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남편이 한 말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나는 육아에 집중하며
하루를 살고 있었다.
둘째가 두 돌 때쯤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도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생활비를
더 이상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남편이 주식을 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폐업을 했고,
그 이후로는
프리랜서로
월 100만 원 정도를 받는
일을 하고 있었다.
프리랜서 일을 하다 보니
다른 회사에 취업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주식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리딩방에도 들어가고,
수익이 났다며
신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얼마를 벌었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주식으로도
생활비를 벌 수 있구나.
남편은 수익이
안정적으로 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생활비를 조금 더 올려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상황이 그래도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상황이 좋지 않다며
생활비를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다.
카드값 상환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서
내가 대출을 받아 메꾸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남편은 카드빚이 더 이상 감당이 안 된다며
생활비를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나는 생활비의 공백을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경제적인 문제보다
내 태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예전처럼 웃지 않는다는 것.
내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
주식으로 번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상황이 어려워지자
오히려 기분 나쁜 티를 낸다며
내가 상황을 방관했다고
나를 비난했다.
내가 무책임하다고 말하자
남편은
자신은 가족을 위해
한 일이었다며 억울해했다.
그리고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꺼내며
모든 상황을
내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대화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나는
남편을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의지할 수 없겠구나.
둘째는 갓 돌이 지난 상태였다.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지
적성을 찾을지
천천히 생각할 시간도 없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상황을 알게 된 남편의 가족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보탰지만
남편은
그 돈으로도
다시 주식에 몰두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같은 집에 살았지만
각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브런치북 「한 집에 살면서 각자 살았다」에서
조금 더 자세히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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