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우리는 왜 시골로 갔을까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것 같다

by 산다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오랫동안

서울에서의 삶이 꽤 만족스러웠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정말 그랬을까

조금 의문이 든다.


우리는 둘 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월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나는 안정적이며

크지 않은 급여를 받는 직장인이었고


남편은 공연기획 일을 하며

연극 제작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또래들에 비하면

수입은 확실히 적은 편이었다.


우리는

14평짜리 오래된 빌라를

대출을 끼고 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으면

더 넓은 집이 필요했을 테고,

더 많은 돈이 필요했을 테니까.


우리 주변의 친구들은

대기업에 다니며 승진을 하고,

결혼을 하며

아파트를 사서 살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 사실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내 무의식 어딘가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들처럼 살 수 없을 것이다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돈에 욕심 없는 삶.

세속적인 것과

거리를 둔 삶.


적은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사는 삶.


그 삶이

더 멋진 삶이라고

믿고 싶었다.


우리에게 귀촌은

세상과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시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은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조금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돈에 대해

늘 두려움이 있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을

좋게 말하지 않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마음을

어딘가 탐욕처럼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가격표를 비교하고

가장 싼 것을 고르는 사람이었다.


직업도 돈이 되는 길보다는

연극 연출이라는

예술의 길을 선택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돈이 없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런 남편에게도

유일하게 드러나는 욕망이 하나 있었다.


남편은 매주

천 원짜리 로또를 한 장씩 꼭 샀다.


그 작은 종이 한 장이

어쩌면

남편이 드러낼 수 있었던

유일한 욕망이었지도 모른다.


그런 남편이

어린 자식들이 태어나고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까지 폐업하게 되자


그 안에 눌려있던

또 다른 욕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욕망.


나는 그 마음이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둘 다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욕망을 부정하며

그 위에 의미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나는 오랫동안

'이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이다.


삶은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며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무소유를 꿈꾸며

시골로 내려왔다.


그리고 이제


풀소유를 꿈꾸며

그곳을 떠나려고 한다.


이 선택 역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이번에는

그 의미를

미리 만들지 않고


살아가며

천천히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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