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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은 Apr 04. 2016

우리라는 말, 너에겐 둘 뿐이었구나.



  그저 짧기만 했던 사랑일 뿐 이였다. 아주 짧고 처음이라 강렬했던 그것은 나의 인생을 행복과 동시에 절망으로 돌려놓았다. 지금 아무도 없는 방 안. 숨 막히게 조여 오는 베이지색 벽지만이 나를 누르고 있다. 왜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일까. 분명히 같이 있었는데.. 내가 둘이 되니 떠나버린 것일까. 우리 관계에 셋은 안 되는 것일까?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나버린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저 지금 이 순간 혼자 있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까? 부모님에게 말씀드리지도 못했다. 비참한 내 현실에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내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에게 연락을 했다.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한 번씩 숫자를 더해가며 울리는 전화 신호는 내 가슴을 점점 빠르고 강렬하게 만들었다.

네가 받았다. 마음이 마치 춤을 추듯 기뻐하는 듯했지만 애써 누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 어떻게 할 거야? 우리 이제 어떻게 해.. 네 아기야 네 의견 존중해 줄게 네가 지우라고 하면 지울게 무슨 말이라도 좀 해주라”

그가 말했다.

 “ 나에게 조금만 준비할 시간을 줘. 너에게 그리고 우리 은형 이에게 책임질 시간을. 내가 지금은 비록 많이 어리지만 조금이라도 어른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지금 네 앞에 설 자신이 없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고 어린 나이에 한 번에 호기심에 이런 결과가 있을 줄은 몰랐어.

사실 너에게 은형이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기쁘기도 했지만 눈앞이 어두워지며 도망가 버릴까 정말 생각 많이 했어. 하지만 나 이제 결정했어. 너와 나 2명이었던 우리 관계는 너와 나 은형이 이제 3명이야 은형 이는 우리고 우리는 은형이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내가 다음에 연락 줄게 몸조리 잘하고 마음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지내고 있어 은형 이와 함께. “

그의 말투는 무언가 결심한 듯 단호했고 그 이후 나의 마음도 조금씩 편해졌다.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사랑했던 그가 내 곁으로 다시 돌아와 줄 생각에 정말 많이 흥분됐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와 저 그리고 그가 예쁘게 이름 지어준 축복받을 일만 남은 은형이 우리 셋 앞으로 정말 행복하게 즐겁게 사랑으로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아멘’

오늘도 기도를 드린다.      

날짜가 지날수록 배는 불러왔다. 연락이 없는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의심은 하지 않는다. 착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니까. 빨리 그가 와 부른 나의 배를 보고 기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나를 감싸고 앞으로 있을 희망 들이 나를 붕 뜨게 만들었다.    


은형이가 나왔다.

드디어 우리에 결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 나이에 모진 시선 받아가며 낳은 아이지만 정말 사랑스럽고 세상에 이런 존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아름다웠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넌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나와했던 약속 너와 나 그리고 은형 이를 책임지겠다는 너는 어디 있는 거니. 혹시 죽어버려서 내가 매일 보는 저 하늘에 밝은 별이 되어 버린 거니. 그래서 그렇게 검은 하늘에서 나를 위한 빛을 힘차게 있는 힘 다해 뿌리는 거니.

한 번만 나에게 너를 보여줘. 어른? 그런 것 다 필요 없어. 지금 내 옆엔 축복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어. 나와 나의 축복 그리고 사랑'

너를 향한 나의 생각은 끊일 줄 모르고 축복을 보는 나의 눈에는 기쁨이 아닌 슬픔이 점점 차오르고 있다. 차올라 기어코 떨어지고 있다.

‘불쌍한 우리 은형이 불쌍한 우리 은형이.. 너무나 불쌍한 우리 은형이..’

그에 눈을 꼭 닮은 은형 이를 보고 있으면 점점 더 무너지는 마음 다잡을 길이 없다.    


