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선을 배우던 시간

시골에서 먼저 읽히는 것들

by 산다

처음 시골로 이사 왔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집을 손보느라 바빴고,

짐을 풀고,

각자의 일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집을 보러 왔던 날

잠깐 스쳐 지나간

한 사람이

문득 떠올랐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해 보이던 아저씨였다.

주먹으로 대문을

꽝꽝 꽝 치고는

우리를 보자마자

이 집을 사러 온 거냐고

여러 번 물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주인아주머니의 조카라며

얼버무렸고,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집 계약을 마치고

주인아주머니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여기 텃세가 좀 있어서

자기는 나간다고.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왔으니

마을에서 잘 봐줄 거라고.


그때는

귀촌이라는 설렘에 앞서

그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짐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뒤

옆집에 인사를 갔다.

그날의 그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나왔다.


그 집은

원래 자기들의 먼 친척이

살던 집이었는데,

자식이 없던 부부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

조카들이 부동산에 내놓았다고 했다.


본인들이 사고 싶었지만

값을 너무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담담하게 꺼냈다.


그리고서는 마당 앞 공간에

귀촌하면서 누가 준

고물 차를 세워둔 걸 가리키며,

원래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쓰던 자리라며

주차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며칠 뒤부터는

그 자리에

옆집의 트랙터가

늘 서 있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노골적인 텃세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보이지 않는 선은 존재했다.


우리는

그 선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마을에서

젊은 부부로 살아가려면

우선

눈에 띄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장에 들러

시루떡을 해

마을에 돌렸다.

마주치는 주민들에게

먼저 인사했다.


그해 겨울,

우리가 보일러 없이 산다는 이야기가

어느새 온 마을에 퍼졌다.


그때부터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아버지들이

하나 둘

집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된장, 간장, 김치,

말린 나물과 고구마가

차례로 놓였다.


걱정이라는 이름의 관심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돈 없어 보이는

젊은 부부.

보일러도 없이

겨울을 나는 사람들.


전에 살던 주인아주머니는

대도시의 아파트에 살았고,

이 집은

주말주택으로 쓰던 집이었다.


이사 오자마자

측량을 하고,

마당에 울타리를 치고,

나무와 꽃을 심고

텃밭을 가꾸었다고 했다.


주말마다 친구들을 불러

고기를 구워 먹던 모습이

시골에서 평생 살아온

마을 사람들 눈에는

조금 다른 풍경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골의 낭만을 한껏 즐기는

여유 있는 중년과

보일러도 없이 겨울을 나는

없어 보이는 젊은 부부.


그 차이는

태도보다

조건에서 먼저 읽혔다.


그때 나는

시골의 텃세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위치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우리는

미움받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조심했고,

보호받기 위해

조금 더 가난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의 거리도

조금씩

정해져 갔다.


시골은

자연으로만 이루어진 곳이 아니었다.


사람도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조건이었다.


KakaoTalk_20180302_140409551.jpg 아주머니들과 같이 동네 산성 산책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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