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평온했던 시간

나는 엄마로 잘 살고 있었다.

by 산다

첫째 아이는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태어나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사흘쯤 지났을 때였다.


청진을 하던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얼굴이 굳더니

큰 병원으로 바로 가야 한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태아일 때는 괜찮지만

태어나면서 심장이

산소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응급 상황이 된다고 했다.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지만


태어나면서 닫혀야 할 혈관이

닫히지 않은 덕분에

아이는

사흘동안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태어난 지 사만에

대학병원에 입원시키고


혼자 조리원에 남아

숨죽여 울었다.


대학병원 의사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조금만 늦었어도

아기가 위험했을 거라고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다행히

응급 시술을 받고 나서


아이의 상태는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사경이 있었다.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질환이었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엄마의 뱃속 공간이 좁아서

오랫동안 웅크린 자세로 있었거나


태어날 때 쇄골뼈에 금이 부러지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실제로

만삭이 되어서야

임신한 티가 났다.


몸무게도

7kg 정도밖에 늘지 않았고

배도 아주 작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먼저 물어보기 전까지는

임신 사실을

잘 눈치채지 못하곤 했다.


출산할 때도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해

아기의 쇄골뼈에

작은 금이 갔다.


심장병도 그렇고

사경도 그렇고


나는 한동안

이 모든 일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 한쪽이 내내 아렸다.


대학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마사지와 물리치료를

일 년 가까이 계속 받았지만


결국

수술을 해야 했다.


작은 몸이

수술대에 올라가는 것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엄마라는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는

다시 건강을 찾았고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쩌다 보니

둘째 아이도 태어났다.


다행히 둘째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두 아이의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바빴고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남들이 흔히 겪는다는

산후우울증도

크게 겪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었다.


둘째가 두 돌 때쯤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도 다시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 번 실패했고

여전히 내 적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육아를 하는 시간은

적성을 찾는 일을

잠시 미뤄둘 수 있는

합법적인 유예기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몰입을 할 수 있었다.


건강과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아이들 이유식을 만들면서

아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주는

엄마라는 역할을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에는

건강과 관련된 책을

마음껏 읽었다.


운동도 시작했다.


건강한 음식과 운동을

함께 이어가다 보니

몸은 아기를 낳기 전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갔다.


컨디션도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엄마라는 일이

어쩌면 내 적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육아는

생각보다 즐겁고

평온한 시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평온이 그렇게 쉽게

깨질 줄은 알지 못했다.




이전 19화통제를 놓았을 때, 생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