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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은 Apr 04. 2016

신경 독.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사람은 학습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학습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 그것에 대한 미련은 마치 그것을 담당하는 뇌만 건망증에 걸린 듯 사람에 학습 능력을 마비시킨다. 가지지 못할 것에 대해 손을 뻗는다. 가시에 깊게 찔려 피가 나고 많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사람은 또다시 그 아름답지만 가시 돋친 붉은 장미에 손을 뻗고 기어코 손을 댄다. 무한반복,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무한 반복 속에 더 이상 비참해질 것도 없어 보인다. 왜 사람은 사랑이라는 것에 아니..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는 애매한 사랑 같은 사랑에 대해서는 학습 능력이 없는 것일까.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 다가간다. 이미 뇌를 지배해 버린 붉은 장미는 이성과 아픔을 느끼는 신경계 따위는 무시해 버린다.

나는 무섭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구, 혹은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엔 사랑 같지 않은 사랑은 과연 무슨 느낌일까.

손에 있는 피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는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은 치명적인 독이다.

뇌를 마비시켜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못하게 

하며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시킨다.

그 이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찢어지는 상처에도

붉은 아름다움에, 매혹적인 달콤함에 빠져

쓸모없는 반복을 계속한다. 

쳇바퀴 돌 듯.     



사랑은 한마디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감성적인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성을 끝낼 때엔 이성을 찾아야 한다.

지금 당신이 끝없는 상처와 후회에 굴래 속에서

벋어 나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거울 앞으로 가라.

눈을 뜨고 온몸의 신경계를 일깨워라.

당신에 눈을 한번 본 후 손을 한번 보라.

그 이후 이성이라는 것을 그대에게 주입하라.

이제부터 올 고통은 그대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견디고 견뎌 밖으로 나아가라.

제발 밖으로 나아가라.          



-- -- -- -- -- -- -- -- -- -- -- -- --

         

 친구의 사랑에 가슴이 아파 친구를 향해 적은 글을 오랜만에 꺼내 보았다. 이미 헤어져 다시는 회복될 기미가 없는 그런 관계였다. 그 친구는 헤어진 후 하루하루를 눈물 속에 살았고 그녀를 향한 수천 번의 연락은 한번 한 번이 수천 번의 생각 뒤에 나온 행동이었다. 적어도 백만 번의 생각을 한 그 친구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계속해서 올라갔다 내려가길 반복했고 그 반복은 그녀의 숨소리 하나로도 충분했다.   

   


사랑하지만 더 이상 사랑하길 허락받지 못하는 관계. 

이제는 슬퍼할 자격도 없는 관계. 



점점 무너져가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가슴이 정말 아팠다. 하루하루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멈춰버린 심장, 그저 억지로 부여잡고 몸속에 흐르는 건 눈물뿐인 그러한 삶을 나는 옆에서 보았다. 궁금했다. 얼마나 사랑하면 저렇게 까지 슬퍼할 수 있는 것일까? 나에게도 저런 가슴 아프지만 너무 깊어 자기 자신도 볼 수 없는 저러한 사랑이 올까. 하지만 끝없는 반복 속에 깨닫는 것 없이 반복뿐인 그 친구가 정말 답답했다.

답답함에 화도 내고 때리기도 하고 욕설을 퍼부어 친구를 더 슬프게 한 적도 있다. 언제쯤 끝이 날까. 아직도 진행 중인 친구의 정작 자신은 무뎌져 버린 아픔은 내 눈을 시리게 한다.     



사랑하지만 사랑하길 허락받지 못한 관계.

슬퍼할 자격도 없어 더욱더 아파오는 관계.

온통 가시뿐인 매혹적인 붉은 장미가 나에게도 피었다. 

막을 겨를 없이 피어버렸다. 아프지만 계속해서 잡고 있다. 

놓치기 싫어 놔버리면 영영 눈앞에서 떠나 버릴까.     


그녀의 들숨, 날숨 그저 폐부가 움직여 공기들이 아래위로 왔다 갔다 할 뿐인데 나의 마음 아래위로 크게 흔들려 감당할 방법이 없다. 

눈을 뜬다. 온몸의 신경계를 일깨운다.

거울 앞으로 간다. 

이성이라는 것을 주입해 본다.    



‘이성적인 것이 뭐야? 뭐야? 뭐야? 뭐야? 뭐야? 뭐냐고’


  

그 자리 그대로 주저앉아 이성이라는 것에 나를 살포시 맡겨본다.

소름 끼칠 정도로 이성적인

생각이 나를 스친다.


신경 독이 아픈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사랑하게 해준다고? 아픔에 무감각해져 그 사람을 위한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게 해준다고? 내 손에 피가 나고 눈이 퉁퉁 부어 뜰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세상 어떤 풀로도 붙일 수 없는데도 계속해서 그 사람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고?     

 

좋은 거잖아?


아무도 없는 방 

조심스레 팔을 걷어본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신경 독을 너무 말라버린 팔뚝 위에 넣는다.

언제 끝날지 모를 독이 날이 선 주삿바늘을 타고 한가득 혈관을 타고 들어온다.    

 

아프지 않아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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