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문제라고 부르지 않던 때
시골집으로 이사한 건
한겨울이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1톤 트럭에 우리의 짐을 모두 싣고
고양이 두마리와 함께
설레는 마음을 안고 왔다.
시골집을 주말주택으로
고쳐서 쓰던 집이었다.
전 주인 아주머니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집.
수리도 좀 하고,
우리 취향대로 싹 고치고
이사왔으면 좋았겠지만
서울집이 팔리는 동시에
바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당분간 그대로 살아야했다.
은근히 손볼 곳도 많았고,
가장 큰 문제는
보일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전에 살던 아주머니가
주말주택으로 사용하며
겨울철 보일러 관리가 어렵다며
관을 모두 막아놓고
시멘트로 마무리를 해놓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궁이에 불을 넣고
방을 데우려고 했지만
연기가 치솟았다.
이 아궁이로 난방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이미 짐을 풀고
살고 있던 와중에
보일러 공사를 하기는
무리라고 판단했고,
알래스카에서도 쓴다는
300만원 정도의 난로를 들였다.
그 난로를 사용하려면
약 90리터의 등유가 필요했다.
문제는 한 드럼(200리터)도 안되는
소량의 등유를
이 시골마을까지
배달해주는 주유소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20리터짜리 등유통을 사서
90리터의 등유를
직접 채워야했다.
낮에는
따뜻하게 잘 사용했지만,
소리에 예민한 나는
밤마다 난로의
팬 돌아가는 소리를 가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밤에는 난로를 끄고
온수매트를 켠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꽁꽁 싸맨 채
고양이들을 껴안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겨울은 원래
추운 거니까.
시골의 겨울은
도시보다 조금 더 춥고
조금 더 불편할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첫 겨울이 지나갔다.
그다음 겨울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또
그 다음 겨울도..
보일러 없는 겨울은
어느새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불편했지만
늘 불편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이 정도쯤은
감수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는
불편함을
문제라고 부르지 않았다.
선택의 결과이거나,
시골에서 사는 삶의
조건쯤으로 여겼다.
누군가
"그래도 너무 춥니 않냐"고 물으면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겨울은
추운 거라고.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은
날씨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그때 우리가 살고 있던
방식에 더 가까웠다.
우리는
고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고,
바꿀 수 없는 상황에는
의미를 붙이며 살았다.
그게
그 시절 우리가
시골에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