은형이가 몸을 뒤집었다.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천사 같은 은형이가 슬픈 나의 마음을 달래 주는 듯 애교를 부리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이와 아무것도 없는 방 한 칸에서 생활한 것이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저 은형이가 걷고 있구나.라는 생각만이 나를 감싸고돈다. 그에 대한 생각은 생각보다 많이 나지 않는다. 반포기 상태라고 해야 할까. 나를 위해 언제든지 올 것이라는 생각보다 이제는 나를 버리고 잊고 살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더욱더 크게 다가온다.  


눈물이 난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 눈물을 세상을 잃은 사람처럼 흘리고 있다. 내가 울기에 은형이도 옆에서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처지를 그리고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 서글픈 그 울음은 나를 더욱더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창가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주황빛 가로등. 은형 이와 나의 울음소리 외엔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아 세상과 단절되어 버린 느낌까지 드는 고요함.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어두운 공간. 모든 것이 나를 무언가로 끌어들이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에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목소리 일까? 잠시 귀를 기울인다. 점점 감당할 수 없는 느낌에 나는 책상에 있는 전등을 켜고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자기야.

이렇게 불러 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너와 나의 사랑

그 짧은 순간에

정말 행복했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나.

그래서 더욱더

가슴이 아픈 것일까?     

네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 세상이 나쁜 것이라고

그리고 이 세상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나쁜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끝까지

너를 지켜주려 해     

이제 마음 편하게 가져

나와 은형 이는

행복한 곳으로 가서

잘 살 거야.

아주 잘 보란 듯 아주 잘 살 거야

세상에 나가

누구에게도 부럽지 않은 아이로

어여쁜 아이로 내가 키워낼 거야

그리고 언젠가 너에게 보여 줄게.     

우리의 축복 은형이.

오늘 은형이가 울었어.

마치 자신의 처지를 아는 듯

어린 나이에 아주 서글프게 울더라.

이제 이 여리고 여려 부서질 것 같은

유리 같은 우리 은형 이에게

서글픈 울음은 없을 것이야.     



적던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전등을 끈다.

그대로 나는 은형이 앞에 마주하고 떨어지는 슬픔을 양 쪽 볼에 흘리며 무릎을 꿇고 은형이를 좋은 곳으로 안내한다.


멍하다. 좋은 곳으로 갔을까? 곧 엄마도 같이 갈게.


제사 한번 받아보지 못할 은형이를 위한 제사를 지낸다. 무릎을 꿇고 세상 어떤 초상집 보다 서글픈 소리를 내며 입으로 향을 피운다.

이제는 나를 위한 향을 피운다. 잠이 온다. 여태까지의 고생을 달래주 듯 검은색 이불이 나를 덮는다. 잠이 들기 전, 네가 보고 싶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더 이상 원망할 것도 없어 더욱더 네가 보고 싶다.

 ‘책임지지 못할 말로 나를 이렇게 까지 만들었지만 괜찮아. 이제 행복한 곳으로 떠날 수 있으니. 천천히 와. 천천히 나에게 돌아와.’

졸리다. 잠이 온다.


나를 보고 네가 조금이라도 미안해했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나를 봐주었으면.


--



책임지지 못할 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점점 힘들게 했었다.

순간에 욕심에 얼굴에 가면을 쓰고 너에게 하지 말아야 할 거짓들을 말할 때엔 나는 내가 아니었다.

그때 그 순간 나는 외로움에 취한 주정뱅이였다.


현실에 부딪혀 아이를 버리고 떠난 저 글 속에 남자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떠난 내가

더 비겁하다는 생각을 한다.

너는 얼마나 더 아팠을까.

나의 끝없는 변명에 얼마나 아팠을까.

잔인한 진심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무너졌을까.


지금 이 순간도 미안한 감정뿐인 내가 싫다.

거울 속 보이는 나의 모습

괴물이 따로 없구나.


고해성사를 시작한다.


끝이 안 보이는 너의 아픔이 무섭게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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