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무래도 무임승차를 한 것 같아.
카밀과 만나기 위해
중앙역 바로 앞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카밀이 재학 중인 Theatre 예술 아카데미는
여기서부터 두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인생 첫 유럽 지하철 체험이었다.
넓고, 조용하고, 깔끔한 지하철은 한국 지하철과는 달리 마치 미술관에 온 듯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한국의 개찰구,
그 비슷한 것을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개찰구와 티켓 박스는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라 물어볼 사람 한 명 없는 지하철역사 안, 적어도 직원 한 명 정도는 있을 법한데
정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지하철 영업시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지하로 내려가면 나오겠지!'
두리번거리며 계속해서 밑으로, 더 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결국 마주친 것은 지하철 플랫폼이었다.
곧 빨간색 광택이 흐르는 지하철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얼떨결에 지하철에 탑승했다.
평온하게 앉아있는 승객들 사이에서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나,, 아무래도 무임승차를 한 것 같다.'
지하로 흘러 흘러 들어오는 중에 봤던
파란색 작은 기계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도움벨처럼 생긴 그 작은 기계가 설마 티켓머신이었나..'
나중에 카밀과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깨달았다.
헬싱키는 지하철에 개찰구가 없다.
즉 이용권을 구매했는지 확인하지 않는
오픈액세스 시스템인 것이다.
모든 승객들은 HSL 앱으로 정액권
또는 일회권을 구매해서 사용하거나 카드를 사용한다.
(내가 본 그 작은 기계는 카드를 찍는 용도였다.)
서로를 신뢰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문화가 신기했다.
불시 검사로 높은 벌금을 부과한다곤 하지만,
벌금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스템이 운영되기보단
높은 사회적 신뢰 수준을 기반을 운영되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나라는 왜 이런 시스템이 없는 걸까.
한국은 아직 규칙은 감시받아야 지켜진다는 시선이 더 강한 것 같다.
때때로는 솔선수범의 마음도 부족한 것 같다.
'다른 사람도 안 내니까 나도 괜찮겠지.’ 또는
'규칙을 잘 지키면 내 손해'와 같은 마음이랄까.
사회 규칙은 기본적인 시민의식이 먼저 갖춰져 있어야 실행이 되고 유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무척 짧은 망설임을 뒤로한 채 냉큼 지하철에 올라탄 사람으로서,,, 반성하게 됐다.
지난 죄가 씻겨지길 바라며
서둘러 지하철 정액권을 구매했다.
나도 사회도 더 성숙해지길 바라본다.
원래 계획 대로라면 카밀이 수강하는 예술 수업에
함께 참여해 재밌는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오늘만큼은 어제부터 축적된 심신의 피로로
쉼이 필요했다.
카밀에게 어젯밤 러시아에서 있었던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저녁에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집 열쇠를 받아 먼저 집으로 향했다.
예쁘게 색이 든 단풍이 새까만 아스팔트 위에 선명하게 누워있었다.
비에 젖은 땅은 마치 단풍 무늬 주단을 깔아 놓은 것 같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아름다움을 만끽하여 걸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