둥거리고는

이내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웃으며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괜찮아요!ㅎㅎ"


손바닥이 조금 까지고 경량 패딩의 소매가 바닥에 긁혔다.

'아, 카잔에서 새로 산 패딩인데…'



목적지에 도착했다.

구글 지도에 표시해 둔 '그곳’이다.

종이 티켓에 명시되어 있는 주소이자,

러시아 친구가 직접 확인도 해준 그곳!


하지만 직감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주변은 인적이 드물어 삭막했고

공업단지의 좁은 도로 같았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을 곳은 아니었다.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는 내리고, 자정이 가까워지는 늦은 시간.

도움을 구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버스 시간이 다 되기 20분 전,

기적같이 한 할머니께서 골목을 돌아 내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신 지,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이즈비니째(실례합니다)! 할머니 여기에서 헬싱키로 가는 버스를 타라고 나와있는데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어요. 지도에 표시된 여기가 이곳 맞나요?"


"위치는 여기가 맞긴 하는데… 여기에서 버스를 탄다고?"


할머니와 나는 십분 동안 그 주위를 방황했다.

몹시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여기가 맞겠거니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음! 오케이 스파시바~그냥 여기서 기다릴까 해요."


"지금은 밤이고 넌 혼자야. 버스가 안 올지도 몰라. 같이 있어줄게."



할머니는 티켓에 쓰여있는 버스 회사 사무실로 전화를 거셨다.

열심히 상황 설명을 하시던 할머니는

이내 얼굴이 창백해지셨다.


"지금 상황이 안 좋아, 이 사람 영어할 줄 안댄다. 너가 받아봐."


입이 떡 벌어졌다.

이곳이 터미널이 아니란다.


출발 시간이 10분 남은 상황에서,

전화기 넘어로부터 올바른 주소가 전달됐다.


"10분 안에 와야 해. 버스가 널 기다려주진 않을 거야.."


할머니는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어

온몸으로 택시를 잡으셨다.

몸을 숙여 조수석 창문을 통해

택시 기사님에게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시더니

조수석에 냉큼 타셨다.


도무지 사양할 수 없었다.

무섭고 급박했기 때문이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누군가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귀한 인연을 감사히 여기기 위해

할머니의 휴대전화 번호를 여쭤봤다.

그리고 가는 길 택시 안에서 스파시바를 10번 넘게 외쳤다.


택시비도 극구 사양하시며 모두 내주셨다.

택시는 바른 터미널까지 날아갔지만

도착한 시각은 11시 30분이었다.

버스는 출발했을까..?


할머니와 나는 터미널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터미널 입구에 있는 짐 검사대가 얄밉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기계 안으로 핸드백을 던지다시피 하셨고

나도 내 배낭을 그 안으로 던졌다.

드디어 저 문 뒤에 버스가 있는 곳이 보였다.

달려가 큰소리로 물었다.


"이거 헬싱키 가는 건가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기사님을 보고 나서야

할머니와 나는 웃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고 말씀하셨다.


"이쁜아 좋은 여행되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